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2 조선 천재 3부작 3
한승원 지음 / 열림원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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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사영의 흉악한 음모와 비밀스러운 계책은 한두 사람의 힘만으로서는 이루어질수 없는 일입니다.거기에 연루된 자들은 정배되어 있는 죄인 정약용, 정약전, 이치훈, 이학규, 신여권 들입니다. 그들을 모두 다시 끌어다가 엄중히 국문해서 실정을 명명백백하게 알아내도록 하소서."

목표는 정약용을 죽이는 것이었다. (-14-)



심문을 마친 재파관이 배석한 심환지, 서용보, 이유수, 박장설 등의 재판관들과 더불어,죄인 정약용의 심문 결과에 대한 보고서를 어떻게 작성할 것인지를 논의했다.

심환지가 혐의점이 없으므로 풀어주라고 말했고, 이유수, 방장설이 그 말에 선뜻 동의를 했다. 사용보는 머뜩잖아하면서도 침묵한 채 고개만 끄덕거려주었다. (-24-)



순간 정약용은 '하아,이 강진 사람들이 손님을 거부하고 있다.' 하고 생각했다. 저 아낙이 자기 집에 손님마마가 들었다고 한 것은 나를 퇴치시키려고 한 거짓말이다.아낙은 내가 바로 손님마마 같은 천주학 귀신을 몸에 지니고 다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나를 가까이하면 천주학 귀신에 감염되어 죽게 될 터이므로 나를 피하는 것이다. (-46-)



'첫째로 ,생각을 말게 하는데도 불구하고 제대로 맑아지지 않으면 더욱 맑게 하고,둘째로 용모를 단정히 하는데도 불구하고 제대로 단정해지지 않으면 더욱 단정히 하고, 셋째로 ,말을 반드시 필요한 것만 말하되, 말을 밷은 다음, 그것이 꼭 필요치 않은 것이었다 싶어지면 더욱 잔말을 줄이고, 넷째로 , 행동을 무겁게 하되 제대로 무거워지지 않으면 더욱 무겁게 하려 애써야 한다.' (-99-)



"산가지를 쓰지 않고도 점을 칠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구만이라우.'주역'을 끝까지 완벽하게 다 공부하고 나서야 점을 치는 줄 알았는데, 전혀 백지상태에서 점을 치면서 조금씩 공부해간다는 것도 오늘의 큰 소득이었구만이라우." 하고 나서 기름접시 불을 죽였다. (-141-)



"임진란 때는 우리 서북 지역 백성들이 많은 공을 세웠고, 이런 저런 변란에는 우리 서북 지역의 수많은 충신들이 일어나 나라를 도왔다. 그런데 조정에서는 우리 서북인을 중용하지 않는다. 서울 권문세가는 물론 그 밑에 빌붙어 사는 노비들까지도 우리 서북인을 평안도 상놈이라고 멸시하니 분개하지 않을 수 없다. 북쪽 오랑캐를 제압하는 일에는 우리 서북인들의 힘을 비리면서도 ,조정은 4백 년 동안 우리 서북인들을 짓밟기만 했다." (-212-)



신부는 강진에서 온 신랑의 하인이 지고 온 함 속에서 나온 자그마한 그림 족자 한 폭을 가슴에 안은 채 울고 있었다. 그것은 만발한 매화꽃과 파랑새 한 마리가 그려져 있는 그림이었다. 그 그림은 유배 주인 아버지 정약용의 솜씨인데, 어머니 홍씨가 신혼 초에 입던 색 바랜 붉은 치마폭을 잘라낸 천에다 그린 것이었다. (-243-)



2024년 10월 10일 노벨문학상 수상자로,대한민국 소설가 한강 작가가 선정되었다. 『채식주의자』를 쓴 한강 작가의 작품이 선풍적으로 팔리면서, 아버지 한승원은 딸을 대신하여 인터뷰를 이어나갔다.소설가 한승원은 시대적 아픔을 안고 있는 현 상황에서,딸 스스로 인터뷰를 한다는 것이 조심스럽다고 피력하였다. 아제아제바라아제 등 다수의 소설을 출간한 작가였으며, 조선 3대 천재 다산 정약용의 인새을 그린 『다산』의 개정판이 재출간될 수 있었다.



그는 이 소설을 통해서, 송시열이 주도하였던 노론이 지배하는 조선 전기에 대해, 남인이 지배하는 조선후기로 전환기를 맞이하는 그 과정을 이 소설에 압축하고 있다.공자와 노장 사상,맹자와 주희의 주자학은 조선 후기 지배층의 필독서였다.그들에게, 뒤주에 갇혀 죽었던 사도세자의 아들 임금 정조가 새로운 인재르 구한다는 소식은 그들의 권위에 도전하은 것이었으며,천주학이 조선에 들어선다는 것은 남인이 조선의 지배층이 되는 것보다 더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서구사회에서,천동설이 지동설로 바뀌는 것만큼 역사적 전환기가 조선 후기 역사적 흐름이다.



소설 『다산 』의 첫머리에느 경세유표가 등장하고 있다.다산 정약용 스스로 경제에 대한 식견을 엿볼 수 있었으며,그 책이 다산의 저서 중 미밀에 부쳐진 책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1800년 정조가 승하하고, 순조가 11살 어린 나이에 집권하게 되는데, 영조의 계비였던 정순황후가 수렴첨정을 하였다. 남인이 지배하였던 조선은 노론의 지배로 바뀌었으며,순조 1년 1801년 신유박해가 이어졌으며,황사영 백설르 빌미로 하여, 조선 후기 천주교 탄압사건으로 불렸다.신유박해의 중심에는 정약용 일가가 속해 있었다.



흑산도로 유배되고,강진으로 유배되었던 정약용 일가는 그곳에서,자신의 학문적인 성과를 이어나갔다.유배지에서,자산어보아 경세유표가 만들어졌다. 1801년,정약용의 형 정약종 일가가 모두 죽어나간 와중에,정약용은 재판관 심환지에게서 살아남았다. 정약용에게는 천우신조였다..그가 죽었다면, 흠흠심서 경세유표, 목민심서가 태어나지 못했으며, 조선의 개혁은 요원하다. 서북인이었던 홍경래의 난은 그 과정에서 권문세도가의 처세에 대해서, 차별에 대한 저항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 조선 후기 혼란스러웠던 역사적인 흐름을 이해할 수 있다. 왕이 죽으면, 권력이 이동되고, 핍박과 차별로 나타나고 있다. 고문으로 죽어 나간 수많은 천주인들이 추구하였던 우주 천지에 대한 진리를 노론과 주자학을 추앙하던 이들은 용납이 되지 않았다.한승원 작가는 이 대목을 놓치지 않고 있다. 권력은 항상 이동하며, 삶과 죽음은 반복된다.국가는 피로 얼룩져 있으며, 그들의 피가 국가의 형(形)과 태(態)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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