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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미
반고훈 지음 / 디멘시아북스 / 2024년 12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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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밖에서 길을 잃었다. 술을 사러 가던 길이었나? 그것도 잊어버렸다.
모르는 여자 손에 잡혀 공원 벤치에 앉아 있으니 잠시 후에 은미가 왔다. 은미는 큰 개 앞을 지나는 사람처럼 바짝 긴장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13-)
요즘은 만나는 사람마다 날 기억하냐고 묻는다. 꼭 세살배기 어린애를 대하는 것 같다. 무례함에 역정을 내면 오히려 이쪽이 별난 사람 취급을 받는다. 치매 때문에 끼치는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나는 항상 틀리고 저들은 항상 맞다. 정말 그럴까? 화투꾼 사이에 둘러싸인 호구가 된 기분이다. (-39-)
샤워를 마친 후 은미가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 주었다. 나도 충분히 할 수 잇는 일이었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꿈쩍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어린애처럼 벌거벗은 채 양팔을 쩍 벌리고 기다렸다. 새 옷으로 갈아입자 보송보송한 감촉이 좋았다. (-84-)
산다는 것은 주변 사람들과 함께 하는 일이다. 누군가과 같이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이 삶의 기본 원칙이 될 수 있다. 기억은 나를 인식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판단과 결정의 기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기억이 점점 사라지는 치매는 그렇지 못하다. 그들이 집 밖을 나가는 것은 , 4살 아이가 혼자서 박을 나가는 것만큼 매우 위험한 일이다.
소설 『은미』는 단순히 소설 이야기로 보이기엔, 우리 삶과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내 가족 중에 치매에 걸리게 된다면 , 모든 일상이 무너진다. 이 소설에서, 치매에 걸린 노인과 그 노인의 아내인 은미가 등장하고 있다. 대체로 치매에 관한 ㅣ야기들은 치매에 걸린 그들의 경험을 온전히 담아내기 힘들다. 대체로 그들을 바라보는 관찰자의 입장, 즉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은미의 관점에서 보는 게 일반적이다.하지만 이 소설은 달랐다.피매에 걸린 내 이웃의 모습이 자꾸 떠오랐다.
바로 치매 환자, 일흔이 넘은 노인의 입장이다. 일상 속에, 보호자는 위험한 것들을 숨기기 시작한다. 자칫 위험한 물건을 사용하다가, 다칠 수 잇기 때문이다. 어릴 적 아기를 키우면, 아기가 아장아장 걸어다니면, 부모들은 아기의 손과 발이 닫지 않는 곳에 물건을 두는 게 일반적이다. 이 소설에서, 노인도 비슷한 처지에 놓여지고 있다. 차이라면, 그 위험한 물건을 숨겨도도 어디에 있다는 것을 노인은 알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판단력이 흐려지면, 자신의 기준으로 상식이지만, 주변 사람의 기준으로 보면 비상식이 된다.바로 이런 부분이 치매 환자를 돌보는 모든 사람들의 걱정이자 근심이다. 특히 락스,나 샴푸를 건드리는 노인의 모습은 가볍게 볼 수 없는 요소다. 바로 119에 불러야 하는 상황은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