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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바다
고동현 지음 / 바른북스 / 2024년 10월
평점 :
절벽은 해변에서 20여 미터쯤 되는 높이였다. 해변에는 자갈이 깔려 있었다. 그는 로프를 아래로 던졌다. 로프가 자갈밭에 닿자, 허리에 로프를 묶고 절벽을 탔다.자갈밭에 발을 디뎠다. 발을 옮길 때마다 자갈에 엉겨 붙은 기름에 군화가 질척거렸다. 휘발성분이 증발하고 응고한 기름 찌꺼지는 미끄러웠다. (-11-)
작전 지역 SN16-24.유조선 자이언트호가 침몰한 제주도 서북부로부터 12킬로미터 지점의 군도.군도의 모든 거주자는 섬을 떠난 상황. 동북쪽 암석 무인도에 배수량 4,000톤급 범선 발견. 한 명의 여자를 포함한 민간인 4~5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파악됨. 무장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음. 통신망 사용 불가 지역. 김진혁 대위의 송수신기에 무전이 잡힌 곳. 김 대위의 실종 경위를 조사하고 민간인을 설득해 임시보호소로 인도할 것. 나흘 후 수송용 헬기 도착 예정. (-18-)
순응하리라.
거대한 바람으로 돛을 부풀려라. 그것은 갈기갈기 찢기리라.그대의 손아귀로 돛대를 꺾어라. 철퇴 같은 파도로 난간을 부수어라. 아가리를 벌리고 검은 혀를 내밀어 갑판을 핥아라. 유리 날처럼 쏟아지는 햇볕을 반사해 눈을 멀게 하라. (-74-)
며칠이 지난 뒤, 서른 명 넘는 군인들이 섬에 왔다. 보호소로 피신시킨다는 명분이었지만 마을 사람에게 대하는 행동이 난폭했다. 마치 시위대를 진압하기라도 하는 듯 발로 차고 총구로 위협했다. 멀쩡한 사람도 마구잡이로 잡아들였다. 마을 사람들은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들이 숨을 곳은 한 군데뿐이었다. 남쪽 해안에 있는 동굴이었다. (-127-)
하루는 샤먼이 나를 찾아와 쉰 목소리로 말했네.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낳습니다. 그것을 막는 방법은 폭력을 행한 사람이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스스로 내어 놓는 길뿐입니다."
내 아이 호아의 피로 나 자신을 정화하라는 말이었지. (-166-)
그레이트호의 육중한 선체가 서서히 자태를 드러냈다. 강 중위는 시동을 걸고 기어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러다가 곧 기어를 중립으로 돌렸다. 그의 동공은 한껏 응축했고 빠르게 흔들렸다. 나는 그의 시선을 따라 눈을 돌렸다. (-218-)
불은 사그라지고 돛대는 부옇게 뜬 재에 싸였다. 불씨만 남은 장작처럼 벌겋게 달아 있더니 그마저 차츰 누그러졌다. 불기둥은 그렇게 파두아의 날개를 살라버렸다. 그는 검게 그을린 돛대를 번갈아 보았다. 갖은 바람과 비, 그리고 파도에 몸을 맡기며 힘겨운 항해를 이어온 파두아가 잠들 시간이었다. (-252-)
소설 『검은 바다』는 실종된 김대위를 찾아나서는 강중위, 그리고 파두아라는 범선과, 마리라는 신비스러운 여인이 등장하고 있었다.바다라는 속성은 파도가 잔잔한 낮에 보면, 상당히 매력적이며, 바다에 풍덩 뛰어들고 싶은 공간이다. 따듯한 햇살을 머금은 낮에 보는 바다를 보며 마음이 힐링된다.자연의 위대함과 다채로움을 느낄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이 응축된 곳이다. 육지에 머무르며, 바닷가에 들어갈 수 없는 인간이 바다에 대해서, 설레임과 공포가 공존하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았다.
바다는 생명이 태어나고 죽어가는 곳이다. 플랑크톤이 있었고, 그 플랑크톤을 먹고 사는 수많은 바다 생명체가 존재한다. 그 신성한 바다에 인간이 개입하기 시작하였다. 배 하나가 주는 그 무게감은 사소한 것에 부과하지만, 무한대에 가까운 인간의 욕망은 바다를 서서히 잠식하고 파괴하려는 속성을 유지하고 있다.이 소설에서,바다와 섬, 샤머니즘이 언급되고 있는 이유도 그렇다. 인간은 쓰나미의 공포를 직접 보지 않는 이상 그 공포를 느낄 수 없다. 썰물과 밀물의 공포를 넘어서서,바닷가에서,삶을 이어가는 수많은 생명들에게, 모든 것을 앗아갈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수십만 명이 죽어갔던 인도네시아 쓰나미에서 느꼈다. 단지 역사 속에 기록되지 않았을 뿐, 바다는 언제나 쓰나미를 일으킬 수 있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었다. 결국 나약한 인간이 , 인간 재물을 바쳐서라도, 바다의 노여움을 잠재우고,자연에 대한 순응을 필요로 하는 건 아닐런지, 돛대와 등대가 인간의 삶을 비추고,배가 검은 바다에서,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인간의 폭력은 사람 재물을 바치는 것을 생각하는데 있었다.인간의 공포는 언제나 폭력을 머금고 있다.소설 『검은 바다』는 자연에 대해 겸손하지 못한 인간에 대한 경고 메세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