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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병철이다 - 굴치 않는 1등 정신으로 반도체에 명운을 건 생애 ㅣ 나는 누구다
박상하 지음 / 일송북 / 2025년 1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세계적인 글로벌 기업 삼성그룹이라는 거대한 숲을 만든 호암 이병철은 1910년 경남의령군 정곡면 중교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의령에서, 부잣집이었으며, 기술과 자본이 없었던 대한민국에서, 26살 되던 해, 세 사람이 동업하여, 합동정미소를 만들었다. 대한민국의 수출 견인차였던 마산에 수백만 섬의 쌀이 모였으나,도정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눈여겨 보았으며,쌀을 도정하는 정미소가 돈이 된다는 것을 일찌기 알게 된다.
이병철은 사람이 모이는 곳에 돈이 흐른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합동 정미소, 조선 양조장을 잇달아 창업하였고, 설탕을 가공하는 제일제당을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기술 하나 있으면, 돈을 벌수 있고, 큰 사업을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하였으며, 세 개의 은행을 만들었으나, 국가에 헌납할 수 밖에 없었다.
그의 탁월한 경제적 안목을 1987년 사망하기 전까지 50여개의 삼성 그룹 내 계열사를 만들어 나간다. 그 과정에서, 삼성 반도체는 무모한 사업이며, 미래를 일찌기 내다보았던 그의 무모함이 삼성을 세계의 기업으로 완성하였고,한국이 후진국에서,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데 큰 역할를 하였다.
이병철의 70 여 년의 인생은 속담'골이 깊으면 산도 높다"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는 성공도 많았지만, 사업 실패도 있었다. 중일전쟁으로 자신이 일구었던 사업을 통째로 날렸다. 그리고, 박정희 정권, 전두환 정권 당시,세계의 금융 은행을 가지고 있었지만, 통폐합되고 말았다. 제조업 기업 삼성이 금융 기업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지만, 대한민국 국내 상황은 그걸 허용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그는 미래를 내다본 대한민국 최고의 CEO였다. 막대한 자본이 있어야 하는 반도체 산업, 기술이 집약된 반도체 산업에 1983년에 뛰어들었고, 4년의 긴 시간 동안 일본과 기술 경쟁에서,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일본과 한국의 반도체 기술 격차를 극복하기 힘든 상황에서, 1M 바이트의 반도체가 만들어지면서,일본과의 기술의 차이가 좁혔으며,서서히 일본을 앞지르기 시작한다. 그것은 대한민국과 삼성 그룹이 살 길은 최고의 기술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을 일찌기 느꼈기에 가능하였다.
그가 벌어온 돈으로 1987년 삼성종합기술원(三星綜合技術院) 을 설립하였고, 장남 이맹희, 차남 이창희가 아닌 3남이었던 이건희를 차기 후계자로 낙점하였던 건 그가 일구어 놓은 삼성이 무너지는 것을 눈으로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삼성 지분의 90퍼센트 이상을 이건희에게 줌으로서, 이건희 리더십에 힘을 실어주었다.
꾸준히 후계자 수업을 받았던 첫째 이맹희가 아닌, 3남이었던 이건희를 차기 삼성 그룹 CEO로 낙점하였던 건 ,그가 보여준 리더십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말은 어눌하지만, 철두철미하게 계획을 세우고, 이건희 특유의 신중함과 치열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후 삼성 그룹 반도체 산업은 개인 컴퓨터가 등장하고, 모바일 산업이 커지면서, 더 성장할 수 있었으며, 글로벌 기업으로 재도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