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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집과 꿀
폴 윤 지음, 서제인 옮김 / 엘리 / 2025년 6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교정 시설로 차를 타고 가는 길은 놀라웠다. 보는 전에는 세개 주가 면해 있는 그 지역을 떠나 본 적이 없었다. 그는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잊을 뻔했다. 철창이 쳐진 차창을 통해 강물이 흐르는 계곡이 광활한 평야로, 다시 산맥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여섯 시간 동안 지켜보았다. (-15-)
주연은 자신의 품에 안긴 그 아이가 세상을 떠나는 걸 지켜보았고, 떠난 뒤에도 한동안 지켜보고 있었다. 아이는 결코 눈을 뜨지 못했다. 주연은 결코 눈을 감지 못했다. 그날 밤 어느 곁엔가, 주연은 누군가가 자신의 아들을 다른 곳으로 데려가는 걸 느꼈다. 혼돈과 광기 속에서 여러 가족이 흩어지는 와중에 또 다른 누군가가 주연의 몸을 들쳐 안고 옮기기 시작했고, 그렇게 해서 주연은 그곳을 떠나게 되었다. (-86-)
몇 년 전,유미는 틈만 나면 도망치곤 했다. 우리는 그 애를 쫓아가야 했다. 한번은 웅크리고 있는 그 애를 찾아낸 적도 있었다. 그때 내가 손을 뻗으려 하자 그 애는 어제 강둑에서 그랬던 것처럼 비명을 질러댔다. 그래서 나는 맞은편에 앉아 몇 시간이나 이야기를 하며 그 애가 잠들 때까지 기다렸다. (-120-)
해리는 가운을 단단히 여미고 두 손에 입김을 불었다. 머리 바다 위 어두운 수평선 근처에서 작은 배 한 척이 유리 위를 미끄러지듯 질주하고 있었다. 어디로 가는 걸까? 해리는 문득 그들의 바로 동쪽, 바다 건너에는 뭐가 잇는지 알지 못한다는 걸 깨달았다. 작은 배가 그리로 가서 다른 해안에 닿으려면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는지도 알지 못했다. (-175-)
그는 이곳으로 이사를 오면 어떨까 생각해본다.식당에서 일하면 어떨까. 커다란 유목 조각을 ,아니면 무거운 바윗덩어리를 찾아내서 그 어부들을 한 번에 한 명씩 해치우는 거다. 나머지 어부들을 꽁꽁 묶인 채 강제로 그 광경을 보고 있을 것이다. (-221-)
작가 폴 윤은 한국계 미국인으로서,이주민 가정에서 성장한 체험, 경험을 가지고 있다.그는 자신의 인생 경험, 주변에 자신과 비슷한 체험을 하였던 이주민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한국계 이주민이 역사속에서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이야기를 수집하였고, 7편의 단편소설을 완성했다.
소설 『벌집과 꿀』의 공통점은 코리안 디아스포라 (diaspora) 이다. 유대인이 이스라엘을 건국하기 전, 수천 년동안 자신의 민족을 지키면서 떠돌아 다녔다,. 그들이 전세계를 떠돌아 다닌 과정에서,유럽 사회에서, 홀로코스트가 발생하게 되었고,유대인 학살이 일어났다. 이와 같은 일이 한국 사회에도,한국인의 역사에도 존재한다.
일제강점기 36년간의 시간 동안 한반도가 아닌 다른 장소로,전쟁이나, 이주, 유배의 형태로 떠돌아 다니는 삶을 살아왔다. 최근 이란과 이스라엘의 전쟁으로, 이란인이 피난 길을 떠난 것과 같은 일들이 우리에게 일어난 것이다.그들을 고려인이라 부르기도 하였고,피부가 비슷하다는 이유로 일본인으로 착각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몸을 보호할 수 없었고,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존재하지 않았다. 나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수단은 오직 내가 머물러 있는 현지인에 의해서다. 눈치보고 살아왔고, 그들이 원하는 것에 따라야 했다. 몸을 바치거나, 일을 통해서, 자신의 가치를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이런 과정들이 이주민의 역사 속에 숨어 있으며,지금처럼 평화로운 삶이 채 80년에 불과하다는 걸 일깨워주고 있다. 민족성, 뿌리와 정체성, 개인에게 날카롭게 새겨진 상흔, 외로움과 갈망, 인간과 인간이 서로 연결되고 싶은 마음 뿐만 아니라 좌절의 아픔도 존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