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 향한 내 하나의 마음 - 35년 금융외길 최해용 시집
최해용 지음 / 바른북스 / 2024년 9월
평점 :
절판












봉숭아 꽃물


아파트 화단 옆 지날 때마다

내 눈길을 끄는 키 작은 봉숭아 하나

가냘픈 몸으로 긴긴 여름 내내

모진 비바람 맞고 따가운 뙤약볕 쬐며

이파리 겨드랑이마다 여리디 고운 꽃을 피웠구나.

장대비 쏟아져 내린 후 낙화한 네 모습이 안타까워

떨어진 꽃잎 모아 약지 손톱에 물들여 보았네

여름 끝자락 장독 뒤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봉숭아 꽃잎 콩콩 찧어 서로에게 손톱 물들여 주던 시절

자기 손톱이 가장 예쁘게 물들어져

제일 멋진 연인을 만날 거라 설렜던 얼리 적 누이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며 그때를 회상하고 있을까

이제는 아득히 흘러간 옛일이 되었건만

눈 감으면 아직도 선하게 떠오르는

누이의 예쁘디 예쁜 꽃물 손톱 (-39-)



입추를 기다리며


마침내 가을의 문턱에 들어섰다

비 오듯 땀 흐리며

숨이 턱턱 막히는 가마솥 더위도 한결 누그러졌고

염소 뿔도 녹일 만큼 뜨겁게 달구었던

대지의 열기도 한층 가라앉았네

머지 않아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햇바람 불어오면

옷깃을 여미겠지

밤과 대추는 송이송이 알알이 열매를 매어가고

감도 아기 주먹만 하게 커가며 가을을 맞이할

채비를 하고 있네. (-42-)



항문


내 밑 구리다고 떼어버릴 수 없고

네 밑 구리다고 떼어버릴 수 없다

너의 시기 질투 음해를 용서하는

나는 너의 항문이고

온갖 타살적 욕망의 배설물을

순순히 받아내는 나의 항문

온갖 위선적 공격의 배설물을

순순히 받아내는 나의 항문

온갖 위선적 공격의 배설물을

순하게 정화시키는 너의 항문

너와 내 밑 모두 구리지만

그래서 서로 떼어버릴 수 없다.

여야가 또한 그러하지 아니한가. (-94-)



뜨거운 여름이 지나고, 이제 가을이 되었다. 모기 입이 삐뚤어진다는 처서(處暑) 지났고, 추분(秋分) 이 지났건만, 여전히 여름 날씨, 여름 더위를 온몸으로 느꼈으며, 한로(寒露) 를 코앞에 두고서야, 여름 더위가 한풀 꺾였다. 2024년 여름과 겨울이 길어지고, 봄,가을이 줄어들었다는 걸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시 『입추를 기다리며』를 읽으면서, 2024년의 입추가 작년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음을 온 몸으로 느끼고 있다.



40여년간 한 곳에서, 평생 직장으로 다녔던 시인 최해용 은 『널 향한 내 하나의 마음』을 통해서,시로서,자신의 인생 철학을 담고 있었다. 신협 이사장 자리에서, 어떤 자리에 가고자 한다면, 반드시 시련을 준디 하였다,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사람이 스스로 일어설 수 있다는 말이다.시집 『널 향한 내 하나의 마음』 을 통해서 , 시가 주는 지혜와 인생 경험이 녹아 있으며, 삶이란 결굴 만남과 헤어짐을 잘하는 것에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나무 늘보, 항문, 이 두 시에서, 나를 돌아 보았으며, 성찰하게 해주었다. 인생에 정답은 없지만, 길은 보인다. 삶은 결국 혼자다.그 혼자라는 것이 나에게 어떤 이득이 되는지 손해가 되는지, 확인시켜 주고 있다. 함께 가야 한다는 진리, 서로 아껴야 한다는 삶의 원칙, 살아가되 견뎌야 하고, 살면서 귀머거리 3년, 장님 3년, 벙어리 3년의 인고의 긴 시간이 결코 헛되다고 볼 수 없다. 삶 속에 내 길이 있었고,그 길 속에서 ,사람과의 깊은 관계를 만들어 나간다. 내가 선택한 길,내가 선택한 결정이 내 인생을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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