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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당허고 지옥이 그만큼 칭하가 날라나? ㅣ 15소녀 표류기 1
최현숙 지음 / 이매진 / 2013년 11월
평점 :

'15소녀 표류기'는 한국 사회 여성들의 목소리로 한국 현대사를 다시 읽어보려는 시도로 출발했다. 시대의 조류에 휩쓸려 살아온 평범한 여성들, 그러나 그 시대적 ,역사적 조건에 순응하지만은 않은, 때로는 맞서 싸우고 때로는 협상하며 삶의 전력을 세워온 평범하지만 비범한 여성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5-)
'끈 떨어졌다'는 말이 딱 그거더라구. 게다가 얼결에 잡은 줄이 썩은 동아줄이었으니, 내 사는 게 어덯게 속이 어떻겠수? 먹고 살기 힘든 거야 그 시절에 다들 힘들었으니 그렇다 치고, 나는 마음 붙일 데가 없는 거야. 같이 내려온 친구, 밉든 곱든 그거라도 믿고 마음을 기대보려고 한 건데 그거하네 마저 사기를 당하고는 , 마음 붙일 데도 없고, 붙일 마음도 없어져 버린 거야. 그러니 욕만 남더라구. 그러구는 내내 뜨내기루 살거야, 이제까지...(-55-)
그리고 저 목사 만든 돈이 어디서 나온 건데?양키 물건 장사로 일찌감치 돈 모아서 이 집이라도 사놓고, 저 일년 학비 들어갈 때 한층 올려서 전세 돈 받아 모아놓은 돈이랑 합해서 등록금 내고, 다음 해 또 한츨 올리고 하며 일 년 학비 내곤 하 거야. 그러면 저 목사 된 게 결국 내가 양키 물건 장사하고 미군이랑 살림해서 번 돈이데, 그게 뭐가 잘못이냐구? (-101-)
평생 동안 이어진 심한 안면 장애와 언어 장애, 극빈한 여성 가장의 삶 등을 감수할 각오를 임신 당시의 김복례가 미리 했을 리야 없을 테다. 어쨌든 그렇게 살려 놓은 첫 아기는 딸이었다. 아들도 못낳은 채 얼굴이 흉하게 망가져버린 김복례를 시어머니가 불러들일 리 없었다. 친정 동네라 해봤자 시어머니가 살고 있는 집과 멀지 않은 '가차운'곳이었다. (-136-)
핑계 김에 김복례의 깡통과 박스 줍는 풍경을 담고 싶어 한마디 끼어들며 옷을 챙겨 입었지만, 김복례는 정색을 하며 마다하다.포기하고 다음으로 넘겼다.
귀님이 두부를 부치며 부대찌개를 끓여놓고 한참을 기다려도, 할머니는 오지 않는다. 결국 귀님이 마중을 나갔다. 저렇게 번돈은 한 톨 한 톨 모아 자주 들락거리는 손주들 차비도 챙겨주고 , 먼저 간 손주며느리(귀님의 맏며느리, 2009년 두 달과 남편을 남기고 병으로 일직 죽었다.)용돈도 넣어줬단다. (-209-)
김복례의 한 세대 후배이자, 김복례하고는 달리 '모성'과 '자아; 사이의 거리 조정에 늘 헷갈리고 아파하면서 ,또 자부하면서 살아온 한 여성으로서, 모성을 유일한 자아로 여기며 산 선배 여성에게 이견을 달아 추궁할 생각은 없고, 김복례를 향한 그런 추궁이 성공할 리도 없다. 일면 내 어머니나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240-)
왜 국방군이고 인민군이고 저들이 직접 죽이지 않고 마을 사람들을 앞세워 같은 마을 사람을 죽이게 했나 몰라. 그러니 인민군들이 가고 전쟁이 끝나고 나도, 그 좁은 동네 사람들 간에 웬수가 많이 생긴 거지. 그 웬수지간이 대를 이어 인제까지도 이어지고 있다게. 순흥 안씨 모여 살던 보절면이랑은 그런 게없었는데, 그 근처 상촌이니 화순이니는 그런 경우들이 많더라구.요즘도 선거 때만 되면 옛날 얘기 끄집어내서 동네가 뒤죽박죽 되고 한다더라구. (-275-)
여기 와서 처음에는 다들 잘사는 사라믈이고, 밥 먹으러 나오면서여자들이 화장들을 하고 좋은 옷들을 챙겨 입고 나오고 하니까, 나도 많이 신경이 쓰이더라. 혹시 초라해 보이면 나도 자존심이 깎이고 자식들도 욕 먹이고 그러는 거니까. 그래서 나도 옷 입는 거랑 좀 신경을 썼지. 그전에야 내가 워 그런 거 신경 쓰디? 그래서 내가 미o가 사온 옷 보고 뭐라 그러 거야. (-335-)
너그 이버지야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는 늘 더없이 좋은 사람이고 성인군자지. 딱 나하나한테만 웬수 같은 존재야. 이중인격자야, 니 아버지는 .뚝 하면 친척들한테고 남들한테고 뭐 해준다고, 나더러 돈 내놓으라고 아둥바둥 하고,내가 무슨 돈 직어내는 기계여? 내 새끼들 공부시킬라고 아둥바둥 쌔가 빠지게 번 것을, 왜 지가 맘대로 가져다 남 좋은 일을 시키냐고? 그러니 남들이야 다 니 아버지 좋다고 하고, 그거 반대하는 나만 나쁜 년 되는 거지. 주고 싶으면 지가 벌어서 주든가. (-360-)
책 『천당허고 지옥이 그만큼 칭하가 날라나?』은 15소녀 표류기 첫번째 이야기다. 이 책에 등장하는 세 여성은 김미숙(89세), 김복례(87세), 안완철(81세)이며,그들은 1920년대에 태어나 일제강점기를 거쳐왔다. 배움이 짧았던 삶을 살았으며,지긋지긋한 가난한 삶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담배를 만드는 전매청에서 일했던 그들의 삶이 하나하나 기록되어 있었으며,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책에는 아픈 여성의 이야기가 나온다. 매독에 걸려서, 코가 없는 노인의 삶, 손가락 마디마디에 관절에 무리가 갔다. 아프게 태어난 것도 억울하건만, 세상 사람들의 소나락질, 외면과 상처는 견디기 힘들어쓸 것이다. 코로 숨을 쉬기도 힘들었고, 먹을 것을 삼키는 것도 어려웠을 것 같다. 그즐이 살아온 삶은 아픔 그 자체였으며, 고통을 견디며 살아온 삶이 남들에게 자랑스러운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밭돼기에서, 키워온 채소들을, 업자들이 다 가져간 다음 , 남은 것으로 음식을 하였고, 먹고 살아왔다. 고통스러운 시간, 글을 배우면, 편지 쓰고,먹고 사는데 지장이 있을 거라는 생각의 덪에서 자유롭지 않아썬 그들의 삶은 결코 편하지 않았다. 이 책 제목, 그들이 생각하는 천당과 지옥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살아간다는 것도, 죽음 이라는 것도 그들의 삶에서, 별반 다르지 않았었다.의식주를 해결하는 것 자체가 버거웠던 지난 날,, 전쟁을 온몸으로 경험했고, 눈앞에 죽어가는 시체를 발견하며 살았다.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다르지 않아썬 그들의 삶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던 것이다. 삶에 있어서, 고톨스러웠던 지난 날 들. 그 지난날들이 그들을 살게 했고,그들이 삶을 견딜 수 있었던 이유다. 살아간다는 것이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일깨워주고 있다. 우리 삶은 결코 편안한 삶은 아니었다는 것을 ,우리 삶이 풍요롭고,자유로우면서, 편안한 삶을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삶 이전에 , 고독하고,고단했던 세 여성의 삶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은 아닌지,구술사에 대해서, 생애사에 대해서 궁금하던 차에 일게 된 책 『천당허고 지옥이 그만큼 칭하가 날라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