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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로 보고 그림으로 듣는 음악인류학 - 불교와 세계종교
윤소희 지음 / 민족사 / 2024년 8월
평점 :
불교가 중국으로 들어온 초기에는 붓다의 법문 그 자체를 외는 음성 경전이었다. 이를 한역하여 기존 율조에 얹어보니 말과 율조가 서로 겉돌며 어그러졌다. 모음의 장단에 의해 율조가 형성되는 범어가 뜻글자인데다 '고저승강'의 한어 율조와 맞지 않아 겉돌고 있던 그때, 천재 시인 조식(192~232) 을 만났다. (-26-)
붓다의 법언이 중국으로 들어온 후 음에서 글자로 안착되기까지 과도기를 겪었다. 그리하여 양나라의 승려 혜교는 번역가는 많으나 소리를 전한 사람은 별로 없다"라는 아쉬움을 표하고 있다. 오나라 서역승들의 음성 율조에서 중국의 문자 경전으로 넘어가는 현상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51-)
2008년 베이징올림픽 조직위원회가 증후를 편종 타주를 시상식 배경음악으로 사용하여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1978년 우한에서 발굴된 이 편종은 전국 시기(BCE 403~221) 증 나라의 후을이라는 왕의 묘소에서 발굴되었다. (-74-)
신라가 통일하면서 고구려 영토가 당나라에 넘어갔지만, 그들 마음속 영토에는 늘 고구려가 있었고, 그 단서 주의 하나가 산동 적산원 장보고의 활약이다. 예전에는 음악이 곧 정치였으므로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우리네 마음속 영토인 고구려를 자발적으로 포기한 요인을 크게 둘로 볼 수 있다. (-79-)
고려조는 휘종으로부터 대성아악 의물을 받은 이후,왕들을 위한 제사에 사용하였고, 공맹에게 제사를 올리며 섬겼다. 고려사 악지를 보면"순미한 풍속과 민심을 교화하고자 악을 취하며, 조종의 공훈과 은덕을 형상화하기 위해 국왕이 제사할 때, 등가와 헌가를 연주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다. (-81-)
서태후는 궁궁 고연에 탄산페이를 즐겨 초청하다가 나중에는 내실 공연도 불렀다. 탄신페이가 이를 거절하자 인질로 자아가다시피하여 공연을 시킨 후 은화 200냥을 주었다. 탄신페이는 공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그 돈을 모두 길거리에 뿌렸다.(-98-)
한반도는 유교,불교, 도교가 어우러져 수천년의 역사 속에서,예(禮)와 악(樂)을 중시하였다. 여기에서 놓칠 수 없는 것 중 하나, 불교가 서역 인도에서, 중국으로, 한반도에 들어오면서,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확인하는 동시에 음악 인류학을 통해서, 음악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사회적, 정치적 힘을 확인해 볼 수 있다.
공자는 음악을 좋아했다 한다.그 말은 논어에도 기술되어 있듯이 공자를 따르는 제자들 또한 음악을 가까이 즐겨 했다는 의미다. 지금이야 교통이 편리했지만, 수천년 전, 음악을 누구나 즐길 수 없는 고위직에 있는 권력자들의 소유였으며, 음악이 정치적으로 쓰여진 그 과정에 대해서, 윤소희 동국대 교수를 통해서,들어볼 수 있다.무거운 악기를 옮기고 이송하는 그 고통스러운 여정이 음악 인류학에서 바트릴 수 없다.
책을 읽으면서, 문묘제례악이 정치적 수단으로서, 송나라 휘종(1082~1135)의 에 의해 고려로 전해졌고,우리가 추구하는 음악은 소라가 그로 전환되면서, 음악이 가지는 고유한 모습들이 새롭게 탈바꿈되었다. 조선의 응악은 억불숭유정책으로 인해, 민간에 스며들었으며,일제시대에 접어들면서,억불숭유정책이 해제되는 동시에 불교 음악도 너리 퍼질 수 있었다. 특히 악기의 생김새에 우주의 자연 이치를 수용하여, 백성을 교화하려는 목적을 추구하였다. 5음계로 이루어진 가야금의 궁상각치우에 대한 실마리는 , 악학궤범, 32묘음 천시를 발견하면서, 숨겨진 비밀을 해소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