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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누아르 ㅣ 달달북다 3
한정현 지음 / 북다 / 2024년 8월
평점 :

그 여가수가 사라진 건 대략 8,9년 전쯤의 일이었다. 선은 그 여가수를 참 좋아했다.대학가요제에서 입상은 못했지만 전국적인 인기를 끈 것부터 대단해 보였다. 그해, 그러니까 1978년 대학가요제에서 누가 상을 탔더라? 그건 다들 기억 못해도 <그때 그 사람> 은 모두 기억했다. (-9-)
선은 남영동에 다녀온 후 문래동 반지하 달방이 딱 남영동 고문실 크기라는 걸 알아차렸다. 작은 자취방은 최악의 트라우마를 가져다주었다. 선은 남영동에 다녀온 후 내내 밖을 떠돌다가 지쳐 쓰려질 때쯤 들어가 잠만 자야했다. 눈을 가리고 들어갔던 남영동 그 작은 방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17-)
선은 다시 가방에 종이를 넣으며 심드렁이 말했다. 있어.왜 없겠어? 응 ?제목이 뭔데 선?
"서울누아르." (-23-)
미쓰리
대체 언제부터 멋졌던가?
출근하면 부장과 주임, 게장과 신입 남자 직원들의 보리차부터 시원하게 챙겨두는 선과 달리 미쓰리 언니는 웃음기 없는 표정으로 자기 자리부터 박박 닦는다. 보리차도 본인부터 부장 컵으로 한컵 시원하게 넘긴다. 이게 제일 비싼 거 알죠? 선에게도 쓰라는 듯 속삭여주었다. 물론 선은 물이 코로 넘어갈 것 같아서 절대 그러지 못했다. (-37-)
작가 한정현의 짧은 중편 소설 『러브 누아르(달달북다03)』의 제목을 모면서 1980년대 아시아를 휩쓸었던 홍콩 영화를 떠올렸다. 1980년대 주윤발, 유덕화, 양조위, 장국영이 출연하였던 영화들은 전세계에 흥행 러시를 이루었으며,대한민국은 심수봉, 이미자,양희은 등등 세시봉 가수들이 두각을 이루며, 후진국에서 막 벗어나는 시절이다. 하지만 소설 『러브 누아르(달달북다03)』 은 홍콩영화와 무관한 한국판 누와르 였으며, 1987년 그 당시의 대한민국의 고통스러운 시대적인 정서를 느낄 수 있다.
소설은 독특하다.주인공 선이 나오며, 언니 미쓰리가 등장한다.지금은 잘 쓰여지지 않은 다방, 매춘이 소설속에 등장한다. 이 소설에서, 1980년대, 20대 중반이면,노처녀 소리를 들었다. 공순이 공돌이가 있었으며, 지금민주투사를 가두었던 남영동 대공분실이 존재하였다. 민주주의의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던 그 시절, 민주주의는 피를 부르는 시대적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였으며, 단 1평의 좁은 공간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이들이 1980년대를 견뎌온 사람들이었다.
선은 이상주의자였다. 현실은 고통스러웠지만, 꿈을 잃어버리지 않았다. 소설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20대 중반,다들 결혼 준비하기 바빴던 그 시절이다. 그 상황에서, 선이 스스로 자신을 구제할 수 있었던 수단은 오로지 글을 쓰는 것이었으며, 소설을 통해서,그 시대적인 오감을 그대로 투영하는 것에 불과했다.남영동 대공분실에 붙잡혔지만,이사을 버리지 않았다. 이 소설에서 놓칠 수 없는 것, 자본주의,물질만능주의에 쩔어 있는 1960년대에 태어난 이들이 1980년대 ,20대에 어떤 삶을 살아왔으며, 어떤 생각과 가치관, 인생을 체득하며 살았는가에 대한 깊은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