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투퀴디데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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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쟁은 아테나인들과 펠로폰네소스인들이 에우보이아 섬을 함락하고 맺은 30년 평화조약을 파기함으로써 일어났다. 앞으로 어느 누구도 왜 헬라스인들 사이에 이런 큰 전쟁이 일어났는지 묻지 않도록 ,나는 그들이 조약을 파기하게 된 원인과 그들의 쟁점을 먼저 기술하겠다. (-46-)

"아테나이인들의 장광설을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소.그들은 자화자찬만 늘어놓을 뿐, 그들이 우리 동맹국과 펠로폰네소스인들이 권리를 침해한다는 사실은 어디에서도 반박하려 하지 않았소. 그들은 지난날 페르시아 전쟁 때는 훌륭하게 처신했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잘못 처신하고 있소. 그래서 그들은 훌륭한 사람에서 나쁜 사람으로 변했으니 두 배의 벌을 받아 마땅하오. (-91-)

펠로폰네소스인들은 자신들의 함선을 선수는 바깥쪽으로, 선미는 안쪽으로 향한 채 적선이 함선 사이로 돌파해올 틈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최대한 큰 원이 되도록 전개했다. 그러고는 원 안에다 함께 항해 중이던 가벼운 배들과, 적이 공격해오면 어느 곳이든 신속히 출동할 준비가 되어 있는 쾌속선 5척을 배치했다. (-207-)

언제나 희망과 욕구가 문제를 일으킵니다. 둘 중 한쪽은 인도하고 다른 쪽은 따라가며, 한쪽은 계획하고 다른 쪽은 그것이 성공한다고 암시하는데, 이들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눈에 보이는 위험보다 더 강력한 영향력이 있습니다. 또한 행운이 따를 것이라는 생각도 지나친 자신감을 갖게 하는 데서 그에 못지않게 한몫 거듭니다. 왜냐하면 행운은 종종 어떤 사람에게 예기치 않게 다가가, 제대로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모험을 하도록 유혹하기 때문입니다.(-260-)

그사이에 상륙한 아네나이인들은 즉시 전군을 동원하여 튀레아를 함락했다. 도시에 불을 지르고 그 안에 있는 재물을 약탈한 다음 전사하지 않은 아이기나인들을 모두 아테나이이로 데려갔다. 거기에는 부상을 당하고 포로가 된 라케다이몬인 총독 파트로클레스의 아들 탄탈로스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은 또 퀘테라에서도 안전상의 이유도 옮길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는 몇 사람을 데려가 이들을 여러 섬에 분산 안치했다. (-354-)

아르고스인들이 일단 이 제안을 받아들이자, 라케다이몬군은 테게아를 떠나 귀로에 올랐다. 그 뒤 양국 사이에 교섭이 진행되었고, 그 뒤 오래지 않아 아르고스의 앞서 말한 것과 정파가 아르고스인들이 만티네이아, 아테나이, 엘리스와 동맹를 파기하고 라케다이몬과 평화조약 및 동맹조약을 맺게 하는데 성공했다. (-476-)

그러나 우리는 국가 전체의 지도자였던 만큼, 도시가 가장 위대했고 가장 자유로웠던,선조한테서 물려받은 정부 형태를 유지하는데 모두 협력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가운데 조금이라도 지각 있는 사람은 민주주의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았고,그 점은 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나는 민주주의의 피해자였기에 누구보다도 민주주의를 비판할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불합리한 정부 형태라고 누구나 동의하는 민주주의에 관해서는 새로운 말을 할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여러분이 우리와 교전하는 동안에는 민주주의를 바꾸는 것이 안전하지 못하다고 생각했습니다. (-564-)

아테나이인들은 전 영토를 빼앗기고 ,2만 명 이상의 노예들이 탈주했는데,대부분이 숙련노동자들이었다. 양 떼와 짐 나르는 가축들도 모두 잃었다. 또 기병대가 데켈레이아를 공격하거나 지방을 순찰하느라 날마다 마를 타고 나가는 바람에 말들은 딱딱한 땅바닥과 지속적인 과로 때문에 또는 적군에게 부상당해 절름발이가 되었다. (-600-)

민회가 파한 뒤 그는 곧장 떠났는데, 자신과 팃사페르네스 사이에 완전한 협력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서였다. 그는 또 팃사페르네스에게 자신의 위신을 세우고, 이제는 자신이 장군으로 선출되었으니 그를 이롭게 할 수도 있고 해롭게 할 수도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해두고 싶었다. 사실 알키비아데스는 아테나이인들을 팃사페르네스에 대한 압력 수단으로, 팃사페르네스를 아테아이인들에 대한 압력 수단으로 이용한 것이다. (-715-)

투퀴디테스가 쓴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아테나이인은 아테네 사람, 라케다이몬인은 스파르타 사람을 뜻한다. 그리스 연합국과 페르시아 간의 전쟁 이후 ,그리스 연합국이 승리했고, 민주정 아테네와 과두정 스파르타 간에 30년간 평화 협정이 체결되었고, 그 평화 협정을 15년이 지나 스파르타가 파기함으로서, 아테네와 스파르타간의 전쟁이 시작되었다.기원전 431년부터 기원전 404년까지 이어진 전쟁을 펠로폰네소스 전쟁이라 일컫는다. 투퀴디테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는 27년간의 전쟁 중 21년간의 전쟁을 기술하고 있었기 때문에, 미완성으로 남아 있다.펠로폰네소스 전쟁은 제1차 펠로폰네소스 전쟁 (기원전 460~기원전 445) 과 제2차 펠로폰네소스 전쟁(기원전 431년~기원전 404년) 으로 구분하고 있으며, 투퀴디테스가 쓴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제2차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해당한다,

이 고전은 27년간 전쟁이 이어질 수 있었던 건, 그 당시의 전쟁의 양상이 그리스 연합군과 페르시아 전쟁 뿐이었기 때문이다. 전쟁에 대해 무지하였고, 젊은 청년들을 아테네와 스파르타 간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전쟁,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다.그리스 도시 국가 중 지배국가 스파르타를 상대로 신흥국 아테네가 전면전이 시작되면서, 페로폰네소스 전쟁이 시작되었다. 2500년전 페로폰네소스 전쟁은 지금도 교훈이 되고,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이유는 그 당신의 전쟁의 양상 또한 지금도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과 독일이 전쟁을 일으키고, 전쟁승리를 자신했던 두 나라가, 패전 국가가 되어서, 전세계를 유린했던 이유, 이 어리석은 짓을 2500년전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도 반복되었다.그리스 도시 국가 중 주도권을 쥐고 있었던 육상국가 과두정 체제를 유지하였던 스파르타와 해양국가 민주정 체제를 유지하였던 아테네는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가로질러서,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명분이 필요했다. 동맹국의 협조가 있어야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투퀴디테스의 함정'은 익히 알려져 있다. 두 나라간의 전쟁에서, 힘이 쎈 국가가 , 신흥국가가 부상하게 되면, 반드시 전쟁이 발발한다는 역설이다.최근까지 16차례 비슷한 일이 발생했고,실제로 12차례 전쟁 양상으로 표면화되었다. 미국과 소련 간의 냉전이 이어졌던 이유도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미국이 세계 패권을 쥐고 있으며, 대한민국이 70년 동안 안정적인 나라로 될 수 있었던 이유,,'투퀴디테스의 함정'를 통해 이해할 수 있다.아테나이의 힘은 군중의 힘이었고, 페리를레스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 필요했다.이 후 전쟁이 시작되고, 페리클레스가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시작되고 멀마 지나지 않아 기원전 429년에 사망하고 말았다. 인간의 본성은 어떻게 전쟁으로 이어지고,그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높은 명망과 실력을 가지고 있었던 페리클레스의 선견지명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리스 주변 나라 안에서 전쟁이 시작되고, 두 나라 국민들이 추방하는 과정에서, 전쟁의 양상이 바뀌게 된다. 전쟁 뿐만 아니라, 역병으로 인해 아테네,스파르타인이 죽어 나갔다. 위대한 지도자가 나타나고, 아테네의 민주 정치는 서서히 몰락의 길을 걸어가게 되며,, 펠로폰네소스 전쟁 이후 아테네는 서사히 구가의 힘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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