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왕은 살아있다 - 마지막 르네상스맨 신해철
지승호 지음, 지승호 인터뷰어, 강헌 외 인터뷰이 / 목선재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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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뭐래도 네가 믿는 것들을 포기하려 하거나 움츠러들지 마

힘이 들 땐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마

앞만 보며 날아가야 해

너의 꿈을 비웃는자를 애써 상대하지만

<해에게서 소년에게> 중 (-17-)



'불안한 사람들은 새로운 적을 찾아 헤맨다' 고 했던 1990년대의 통찰 역시 앞서간 혜안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데올로기가 쓰레기통으로 가면서 새로운 삶의 가치를 찾아야 했는데,찾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러니 쓰레기통에 처박혔던 이데올로기를 다시 꺼내 휘두르면서 사람들을 협박하는 자들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26-)



우리한테 신해철 노래가,<그대에게> 같은 노래는 야구장이나 경기장에서 따라 부르면서 그게 신해철 노래인지 모르면서도 따라 부르는 노래인데요. 그런 곡을 가진 신해철 임에도 불구하고,추모 열기가 부족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52-)



평론가는 자신의 관점과 입장을 얘기하는 사람이지, 진리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건 학자들이 할 몫이구요.기자나 비평가는 자기 입장을 주장하는 거예요. 거기에 동의해 주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힘이 생기는 것이고, 무시하는 사람이 더 많아지면 힘이 없어지는 거죠. (-77-)



나쁘게 얘기하면 뱀의 눈 같기도 하고,굉장히 날카롭게 상대방을 예리하게 꿰뚫어 보는 눈이더라구요. 해철이 형의 눈을 가지고 형상화하겠다고 했죠. (-135-)



본인도 인세를 못 받던 시절에 음악을 비주얼화해 주는 사람이 '나의 돈' 내지는 팔릴 때마다 몇 퍼센트는 나한테 줘야 해.이런 것들이 먹히거나 이해되거나 상상되는 그런 시대가 못됐어요. 그럼에도 제가 엄청난 적극성을 가지고 온동네를 헤집고 다니면 그중 한 팀 정도는 할 수 있었겠죠. (-149-)



음악평론가 강헌은 2002년경 넥스트 공영 기획을 맡으면서 '맨날 <그대에게>를 피날레로 했으니,이번에는 아예 첫곡으로 시작해 보자'는 취지의 제안을 했다고 한다. (-221-)



신해철은 한국 사회에서 굉장히 독특한 지점을 차지하고 있는 아이콘이다.사랑 같이 개인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던 가요의 가사를 삶의 문제, 정치의 문제, 인간 내면의 문제로 승화시켯을 뿐만 아니라 음악적으로도 다양한 실험을 통해 서태지와 함께 90년대를 대표하는 뮤지션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261-)



2014년 10월 27일 위 축소수술을 받았던 가수 신해철은 강OO 의사의 의료과실로 인해 사망하게 된다.1988년 록밴드 무한궤도의 리더였던 신해철은 '그대에게'로 대학가요제 대상을 수상하였으며,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뮤지션이다.



2014년 10월까지 마왕 신해철은 독설가로 존재했다. 가수로서,정치적인 색을 숨기지 않았으며, MBC 라디오 <고스트 스테이션> 진행자이기도 했다. 그가 보여준 역할은 뮤지션으로서, 가창력과 음악을 보여주는 데서 머무르지 안았다. 뒷것 김민기가 있었다면, 음악에는 마왕 신해철이 존재했다. 그는 마왕이면서 교주로 불렸고, 서태지와 쌍벽을 이룬 뮤지션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가 세상을 떠난지 10년이 지났다. 그가 사망하였던 당시의 나이와 지금의 내 나이는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내가 그의 입장이었다면,그 때 당시 신해철이 격어야 했던 여러가지 상황들, 루머들을 견딜수 있었을까, 그는 가수였으며,시대르 앞서간 뮤지션이었으며,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음악을 놓지 않았고,때로는 정치 독설을 날리기도 했다.그의 말한 마디에 우리는 대리만족을 느꼈다.그리고 뒤로 숨으면서,마왕 신해철을 도마 위의 생선처럼 이용했다. 돌이켜 보면, 그가 보여준 괴이한 행동에 대해서,나 또한 죄책감을 느꼈으며, 그가 떠난지 10년이 지난 현 시점에도 그를 기억하고,추모하고 있는 이유 아닐까,남들보다 앞서 나간 그의 생각과 철학이 1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빛나고 있다.우리가 그를 맞이할 준비가 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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