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박인환 전 시집 - 목마와 숙녀, 세월이 가면, 탄생 100주년 · 서거 70주년 기념 시집
박인환 지음 / 스타북스 / 2026년 1월
평점 :





사나이는 일할 곳이 없었다. 그러므로 약한 여자들이 백인 아래 눈물 흘렸다. 수만의 혼혈아는 살길을 잊어 애비를 찾았으나 스라바야를 떠나는 상선은 벌써 기적을 울렸다. 「인도네시아 인민에게 주는 시」 (-27-)
가슴에 돌단을 쌓고 손흔들던 기억 보다 간절한 것은 손 흔들던 기억보다 간절한 것은 보고 싶다는 ,보고 싶다는 단 한마디 먼지 나는 골목을 돌아서다가 언뜻 만나서 스쳐간 바람처럼 쉽게 헤어져 버린 얼굴이 아닌 다음에야 신기루의 이야기도 아니고 하늘을 돌아 떨어진 별의 이야기도 아니고 우리 모두 잊혀진 얼굴처럼 모르고 살아가는.「얼굴」 (-69-)
서울에서 모여든 모리배는 중국서 온 헐벗은 동포의 보따리 같이 화폐의 큰 뭉치를 등지고 황혼의 부두를 방황했다. 「인천항」(-109-)
폐허와 배고픈 거리에는 지나간 싸움을 비웃듯이 비가 내리고 우리들은 울고 있다. 어찌하여? 소기의 것은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원수들은 아직도 살아 있지 않는가. 「새로운 결의를 위하여」 (-155-)
강원도 인제가 낳은 시인 박인환은 11926년에 태어나, 1956년 서울 세종로에서,생을 마쳤다. 서른 한살의 짧은 인새을 살았던 시인 박인환은, 2026년 기준 박인환 시인 탄생 100주년이 되었다. 천재 시인, 일직 요절한 시인으로 기억되고 있는 시인 박인환은 1937년에 세상을 떠난 이상 시인을 추앙하였다. 그의 시에는 1945년 당시, 6.25 전후의 남한을 기억하게 된다.시체와 가까이 하였고, 절망과 허무한 삶에 대한 회의감이 공존한다. 절망과 상실감을 삶의 감각으로 채워 나갔던 박인환 실인이 쓴 대표적인 시 「목마와 숙녀 」,「세월이 가면」이 존재한다.그는 시를 통해 패시니즘,비관주의를 문학적으로 채워 나갔다. 20살 서점을 차렸던 박인환 시인, 20대 초반 결혼하였던 시인 박인환은 2남 1녀를 두었고, 아들 또한 시인이다.
인제에 가면, 박인환 문학관이 존재한다. 그의 사후 70년이 넘었지만, 그이 시를 기억하고,그의 시를 사랑하였다. 지금 우리가 말하는 모더니즘의 아이콘이었던 댄디보이 시인 박인환은 전쟁 이전에 기자로 활동하였다. 1950년 6월 25일 전후, 징집되었던 박인환은 90일을 버텼고,그 짧은 시간이 그의 붕괴된 시적인 가치에 반영하였으며, 제국주의에 대한 반감과 저항이 심하였으며, 반공 정신이 몸에 배어 있다. 1956년 3월 , 술을 3일 내내 마셨던 박인환은 이상행사를 개최하다가, 급사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시인 박인환에 얽힌 일화 속에서, 시집 하나 남겼던 시인 김수영이 존재하였다. 김수영과 박인환,서로에게 문학적 영감을 제공하였고,서로에게 열등감을 느꼈던 문학적 동지였다. 1968년에 세상을 떠난 김수영, 1956년에 세상을 떠난 박인환은 우리의 근현대사의 양대 산맥이었으며, 박인환은 영화 평론 1세대로서, 영화에 대한 깊이가 여전히 기억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