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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2 강리도 - 아프리카를 최초로 그린 세계지도의 탄생
김선흥 지음 / 네잎클로바 / 2022년 11월
평점 :

<강리도>는 지도 제작을 맡았던 조선의 사대부들이 중국 전통을 답습하지 않고 동아시아 너무 '오랑캐' 땅까지를 조망할 수 있었기에 가능한 세계사이었다. 중국인들은 곧잘 조선인들을 오랑캐로 보았지만, 조선인들은 '세상의 끝에 무엇이 놓여 있던 간에 (그것을 배제하지 않고) 그 영역과 역사를 독자적으로 나타내고자 했다.
<강리도>가 전통적인 중화주의를 벗어나 중국 너머의 세상을 자주적으로 지도에 담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반면에 국내의 강리도론을 읽다 보면,마치 다른 지도를 논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40-)
아프리카 위로는 압착된 지중해가 보인다. 지중해 남쪽 해안으로는 모로코와 이집트, 북쪽 해안에는 이타리아와 그리스가 나타나 있다.유럽 부분에는 약 100개의 지명을 싣고 있는데 지명에 대한 철저한 연구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프리카와 유럽의 지명과 형세가 실린 것은 몽골 시대에 원나라 황실에서 활동했던 아랍 지리학자들의 영향이다.<강리도> 의 국명을 보면 고전적인 라틴어의 맛이 느껴진다. 이를테면 스페인의 라틴어 이름 'Hispania'를 강리도는 '亦思船的那(이스반디나)' 로 옮겼다. (-88-)
1991년 말 미국의 워싱턴에 출현했던 강리도가 꼭 10년 만에 ,이번에는 아프리카 남단에 등장하여 다시금 세인의 이목을 집중시킨 것이다. 특히 남아공 사람들은 <강리도>가 자국의 산맥과 강을 그리고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이렇게 가정해 보자.만일 1402년 남아공에서 그린 세계지도에 우리의 해안선 형태가 나타나 있고 지리산과 낙동강 혹은 섬진강이 그려져 있다면, 우리가 그 지도에 놀라지 않을 수 있을까? 그 지도를 전시하지 않을 도리가 있을까? (-117-)
역사상 최초의 대학은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1096) 도 이탈리아의 볼로냐 대학(1088) 도 아닌, 바로 859년 페스에 설립된 알카라윈 al-Qarawiyyin대학이다.이 대학은 또한 여성에 의해 설립된 최초의 대학이기도 하다. 파티마 라는 여성이 상인 아버지가 남겨준 재산으로 세운 대학이라고 한다. (-163-)
즉,외면적으로는 세계 최강의 강대국인 중국 중심의 세계 질서를 인정함과 동시에 내면적으로는 상대적 비례로 중국보다 훨씬 크고 위풍당당한 주체성을 자기다짐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강대국들의 틈 속에서 외세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우리에게 통찰과 영감을 준다. 외면적으로는 힘이 지배하는 국제 사회의 현실을 적절히 존중하면서 내면적으로는 주인으로서의 당당한 주체성을 잃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196-)
무튼 <강리도>는 '염지'로써 고대 중국 역사서에 나오는 호수의 존재와 위치를 확인해 주고 있다. 그런데 왜 호수를 그리지 않고 원 안에 정보만 기입했을까?그건 지도를 그렸던 당시의 지리 정보가 아니라, 고대에 그 호수가 그 자리에 존재했었다는 기록으로 여겨진다. 말하자면 고고학적 정보인 셈이다. 이게 바로 헤딘이 말하는 서기 4세기에 이동해 버린 호수의 옛터가 아닌가. (-266-)
1884년 봄, 한양의 미 공사관에 버나두 라는 미 해군 소위가 부임했다. 이 사람의 임무는 기이했다. 해군에 관한 일이 전혀 아니었다. 외교 업무도 아니었다. 오직 조선의 민속 자료와 문물을 수집하는 것이었다. 그는 유명한 스미소니언 협회의 에이전트였다. 스미소니언 협회는 사실상 미국 정부 기관이다.이 기관에서는 1881년부터 미 해군 요원을 파견받아 해외 문물 수집 기술을 익히게 했다. 훈련을 마친 요원들은 세계 각처로 파견되었다. 스미스소니언에서 훈련을 마친 버나두는 조선에 가기를 희망했다. 1883년 말 정식 발령을 받는 그는 샌프란시스코 항에서 미 군함 알러트호 USS Alert 에 올랐다. 이듬해 2월 14일, 일본 나가사키항에 도착한 후 미군함 주니아타호 USS Juniata 로 갈아타고 3월 1일 제물포에 도착했다. 이후, 그의 요청으로 윤치호는 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게 된다. (-312-)
같은 시공간을 살다 간 서양인 중에는 현지 주민과 그 지명, 역사와 문화를 몹시 존중했던 사람도 있다.이제 그 사람을 만나 본다. 2009년 11월 어느 날 <대동여지도>가 미국 위스콘신밀워키 주립대학의 도서관 수장고에서 발견되었다.이 지도는 조지 포크 George Clayton Foulk(1856~1893)라는 미국 해군 장교이자 외교관이 조선에서 입수하여 고국의 부친에게 보낸 것이다.입수 경위는 불분명하다. 조지 포크는 해군무관 발령을 받고 1884년 6월 1일 조선에 들어온 군인이자 외교관으로 조선이 제국주의 열강들의 야욕 앞에서 풍전등화 신세였을 때, 조선의 자주독립과 근대화를 위해 젊음을 바친 특이한 우인이었다. (-348-)
실크로드는 세계의 상이한 지역들 사이에 이루어진 문화와 교역을 배경으로 한다. 유구한 역사를 통해 이룩된 이 문명과 사람들 간의 교류는 다양한 지식의 공유를 가져왔다. 이러한 지식은 철학 ,수학, 천문학,지리학 그리고 지도 제작을 포함한다. 특히,지도는 세계의 문화활동과 세계관을 잘 보여준다.그 깊은 역사를 증거하는 네 종의 지도가 있다. 즉, <프톨레마이오스 세계지도>(서기 150), <이슬람 세게지도>(서기 1154) <카탈루냐 지도첩>(1375) 그리고 한국의 세계지도인 <강리도> (1402) 이다. (-401-)
남아프리카 공화국에는 총 길이 2,200km 의 오렌지강이 있으며,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가장 긴 강이다. 레소토의 드라켄즈버그산맥에서 발원하여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동서방향으로 관통하여 대서양으로 들어가는 강이며, 조선 태종 2년에 만들어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류코쿠본에 남아있다. 책 『1402 강리도』는 조선 초기에 제작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에 대한 재평가를 위해 ,지도탐험가 김선흥 저자의 20년 역작이다.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는 조선 2대 왕 정종 때부터 3대 왕 태종 때 완성된 지도이며, 정화대함대가 전세계를 항해 하기 전에 만들어졌다.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의 원본은 유실된 상황이며, 현재 교토대학 모사본, <강리도> 류코쿠본(171.8 *164cm), 혼코지 본(276*219cm),텐리대본(대명국도, 174 X 135. 5cm),혼묘지본 (169.2 X134.7cm) 가 남아 있으며, 15세기 지도를 가지고,지금도, 파리로 항해를 떠날 수 있을 정도로 지도의 정확성은 600년의 시대를 뛰어 넘어 조선의 높은 지도제작 기술을 엿볼 수 있다.
책 『1402 강리도』을 통해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의 시대적 의미를 재확인할 수 있으며,통상적으로 조선이 통일신라시대 이후, 중국 수나라, 당나라, 명청시대에 종속되지 않은 국가로 존재한다는 걸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를 통해서,보여주고 있으며, 중국 땅과 조선 땅의 크기를 서로 비슷하게 그려 놓은 이유다. 일본 땅의 일부가 지도에 있으며 ,아프리카와 이슬람 세계, 중동,아시아와 인도까지 아우르고 있으며, 희망봉 발견 이전에 조선이 그 바다를 지나왔다는 것을 추정하게 된다.
즉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이전의 지도는 지도의 디테일한 면에서 떨어진다. 지금의 지도에서,위도와 경도의 개념이 거의 존재하지 않은 지도들이며, 왜곡이 심한 지도 일색이다.지도 제작기슬이 다변화하고,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15세기 지도의 표본이 될 수 있었다. 21세기 지도의 역사에서, 4개의 지도 (<프톨레마이오스 세계지도>, <이슬람 세게지도>,) <카탈루냐 지도첩>, <강리도>)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으며,대한민국에 ‘지도의 날’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해야 하는 까닭을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콜롬버스가 유럽 대륙을 지나, 인고인 줄 알았던 땅이 신대륙이었음을 밝혀내기 전, 조선의 지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가 현존하였다. 특히 이 지도의 가치는 15세기 경 유럽과 아프리카 땅의 지명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으며,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지명에 대한 지리학적 연구가 필요하다. 더 나아가, 15세기 이전의 고고학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으며, 지리학적인 관점 뿐만 아니라 세계사적 관점에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의 가치를 재확인할 필요성을 가지고 있다. 15세기 당시 유럽인의 지도 중에, 1402년에 제작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에 버금가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미의회도서관 측에서 『CARTOGRAPHIA>를 통해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