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헤로도토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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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 학자들에 따르면, 헬라스인과 이민족이 반목하게 된 것은 포이니케 인 탓이라고 한다. 포이니케인은 홍해라 불리는 바다에서 우리 쪽 바다로 옮겨왔는데, 지금 사는 곳에 정착하면서부터 해외무역에 종사했다고 한다. (-25-)



어쨌거나 카리아인은 눈부신 활동을 전혀 보여 주지 못한 채 하르파고스에 의해 노예가 되었다. 맥을 못 춘 것은 카리아인이 아니라 그곳에 사는 헬라스인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그중에는 라케다이몬의 이주민인 크니도스인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들은 틒리오피온이라는 해안 지대를 차지하고 있다. (-131-)



피라미드는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건조되었다. 먼저 성가퀴라 부르기도 하고, 제단 계단이라 부르기도 하는 일련의 계단실을 만든 다음, 짧은 나무로 만든 지레를 사용해 남은 돌덩이들을 들어올린다. (-234-)



다레이오스는 권력을 장악하자 오로이테스의 온갖 범죄행위,특히 미트로바테스와 그의 아들을 살해한 행위를 응징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아직은 정국이 불안하고 그가 집권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오로이테스에게 직점 군대를 파견하고 싶지는 않았다. (-343-)



코로비오스를 섬에 남겨 두고 테라로 돌아온 테라인은 라뷔에 앞바다의 섬에 거주지를 마련했다고 보고했다. 테라인은 섬의 일곱 구역 전체에서 이민단을 보내되 형제가 여럿일 경우 누가 갈지 제비를 뽑기로 결의했다. 그리고 밧토스를 그들의 지도자 겸 왕으로 삼기로 했다. 그들은 오십노선 2척을 플라테이아로 보냈다. (-441-)



테바이인은 아이아코스의 자손의 도움을 믿고 공격을 감행했지만 아테나이인에게 참패하자 다시 아이가나로 사절단을 보내 아이아코스의 자손을 돌려주고 원군을 요청하게 됐다. 당시 아이기나인은 한창 번영을 구가하고 있는데다 아테아이와의 해묵은 적대 관계를 기억하고는 테바이의 요청에 따라 선전포고도 없이 아테나이와의 전쟁을 게시했다. (-513-)



여기까지는 모든 헬라스인의 이야기가 일치한다. 그 뒷이야기는 파로스인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난처해진 밀티아네스에게 티모라는 여자 포로가 면담을 신청했는데, 그녀는 파로스 태생으로 지하 신들의 신전에서 봉사하는 하녀였다고 한다. (-613-)



헤라스인이 텟살리아로 출병했을 때 페르시아 왕은 이미아뷔도스에 머물며 아시아에서 에우로페로 건너려 하고 있었다. 동맹군에게 버림 받은 텟살리아인은 더이상 머뭇거리지 않고 기꺼이 페르시아에 부역했고,전쟁 기간 페르시아 왕에게 누구보다도 유용한 자들이 되었다. (-713-)



알렉산드로스가 돌아와 아테나이인의 회답을 전하자 마르도니오스는 군대를 이끌고 텟살리아를 출발해 산속히 아테나이로 진격했다. 그는 경유하는 모든 지역에서 군사를 징발했다. 텟살리아의 지도자들'은 지난날 자신들의 행동을 후회하기는커녕 페르시아인을 더욱더 격려했고,라리사의 토락스는 크세르크세스가 아시아로 퇴각할 때 동했했을 뿐더러 마르도니오스가 헬라스를 침공하도록 공공연히 자기 영지를 통과하게 해 주었다. (-829-)



페르시아의 제1차 그리스 침공(First Persian invasion of Greece)은 기원전 492년에 시작되었고, 기원전 490년에 마라톤 전투에서 아테네의 결정적인 승리로 끝났다. 기원전 490년에 있었던 두 번째 페르시아 원정은 다티스와 아르타페르네스의 지휘 하에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페르시아 전쟁에서, 페르시아 제국을 무너뜨리고, 아테네 도시 국가가 유럽 패권을 쥘 수 있었던 이유 를 살펴보고자 한다.페르시아-그리스 전쟁 이후,승리에 도취되어 있었던 아테네인에게,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에 대해 성찰하고 전쟁의 원인을 이해하고자 한다. 두 나라간의 전쟁은 지금까지 문화유적 의 형태로 흔적으로 남아 있다. 



보병 전략을 이용하여, 전력상 열세였던 아테네가 페르시아 를 상대로 승리했던 원인을 찾고 있다. 이 책을 통해 페르시아 제국이 무너진 이유, 아테네 안에 숨어있는 헬라인과 이민족 간의 갈등과 반목으로 확인시켜 주고 있다. 해상으로 아테네가, 육상은 아테네가 담당하였다. 추가적으로 두 나라 간에 발생한 여러가지 전쟁 양상은 크세르크세스와 헬라스로 전령들을 보내 흙과 물을 요구하였다. 아테나이와 라케다이몬을 제외한 헤라스의 다른 도시들에만 전령을 보낸 바 있다. 헬레스폰토스 해협, 아시아와 에우로스르 이어줄 다리,그리고 서양철학의 발상지 이오니아까지,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님프이면서, 인간소녀이며, 강의 신 이나코스의 딸 이오가 역사에서는 어떻게 다루는지 확인시켜 주고 있으며, 동양에 사마천의 사기가 있다면, 서양에는 역사의 아버지 헤로도토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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