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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한국사 1 - 전근대편 ㅣ 시민의 한국사 1
한국역사연구회 지음 / 돌베개 / 2022년 6월
평점 :

고조선은 이러한 청동기 문화를 바탕으로 성립해 요동-서북한 지역을 아우르며 중국의 전국시대 연나라와 대결할 정도로 성장했다. 기원전 3세기 초에 연의 공격을 받아 서방 영토를 크게 잃었다가 위만이 정권을 잡은 다음 세력을 회복했지만, 기원전 108년에 한나라의 공격을 받아 멸망했다. (-30-)
낙랑군 대방군이 소멸한 4세기 초 이후, 사로국은 진한 소국에 대한 통제와 병합을 더욱 적극 추진했다. 가까운 소국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한편, 멀리 떨어진 전략 요충지에 성곽을 축조하고 군대를 보내 지배거점을 확보했다. (-77-)
한편 7세기 말에는 만주 지역에서 고구려 유민이 발해를 세웠다.발해왕은 스스로를 '고려국왕'이라 일컬으며 계승의식을 드러냈고, 당일본과 활발히 교류하며, 2세기 가량 번성했다. 발해와 신라의 공식관계는 우호적이지 않아서 때로는 경쟁하기도 했지만, 동해안 육로 교역과 왕래가 이어졌다. (-141-)
이에 대응해 당은 733년(무왕 15)에 대문예에게 군사를 주어 발해를 공격하도록 하는 동시에 신라에도 참전을 요구했다. 그러나 당군의 공격은 실패했고, 신라군도 폭설을 만나 피해를 입고 성과 없이 돌아왔다. 그럼에도 돌궐과 거란이 당에 항복하고 신라가 다시 발해를 공격할 계획이 있었기에 , 발해도 735년부터 당에 사신을 보내며 국교 재계에 나섰다. (-207-)
9세기 후반부 동아시아 각국은 동요하기 시작했다. 당과 신라가 지방세력의 할거로 각각 5대 10국과 후삼국시대로 접어들며 쇠퇴할 무렵, 서요하의 상류인 시라무렌강 일대에서 유목생활을 하던 거란족을 아유아보기가 916년에 통일하고 요(遼)를 세웠다. 요는 북중국을 정복할 계획을 세우고, 그에 앞서 배후를 확보하기 위해 서쪽의 탕구르와 동쪽의 발해부터 공격했다. (-209-)
사전폐지에 대한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사전 폐지로 당장 피해 입을 권문세족은 사전이 오래된 관행이라는 점을 들어 반대했다. 그러나 이성계의 권력에 힘입어 사전 폐지는 결국 실행됐고, 1391년에는 새로운 토지제도 과전법이 제정됐다. 신진사대부 출신 관리들이 수조권을 제대로 지급받게 됐으며, 수조권의 중복 문제도 해결돼 민생 개선에서도 효과를 거뒀다. (-263-)
고려는 중앙정부나 지방관청에서 필요한 물품을 기술자들이 직접 동원하는 방식을 채택했기에 상업이 성장할 수 있는 토대가 부족한 편이었다. 산지가 많아 육상을 통한 교역이 불편햇던 지형적 불리함.상인계층의 독자적 성장을 지원하지 못했던 사회구조나 통치이념 등도 상업의 발전을 저해했던 주요 요소다. (-303-)
고려의 지식인은 유교 불교와 함께 도교적 소양을 갖추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고려중기에는 세상을 피해 현학과 청담을 추구하는 도가적 분위기가 문인들 사이에 유행하기도 했다. 이외에 장례문화에서도 도교의 영향을 찾을 수 있다. 고려시대의 석관에는 해,달 또는 북두칠성과 별자리나 사신인 주작, 현무, 청룡,백호를 새기기도 했고, 무덤을 조성할 때는 매지권을 같이 묻기도 했다. (-343-)
책 『시민의 한국사 1- 전근대편』을 읽고 싶었던 건,『현재사는 심용환』 을 통해서다. 2년전 이 책이 처음 나왓을 때, 국정 교과서와 다른 관점에서 역사를 기술하고 있으며,일반인이 잘 모르는 한국사를 다룬다고 언급하였기에 관심 반 호기심 반에 골랐다.
이 책을 통해, 한국의 역사는 중구의 역사와 맥락을 같이하고 있으며, 중국 정권 교체기에 ,한반도의 역사에 큰 변화가 나타나고 있음을 재확인하게 해주고 있다. 고조선이 중국의 위만에 의해 무너지고,위만 조선이 세워진다. 이후, 동예 옥저, 부여와 같은 부족국가가 생겨나고 진한,변한,마한이 남쪽에 부족국가로 존재했다. 이 과정에서, 부여는 고구려와 백제 역사의 뿌리 및 시조가 된다.
고구려,백제,신라시대로 구성된, 삼구시대에 접어들게 되었으며,고구려와 수나라간의 전면전이 있었다 세나라 중 가장 약했던 신라는 나당연합군으로, 백제와 고구려를 차례로 멸하였으며 , 나당 연합군은 목적을 상실하였으며,신라는 당나라를 한반도에 몰아낸다. 고구려 유민이 세운 나라가 발해가 되었다. 한반도의 역사 주에서,가장 큰 땅덩어리는 신라와 발해가 함께 했던 698년부터 926년 사이이며,해동성국 발해의 역사를 `남한의 역사학자와 북한의 역사학자가 서로 교류하여, 재정리할 필요가 있다.
시민의 한국사 전근대편은 구석기시대부터, 조선까지의 역사를 다룬다. 한반도의 역사 중 100년을 제외한 나머지의 역사다.불교를 숭상했던 고려의 역사를 이해하고, 억불수요정책으 펼쳤던 조선이 추구하였던 역사로 접어들었다. 외척을 배척하고, 거란,여진,왜나라를 오랑캐라 하였던 우리가 배운 역사관에 대해서,애국심, 국뽕으로 가득한 역사가 아닌,현대인에게 성찰과 반성을 도모하는, 역사관을 우선한다.,역사는 정답이 없다. 대한민국은 다섯개의 강대국으로 둘러쌓여 있는 나라다. 서로 이해관계에 따라서, 대한민국은 외교력을 발휘하여 문제를 해결했다.중국의 힘이 강해지면, 우리는 중국과 협력하고, 일본의 국력이 강해지면, 일본과 협력하는 관계를 추구하였다. 지금은 미국이 세계의 패권을 쥐고 있기 때문에,,한반도는 친미노선을 견지하고 있다. 하지만,이 역사적 흐름은 유동적으로 바뀌고, 그때에 따라서,오판하고, 역사의 흐름이 전환됨으로서, 나라의 국운이 바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