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의 사랑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개정판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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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침 나는 여섯번째이자 마지막으로 죽은 금붕어를 비닐봉지에 싸서 대문 밖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다. 자흔이 떠난 뒤의 나흘동안 그녀의 물고기들은 아침마다 한 마리씩 두마리씩 허연 배를 뒤집으려 수면으로 떠올랐다. 자흔이 하던 것과 똑같이 정성껏 먹이를 주고 물을 갈아주었지만 나는 그것들의 죽음을 막을 수 없었다. (-11-)



정열적인 아리나는 자흔의 허리와 어깨를 채찍처럼 내갈겼으며,그녀는 묵묵히 그것을 맞으며 맥없는 손과 발을 움직거리고 있었다. 그런 자흔의 얼굴이 너무도 어둡고 외로워서 나는 내심 사람이 저렇게까지 불행할 수도 있구나,하는 생각마저 하곤 했던 것이었다. (-37-)



자흔이 떠나기 전날 밤,이가 부딪치도록 차가운 세면장 바닥에 웅크려 앉아 나는 자흔의 앙상한 팔을 붙앉고 애원했었다. 처음에는 "안돼요"라고 또렷이 대답했던 자흔은 "가지 말아요,가면 안 돼요"라고 또렷이 대답했던 자흔은"가지말아요, 가면 안 돼요" 라는 말을 되풀이하며 떨고 있는 나의 머리를 자신의 가슴에 끌어다 안았다. (-62-)



과연 암고양이는 죽어가고 있었다. 점차 발작적으로 경련하고 있었다. 스레이트 지붕이 바람에 흔들리지 않도록 여기저기에 흩어 놓아둔 벽돌 조각들은 암고양이의 등과 배가 닿을 때마다 덜그럭거리는 소리를 냈다. 차츰 암고양이의 고함은 처절해졌다. 수고양이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무엇이 그놈으로 하여금 제 짝의 죽음을 지켜보게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84-)



체격 때문인지 동걸은 주량도 상당했다.스무 살이나 스물한살이었던 우리들의 술 모임은 동걸과 나까지 일곱 명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우리는 모일 때마다 폭음을 하곤 했는데, 똑같이 잔을 비운 동걸은 좀처럼 행동이 흐트러지지 않았다. (-146-)



청량리역을 벗어난 열차는 속력을 내고 있었다. 캄캄한 선로를 달리고 있구나 하고 나는 생각했다.

그러자 문득 선로 옆에 서 있는 집들과 창문과 커튼과 그 속에 오글오글 잠든 사람들이 그리워졌다. 나는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오랫동안 가보지 못했던 고향에라도 돌아온 것 마냥 편안했다., 나는 잠들었다. (-178-)



인규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들 식구는 시골에 살았다. 인규의 아버지는 사이다병에 담아놓은 농약을 단숨에 들이켜고 죽었다. 어머니의 나이 서른다섯 살,인규는 열 한살, 코질질이 동네 북이던 동생 진규는 여섯 살 때의 일이었다. (-213-)



어머니는 실성한 사람처럼 보였다.날만 밝으면 "진규야, 우리 진규우"하고 목을 놓아 울었다. 진규는 겨우 일곱살 난 어린아이였으므로 관을 자지 않았다. 의붓아버지는 거적때기로 진규를 둘둘 말아 등에 지고 산으로 갔다. 봉분도 세우지 않고 진규를 묻었다. 진규의 몸은 유난히 작아서 땅도 아주 조금만 차지했다. (-215-)



그날 아버지는 어머니를 반죽음이 되도록 두들겼다. 광기 등등한 아버지를 말리다가 오히려 표적이 된 정환과 정임은 진달래 능선으로 도망쳤다. 정임이의 뺨은 터서 발간 핏자국이 얹혀 있었다. 정임이는 배가 고프다며 꽃잎을 씹어 삼키고 있었다. 정임이가 지나온 자리는 그 키가 닿는 만큼 표가 나고 있었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었을 때 정임은 검붉든 물이 잔뜩 든 입술을 깨물며 훌적거렸다."배고파 오빠"정임은 기어코 주저앉아 발을 뻗었다. (-252-)



동식은 떠나려 하는 만원 버스에 다려가 매달렸다. 간신히 층계를 올라가 토큰을 떨어뜨렸다. 산소가 부족한 후끈한 공기를 들이마셨다. 그보다 키가 큰 사내들 사이에서 ,호홉이 가쁜 만큼 가슴과 등이 짓눌리는 것을 느꼈다. 삼십여분의 괴로운 여정 끝에 동식은 땀투성이가 되어 버스에서 내렸고, 믿기지 않을 만큼 서늘한 골목길에서 그는 환상이 아닌 사내의 모습을 보았다. (-285-)



2024년 한강 작가가 노벨 문학상를 타면서,그녀의 책이 하나하나 독자들에게 팔리기 시작했다.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이외에, 우리가 소설가 한강의 『여수의 사랑』을 눈여겨 보아야 할 이유는 20대 중반 1990년대의 정서와 한국인의 일반적이 사고방식 뿐만 아니라,사회적인 흐름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1970년대 생 한강 작가는 1930년대에 태어난 부모가. 1960년대를 살아가고 있는 그 모습을 고스란히 살려내고 있다.



1990년대,이제 민주화사회로 접어들면서, 사회적 변화가 시작되었다. 음울하고, 폭력적이며,예민함이 느껴지는 소설 『여수의 사랑』 에는 소설가 한강 이 『서울신문』 1994년 신춘문예당선작으로 「붉은 닻」 이 소개되고 있으며., 『리뷰』 1994년 겨울호 에 수록되어 있는 「여수의 사랑」 이외에, 「어둠의 사육제」, 「야간열차」, 「질주」 , 「진달래 능선」이 함께 언급되고 있다. 여섯 편의 단편 소설 속에, 소설가 한강의 이십 대의 삶 뿐만 아니라,문학적인 정체성도 함께 마주하고 있다.



소설 『여수의 사랑』을 읽으면, 1960년대~1990년대 우리 사회가 얼마나 폭력적이며, 분노로 들끌었는지, 알 수 있다. 이십대 여성의 문학적 가치관 속에는 지금과 다른 아날로그적인 가치관이 살아있다.낡은 기찻길, 통일호와 무궁화호가 지나가던 그 기찻길에는 사람이 모이고,기차에 대한 낭만적인 추억이 존재했다. 소설가 한강은 그 누구보다도 폭력에 대해 극도의 예민함을 보여주고 있으며, 소설 속 주인공들이 우리 사회의 폭력에 대해서,어떻게 대응하고, 자신의 지식과 지혜로 대처하고 있는지 엿볼 수 있다. 소설가 한강은 자신이 쓴 소설에 대해 개정판을 낼 때,문장을 다듬어가는 그 시간들에 대해서, 개정판이 독자들에게 폭력적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항상 마음에 품고 있다.소설가 한강이 생각하는 폭력이란, 육체적인 폭력 뿐만 아니라,정신적인 폭력, 접촉에 근거한 폭력 뿐만 아니라,비접촉적 폭력도 포괄하는 독특한 정서를 추구하는 문학을 추구하고자 한다.



소설 『여수의 사랑』에 여섯 편의 단편 소설에는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죽음이다. 차가우면서,뜨거운 , 조용하지만,강한 모습들, 작아 보이지만 결코 작지 않은 모습에 대해서, 역설적인 가치관이 소설 속에 숨어 있으며,위의 집단적인 무의식을 건드리고 있다. 1993년 10월부터, 1994년 10월까지 쓰여진 소설들, 스물 세살에서,스물 네살에, 쓰여진 글들은 한강의 초기의 문학을 이해할 수 있으며, 여수의 사랑의 지흔과 정선, 질주의 인규와 진규 형재, 야간열차의 영현과 종걸, 진달래 능선의 정환과 황씨, 어둠의 사육제의 졍진과 영환에 대해서, 서로가 분신이며,각자 자아의 충돌 뿐만 아니라,분신의 출현과 설정에 대해서, 개인의 실존의 불안정하고,불확실한 모습,자기 분열적인 가능성까지 놓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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