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와 스폰서 - 대통령이 스폰서가 된 나라
정용재 증언, 구영식.정희상 지음 / 비아북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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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을 집행했던 검사 출신 대통령이 왜 이런 반헌법적인 일을 벌인 것일까?역설적이지만 검사 출신 대통령이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비현실적인 한밤중 쿠데타는 검사 우월주의 혹은 선민의식에서 비롯됐다. 평생을 선과 악, 불법과 합법이라는 이분법으로 세상을 판단해온 검사의 외눈박이 시각, 자신들만이 선악을 척결할 수 있다는 오만과 독선의 선민의식, 수사하는 검사처럼 국정을 운영하는 수사통치, 헌법보다 형법을 우선하는 통치 스타일 등이 쿠데타를 배태했다. (-7-)



김준규 전 검찰총장이 지난 2010년 5월 12일 사버연수원 특강에서 이렇게 말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권력과 권한을 견제하는 것은 맞지만 검찰만큼 깨끗한 데를 어디서 찾겠습니까?"

'떡값을 받는 검사'를 가리키는 말인'떡검'의 실체를 알고 나면 나올 수 없는 발언이었다. (-52-)



검사 출신을 대통령에 앉혀놓으니까 그렇다. 이 사람은 검사를 한 거 말고는 아는 게 없는 사람이다. 인사를 보좌하는 직책에다 검사 출신을 앉혔다. 검사와 검찰수사관이 어떤 직책에서도 유력한 후보군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인재군을 협애하게 쓰는 거다. (-96-)



법인 연대보증 때문에 70억 여 원을 물어줬다. 그래서 남한건설을 계속 운영할 수가 없어 문을 닫고 부산으로 넘어왔다. 부산에서는 대기업 공사의 시공 참여자로 선정됐다. 협력업체가 된 이후에는 돈을 많이 벌었다. 이때도 물론 전주지청에서 근무하던 검사들과는 계속 연락이 유지됐다. (-126-)



크나큰 실망만 안겨준 특검 결과 발표가 있고 나서 나는 심신이 더욱 피폐해졌다. 10월 18일에는 그동안 입원해 있던 대동병원에서 부산 시내 다른 병원의 정신과 폐쇄 병동으로 옯겨 치료를 시작했다. 진상규명위원회와 특검 결과 발표에 대한 절망감, 허탈함에 어이가 없었고 그로 인해서 잃은 게 너무나 많았다. (-199-)



2010년 4월 PD수첩에서,3부작으로 연속 검사와 스폰서에 대해 다뤘다. 검사와의 전쟁이 시작되었으며, 그 중심에 부산의 건설업체를 운영하고 있었던 정용재씨다. 그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어버지의 건설 사업을 물려 받았다. 이십대 젊은 나이에 건설업체 남한건설 대표가 되었다. 그는 사업을 우영하느 과정에서, 검사와 유착관계가 있었으며, 후원,스폰서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게 된다.검사들은 필요한 것을 요구하였고, 들어주는 입장이었다.흔히 밀하는 떡검, 섹검이 시작되었고,검사를 상대로, 촌지 뿐만 아니라,회식에 쓰여지는 회식 비용, 프리미언 술을 바치거나,직접 지불하게 된다.




권력을 돈으로 사는 대한민국 사회는 검사와 스폰서 관계는 필연적으로 따라오고 있다.기소와 수사 독점주의에 따라서, 검사는 묻어두었던 사건을 다시 꺼내 수사 기소하였고, 표적 수사도 불사하였다.건설업체 사장으로서, 공익제보에 나선 이유는 스스로 죽음을 각오한 상태에서, 모든 것을 걸었기 때문이다. 언론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기에, 시사인, 오마이뉴스,PD수첩이 유일한 소통 창구였다. 처음엔 반신반의했던 제보에 대해서, 정황 뿐만 아니라., 정용재가 말한 증거와 인물들이 가상의 인물이 아닌 실제 검사였다는 사실을 인지하였고,그것이 3부작 다큐로 만들어진 다음, PD수첩의 특종이 될 수 있었다.



2010년 검사와 스폰서가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았다면, 지금의 공수처가 만들어지기 힘들었을 것이다. 검경 수사권 조정 또한 검사의 비리와 비위에 있었다. 검사가 가지고 있는 힘과 권력을 분산해야 한다. 그들은 암암리에 ,서로가 서로를 봐주었고,언론에 나온 검사들의 부정 부패는 언제나 꼬리를 감추었다.대한민국의 민주화운동으로 중앙정보부가 사라지고, 대한민국 권력의 정점에 검사가 있는 검사공화국이 된 이유다. 아직도 대한민국은 검사와의 전쟁이 이어지고 있으며,검사를 대통령으로 만든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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