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시골살이 두런두런
신평 지음 / 새빛 / 2024년 9월
평점 :




제 인생은 그렇게 굴곡이 많고 항상 심하게 울렁거렸습니다. 무엇 하나 제대로 완성하지 못한 채 토막난 인생이었습니다. 한없이 저 밑바닥까지 추락하여 보아서는 안 될, 고 박완서 선생이 말한 '세상의 똥구멍'까지 보아버렸습니다. (-9-)
다시 일어서기
지나가는 새 지적귀는 소리
썩 마음에 들지 않아도
유달리 알이 굵었던 배
간밤에 분 세찬 바람에 떨어져도
연목의 큰 물고기
황새가 와서 날름 잡아먹어도
머리에 넣어두지 않으련다.
나의 영역 밖에서 일어나는 일
그들에게 맡겨두라.
나는 단지 나로 서 있는 것이다.
내 존재를 무너뜨리는 힘
한 번씩 움직일 때 샛노란 하늘 밑에서 비틀거리는 몸으로
오직 바싹 엎드려 귀를 세운다.
저 멀리 들리는 신의 말씀
점점 뚜렷해지고
그것에 담긴 자비와 평화
엎어진 내 몸 구석구석 스며들어
다시 나를 세우리니. (-19-)
생의 길목에서
오일장 열리는 시장바닥
왁자지껄한 소리에 말려 들어간다.
고단한 생기침들
아득히 빈 곳을 울린다.
어떤 소망도 다 비운 채
무표정으로 앞을 바라보며
오직 오늘을 받아들일 뿐
주위에 둘러선 헛헛한 나무들
나 역시 그런 나무 한 그루 되어
생의 마지막 길목
천천히 돌아간다. (-28-)
지혜의 길
연두, 완벽한 생명의 색깔
시간의 이전과 함께
칙칙한 녹색으로 바뀐다.
벌레가 갉아먹고, 벼의 흔적은
상처의 표식으로 남는다.
나이가 들어가면 누구의 얼굴에건 상처의 그늘 생기고
텅 빈 아쉬움이 들어찬다
수시로 남의 상처 가리키며
손가락질 하는 사람
자기 얼굴에 파인 공동 空洞
더 깊게 할 뿐
지혜의 길은 언제나 좁고 호젓하나
나무도, 사람도, 바람도,
함께 걷는다. (-40-)
꽃 피고 꽃지고
꽃피는 기쁨은 잠깐이고
꽃 진 후 허무의 그림자
한 해 내내 남으니
꽃이 피면 꽃지는 슬픔
차마 감당키 어려워
고개 돌리는데
꽃피고 꽃지는 새
세월은 저 혼자 흘러가니
부질없는 집착이
오히려 민망하여라. (-54-)
판사 출신 변호사 , 법학자 신평 변호사는 1956년 2018년 아내의 고향 경주로 삶을 옮겼다.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한국헌법학회장, 한국교육법학회장, 앰네스티 법률가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하였으며,현재 공익사단법인 공정세상연구소 이사장이다신평 변호사는 이재명, 조국,민주당에 대한 정치적인 비판 발언으로 자산의 존재감을 자주 드러내고 있으며,그가 경주로 옮긴지 6년이 흘러왔다.
책 『시골살이 두런두런』은 신평 변호사의 시와 산문으로 엮인 책이다.경주에서, 아내와 함께 하면서, 500평 남짓 밭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적적한 사골살이, 자연과 벗하면서, 자연을 수확하고 있었다. 감자를 캐고, 고구마를 수확하고,고추를 얻는 자급자족적인 삶 속에서,자신의 상처 입은 과거를 돌아보고 있다.
신평 변호사는 이제 일흔이 되었다. 자신의 성정과 다른 삶을 살아가면서,,아내가 원하는 모나지 않은 삶이 지혜로운 삶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자신의 의도와 무관하지 않게 세상과 갈등과 번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스스로 내면 속의 욕망, 명예욕에 대한 집착 으로 인해 발생한 것들이었다. 신평 변호사의 인생 덧없음, 허전함, 슬픔이 느껴지는 진솔한 산문집이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삶과 죽음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덩치가 크던 덩치가 작던, 힘이 세든, 힘이 세지 않던 모든 것은 생겨나고, 사라진다. 생멸을 반복하며 ,자신의 삶에서,채워야 할 것과 비워야 할 것을 선택해야 하는 시점이 찾아왔다. 일흔,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죽음을 아름답게 정리하는 방법에 대해, 지혜로운 삶의 방정식을 얻을 수 있다. 죽을 때를 기다린다는 것, 죽음을 마주하면서, 남아있는 자녀들이 당황할 수 있는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자신의 장지를 스스로 선택하였다. 헛헛함과 헛됨, 이런 요소들이 자신의 삶을 어떻게 자연의 순리에 따라서 살아야 하는지 고민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