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작별 인사 - 죽음과 상실에 관한 이야기
오수영 지음 / 고어라운드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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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버스 창밖으로 눈이 내린다. 가로수에 남겨진 건 앙상한 가지 뿐인 혹한의 겨울,눈발이 점점 거세져 버스 속도가 느려진다. 어느새 저 머리 납골당도 시야에서 멀어진다. 아빠는 내 옆에 나란히 앉아 아무런 말이 없다. 며칠 새 유난히 수척해진 모습이다. 주위에 앉은 친척들도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모두가 점은 양복의 사람들. 삼 일간 장례식장에서 매일을 마주하던 이들이다. (-17-)



무기력하고 , 공허하다. 침대와 소파가 나를 심연의 세상에 감금한 것처럼 도무지 몸을 일으킬 수 없고, 간단한 집안일조차 결심하기까지 며칠이 걸린다. 시간이 흐를수록 낯선 현상과 변화들에 무력하게 휩쓸리며 내가 알던 나와는 거리가 먼 모습이 된다. (-21-)



집.

우리의 장소였던 공간.그곳으 둘러본다.

변한 건 없지만 다르게 느껴진다. 누군가와 늘 함께였던 장소에 더는 그 사람이 없을 때, 장소는 이전의 기억을 잃은 낯선 공간이 되어 나를 맞이한다. 익숙했던 집안의 모든 사물이 이제는 생경하게 다가온다. (-60-)



우리는 누구나 '없음'의 상태로 시작해서,출생이라는 '있음'의 상태로 머물다가,언젠가 죽음이라는 '없음'의 상태로 돌아간다고.이 돌아감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고, 받아들일 수도 안 받아들일 수도 없는 것이라고. (-69-)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슬픔에 너무 오래 잠겨있지 않고, 그것으로부터 서서히 벗어나는 일. 다시 익숙한 일상으로 돌아와 조금 더 행복에 가까워지는 일. 엄마가 남긴 모든 말을 간직하면서도 그것에 얽매이지 않는 일. 선택하는 삶을 꾸준히 살아내는 일. (-124-)



어제도 살았고, 오늘 현재도 살고 있다. 내 앞에 놓여진 일들은 내 삶의 발자국이 되고, 삶이 있고,즉음이 자연스럽게 내 앞에 찾아올 것이다.사랑하는 사람, 보고 싶었던 이들,그들이 언젠가 돌아오지 못하는 인생의 강을 건너게 되면, 후회와 죄책감을 남기고, 화해할 수 없는 상황을 마주할 것 같다.



책 『긴 작별 인사』은 2022년에 쓰여진 책이다. 저자는 이 책을 애도 일기라 말한다. 나는 이 책을 통해서, 10년전 돌아가신 외할머니를 소환하고 말았다. 그때 당시 외할머니도 돌아가셨고, 큰외숙모도 돌아가셨다. 그리고 외삼촌은 아직 살아계신다. 떠난 이들과 남아 있는 이들이 교차했다. 그 당시, 외할머니 장례식에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먼 친인척을 한자리에서 보았다. 죽음 앞에서, 모두가 애도하였고, 슬퍼했다. 하지만,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슬픔이 눈앞에 찾아왔지만, 침착한 상태를 유지한 건,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다. 이 책은 바로 죽음 앞에서, 상실 앞에서,무기력해지는 한 사람을 마주한다. 말하지 않는다 해서, 슬픔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상실의 아픔도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 대신 후회와 서운함이 남을 것 같다. 사람에 대해서 서운하고, 챙겨주지 못해서, 이해하지 못해서,후회한다. 화해할 수 없었고, 회복될 시간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랫동안 유품을 정리하지 못했다.이 책을 읽으면서,느꼈던 건,유가족은 죽은 이의 유품을 정리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나는 내가 가진 것을 생전에 스스로 정리해야 한다는 것과 그것을 준비해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된다. 살아서도 가족에게 민폐가 될 수 있지만, 죽어서도 가족에게 민폐가 될 수 있다. 반드시 유언장을 남겨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내 죽음을 알려야 하는 이들의 전화번호도 정리해야 한다. 작가 오수영은 엄마의 장례식 이후,시일이 지나 엄마의 유언장을 발견했다고 말한다. 오랫동안 죽음을 예견하고,가족을 위해서 스스로 유언장을 준비한 것이었다. 즉 내 아픔을 정리하고,내가 가진 것, 내가 비워야 하는 것, 그리고 남아 있는 모든 이들에게 배려해야 하는 것, 신경써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책 『긴 작별 인사』을 통해서 얻었다.그리고 느꼈다. 마지막으로 나의 인생을 정리한 책 한권을 써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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