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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물결이 파도가 되어 - 김삼환 목사의 나누는 삶, 섬기는 사랑에 대하여
은파기념사업회 지음 / 현암사 / 2025년 12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김삼환 목사의 어린 시절, 그가 살았던 집은 첩첩 산중 두메 산골이었다. 자동차도 없고, 버스도 다니지 않았다. 사람들의 발자국만을 헤아리며 찾아가야 했던 , 자칫 잘못하면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벼룩길'이라는 길을 지나야 나오는 집이었다. (-17-)
그는 그렇게 신학교에 다니고 이후 1963년 고향 근 처의 작은 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했다. 그러나 송편을 버릴 때의 다짐과는 달리, 나눔의 목회를 마음껏 펼칠 수가 없었다. 그는 나누어줄 것이 아무것도 없는 가난뱅이 전도사였던 것이다. (-26-)
그 병원이 바로 성소병원이었다.지금 명성교회가 운영하고 있는 안동성소병원은 김삼환 목사가 피눈물을 흘리며, 첫 아이를 하나님께로 보냈던 바로 그곳이다. 차비도 없고 장례비용도 없어 차갑게 식은 작은 아이를 품에 안고 직접 산에 묻어주었던 그대, 슬피 우는 그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듯했다. (-28-)
MCM을 시작할 당시 에티오피아에는 의사가 약 4천명 밖에 없었다. 그 사이에 숫자가 많이 늘어 현재느 1만명 가까이 되지만, 에티오피아 인구가 약 1억명인것을 생각하면 인구 만 명당 의사 1명인 셈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의사가 인구 500명당 1명인 것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숫자였다. (-73-)
그리하여 1991년에 영광여자고등학교를 인수하게 되었다.가장 시급한 과제는 학생들이 더 나은 학습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었다.아이들은 나무와 같아서 물만 잘 주면 알아서 쑥쑥 자란다. 마음 놓고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면 공부하라고 강요하지 않아도 잘 해낼 것이었다. (-109-)
안동성소병원은 경북 지역에 최초로 세워진 서양식 병원으로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인 작터 플레처가 사택 마당에 천막을 치고 교회와 진료소를 열면서 시작되었다. 처음으로 안동에 서양의술이 전래된 것이다. 천막을 처서 만든 임시진료소에 사람들이 구름 떼처럼 몰려들었다. 초대 병원장 플레처선교사와 2대 병원장 스미스 선교사 이후에도 수많은 선교사들의 노력이 있었다. 일제에 의해 병원이 강제 폐원되고 한국 전쟁 당시에 전물이 폭파되었음에도 안동성소병원은 다시 일어섰다. (-132-)
내가 사는 경북 영주에는 영광 재단이 잇다. 영광중학교, 영광여자중학교,영광고등학교,영광 여자고등학교,이렇게 네개의 교육기관이 영광재단 소속이었다. 이 학교들은 사립학교이며, 기독교 종교 교육이 학교 수업에 포함되어있으며,경상북도 영주에서,어느 정도 공부잘한다는 아이들이 입학하는 곳이다. 이 학교를 인수한 곳에 은파 김삼환 목사가 1980년 개척한 서울 명일동 명성교회다. 가난한 학교 재단의 어려움을 알고 있었던 김삼환 목사는 나눔과 섬김으로서, 가난한 이들을 모른척 할 수 없었던 것이다.그의 기독교적인 사랑이 곳곳에 스며들었다.
『작은 물결이 파도가 되어』의 주인공은 명성교회를 개척한 김삼환 목사였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구가 적은 경상북도 영양군의 두메 시골에서 태어났으며 ,자동차나,버스가 거의 들어오지 않는 곳이었다. 스스로 가넌한 삶과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신학교를 다니게 되었고, 1980년 서울 명일동에서 명성교회를 개척하게 된다. 그의 사역 활동은 국내에 머무르지 않았다. MCM을 통해, 1억 인구 에티오피아에서,의료 사역을 진행하였다. 대한민국은 의사를 늘리기 위해서, 의과 대학을 확충하려는 추세이지만, 대한민국보다 의료 인프라가 부족한 에티오피아에는 의사 1명단 1만명의 에티오피아 인들을 치료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한국의 탁월한 의료 인프라를 해외에 사랑과 나눔으로, 함께하기 시작하였으며, 에티오피아인들이 조금 더 나은 의료 혜택을 누리도록 힘써왔다.자신의 어린 시절의 고난과 고통과 상처가 목회자의 길을 걸어옴에 있어서, 나와 비슷한 처지에 놓여지거나, 자신보다 어려운 이들을 가벼이 여기지 않았으며, 섬김과 사랑으로 그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학고 있었다. 김삼환 목사는 1980년부터 2015년까지 담임목사로 활동하다가,이제는 우리 사회의 가장 소외된 사람을을 찾아가서 돕는 일읋 지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