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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적당한 말이 없어
정선임 외 지음 / 해냄 / 2025년 3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뜬금없는 고모 타령에 나는 당황했다.고모는 옛사진과 가족들의 대화에나 등장하는 사람이었다. 서른이 되던 해, 40일 동안 여행을 가겠다고 집을 떠난 후 돌아오지 않았다는 말이 전설처럼 내려왔다. 내가 다섯 살 때부터 고모는 계속 여행 중이었다. (-15-)
클라라를 따라 게스트하우를 안으로 들어가다 흘깃 뒤를 돌아보니 노인은 계속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카운터는 텔레비전 앞에 있던 남자가 지키는 중이었다. 남자는 우리를 보자 술병 하나를 꺼내 들더니 지하로 내려갔다. (-31-)
"제로 하우스!"
하얀 대문 안으로 들어서자 넓고 탁 트인 정원이 보였다. 하얀 담벼락을 따라 어우러진 교목과 관목의 초록 이파리들을 보니 눈이 환해졌다. (-69-)
모하마디의 말에 엘리스는 주고 있던 칼을 식탁 위에 내려놓았다. 모하마디는 소금 통을 흔들 때처럼 빙글빙글 웃고 있었다. (-117-)
"저, 혹시 한국 분들이세요?"
쇼트커트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한국인이세요?우리 태국에 온지 열흘째인데 한국 사람 처음 만났어요."
파마 머리가 쇼트커트에게 말했다. (-147-)
소설 『우리에게는 적당한 말이 없어』에는 이방인 타인에 대해 다루고 있는 네 편의 소설, 엔솔로지로 되어 있다.이 소설 한 편 한편에는 우리들의 여행 이야기가 들어있다. 때로는 벗어나고 싶어졌고, 홀로 있고 싶어질 때도 있다. 어려서, 일지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큰 오빠를 아빠 삼아서 살아온 고모의 이야기가 낯설게 느껴지지 않은 이유는 나의 고모 또한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20세기 추억을 통해서, 21세기에 들어와서 새로운 경험을 얻을 수 있다.
우리는 가장 여행에서,새로운 것을 마주하고,그리웠던 것을 찾아낸다.그리움이 쌓여서 추억이 쌓여지고, 그 추억이 하나둘 셋 모여서, 삶 속에 깃들고 있었다.시간이 흘러서 생겨나고, 사라지는 게 기억이다. 어려서, 잊혀진 기억들을 여행을 통해서,소환하게 되며,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과 대화를 통해서. 마음과 마음이 통한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삶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다.서로에게 필요한 존재, 서로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된다는 것이 우리에게 너무나 소중하다는 걸 깨닫게 해주고 있다. 사람마다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으며,그 안에서 행복과 기쁨, 설레임과 낯설음을 마주하며 살아있다. 그 과정에서, 우리 스스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우연히 어디선가 마주할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이 벌어졌을 때,그 순간은 잊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