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인사
함정임 지음 / 열림원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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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없구요!"

그가 꺼낸 것은 발터 벤야민의 『모스크바 일기』 였다.

무슨 뜻인지, 책을 받아 든 채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러자 그가 멋쩍게 웃으며 기내에서 무료하면 읽어보라고 말했다. (-20-)



기욤의 설명을 들으면서 장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건축'이라는 제목의 전시를 보았던 것을 기억해 냈다. 소설을 읽고 싶은 마음이 몇 번 강하게 들었던 것도 환기했다. (-43-)



미나의 SNS 를 읽으면 ,시간도 종족도 , 사랑도 , 번민도,나라는 의식조차도 무가 되고, 새로운 시간, 새로운 출발점에 서 있는 기분이 되었다. 극히 단순해졌다. (-61-)



도시에서 길을 헤매도 그다지 큰일은 아니다. 하지만 숲속에서 길을 잃듯이 도시에서 길을 잃으려면 훈련을 필요로 한다. 이 경우 거리 이름이 마른 나뭇가지가 똑 부러지는 소리처럼 도시를 헤매는 이에게 말을 걸어 주어야 하며,도심의 작은 거리들은 산골짜기의 계곡처럼 분명하게 하루의 시간을 비추어 주어야 하나. 나는 늦게서야 이러한 기술을 터득했다. (-77-)



동성 간이든 이성 간이든, 우정은 하나의 역사였다. 장은 그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미나도 굳이 장의 대답을 듣기 위해 던진 질문은 아닐 것이었다. 벤야민의 두 번째 애인 아샤를 만나기 위해 모스크바에 갔다가 굼백화점에서 촉발된 파사젠베르크,곧 아케이드 프로젝트의 구상의 틀을 잡은 곳은, 요새가 있는 작은 포구 산 레모,이혼한 전 아내 도라의 집에서였다. (-113-)



윤과 밤의 모래 해변을 걸으면서 장을 생각하고 있었다. 장과 파리에서, 부르고뉴에서, 산레모에서, 마르세이유에서, 페르피냥에서, 포르부에서 불쑥 불쑥 카톡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던 윤중과 함께 했던 것처럼, 이번에는 윤중과 움직이면서도 머릿속은 온통 장에 대한 생각 뿐이었다. (-158-)



소설 창작과 연구를 병행하고 있는 ,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함정임 작가가 쓴 『아주 사소한 중독』을 읽었다. 1989년 동아일보에 「광장으로 가는 길」 로 등단하였으며, 소설 『밤 인사』 는 등단 35년 만에 나왔다.소설 에 대해 간략하게 언급한다면, 10년 동안 구상하고, 만들어 나가면서, 단편 소설 「어떤 여름」이 장편 소설 『밤 인사』로 이어졌으며, 짧은 에세이가, 단편소설이 되고, 단편은 중편, 장편소설로 확장되는 마법 같은 일을 느끼게 하고 있었다.



소설 의 주인공은 미나와 장이다. 두 사람은 우연한 만남으로 함께 하였고, 헤어진다. 한국인 혼혈인 장은 미나의 SNS를 훔쳐 보곤 했다.그 안에 미나의 일상과 감정, 삶의 발자국을 찾을 수 있었으며,자신의 내적인 변화와 연결하고자 싶어했다.여전히 자에게 미나는 익명인 존재였다.



소설에 행간과 자간이 있듯, 인생에도 행간과 자간이 있다. 어떤 일이 우연히 일어나는 건 아니다. 인과관계가 존재하며, 어떤 행위가 우연히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미나의 행동과 미나가 지나간 어떤 특정 장소에 대해서, 울산 간절곶을 지나오면서, 장은 미나와 함께 했던 10일 간의 기억이 현존하고 있었다. 그녀의 존재는 곧 익명으로 처리하고 있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찭아서』 에 대해서, 키스에 대한 욕망, 포르부 이야기에 대해서, 독일의 철학자 '발터 벤야민'의 인생을 놓치지 않고 싶었다.이런 흐름이 이 소설에서 느껴지고 있으며,미나와 장에게 밤 인사가 어떤 의미를 주는지 깨우쳐 주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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