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이끄는 곳으로
백희성 지음 / 북로망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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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다. 건축가는 직업의 모순점이었다. 건축가는 건물을 만들지만, 완성 후에는 집주인에게 열쇠를 주고 떠난다. 요리사는 맛있는 음식을 만들지만, 정작 그는 제때 식사를 할 수 없다. 기자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사로 만들지만, 자신의 이야기는 잘 쓰지 않는다. 어쩌면 세상의 수많은 직업들이 바로 이런 바보 같은 모순 속에 놓여 있을지도 모른다. 결국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뛰어들었지만 대부분의 일들은 그저 서비스일 뿐이다. (-22-)



건물 내부 안내를 부탁하려 했었지만 내심 혼자서 조용히 돌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딘지 모르게 냉정한 그녀와 동행하는 것도 불편할 듯 하고, 혼자 이리저리 둘러봐야 금지 구역도 몰래 들어갈 수 있으니 차라리 잘 되었다 싶었다. 출입 금지 구역에 들어섰다가 들키면, 몰랐다고,미안하다고 발뺌하면 그만 아닌가. (-78-)



이 온실을 잠들어 있는 보석으로 명하니, 4월 15일 그 보석이 깨어날 것이다. 선각자는 이 깨어난 보석의 붉은 눈을 통해 비밀을 엿볼 것이다. -프랑스와 왈처- (-148-)



내가 그 사람이라면 아들이 꼭 이 집을 봐주길 바랐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되지 못했다. 혹시 자신의 의지대로 되지 않을 경우,, 아들이 집을 팔 경우 혹은 집주인이 바뀔 경우 집을 망가뜨릴 수도 있으니 그것을 막고 싶었을 것이다. (-218-)



1921년 6월 20일

그녀가 레오나르를 느꼈다. 그녀가 눈물을 흐렸지만 슬픔과는 다른 이유였다. 하루 종일 그녀는 현관에 앉아 레오나르와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였다. 무엇보다 그녀는 행복해 보였다. 열린 현관문으로 드리운 햣살이 그녀 얼굴에 나타난 미소를 밝히고 있었다. (-282-)



그랬군요. 하지만 프랑스와.나에게 한 선의의 거짓말에 대해서 죄책감을 갖지 말아요. 저는 이미 눈이 보이지 않을 때부터 모든 것을 받아들였어요. 그리고 프랑스와 덕분에 제가 잃어버린 가족의 영혼을 다시 볼 수 있었던 것도, 제 눈이 멀었기 때문이라고 믿어요. 이 집을 떠나 있는 동안, 저는 죽기로 결심하고 센강에 몸을 던지기도 했어요. (-347-)



작가 백희성은 작가이자 건축디자이너다. 유현준 작가가 유투버로 활동하면서,건축 에세이, 건축에 대한 인문학적 이해를 도와주는 건축에 관한 대중서를 주로 편찮하였다면, 작가 백희성은 소설과 에세이를 주로 쓰는 작가였다.



소설 『빛이 이끄는 곳으로』은 건축 이야기와 추리 이야기를 버무려 놓았다. 인간은 안전하게 살기 위해서, 집을 지었고, 사람마다 개인적인 취향을 반영하기 위해서, 건축가를 탄생했다. 건축가는 단순히 인간이 머무는 공간을 창의적으로 완성해 나가는 일을 주로 한다면, 위대한 건축가는 주변 환경을 이용하여, 건축에 미스터리한 요소와 수수께끼르 채워 나간다. 특히 하루 24시간, 건축은 빛과 태양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대한민구 또한 북향보다 남향을 선호하는 사회적 문화가 존재하고 있는 이유다. 건축과 집에 빛이 들어가고, 그 빛이 인간의 삶의 방식을 결정하는 것이 상식으로 굳어지고 있다.



소설 『빛이 이끄는 곳으로』에서 '4월 15일의 비밀'을 주목해 볼 수 있다. 1921년 4월 15일에 쓰여진 편지와, 1931년에 4월 15일에 쓰여진 편지,이 두 편지에 얽혀있는 미스터리한 요소가 있었으며, 1년에 단 하루, 4월 15일에만 볼 수 있는 특별함이 있었다. 오직 그 날에,그 건축이 있는 곳에서만 볼 수 있다.인간의 욕망이 건축에 반영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앞부분에 소설 『빛이 이끄는 곳으로』의 핵심이 나오고 있다. 인간은 움직이며 동적이다. 건축은 땅에 붙어 있으며,건축가가 집을 짓고 난뒤 그 집의 열쇠와 소유는 집주인에게 돌아간다. 결국 건축은 소유가 바뀔 수 있고,그곳에 머물러 있었던 사람들의 추억과 사랑의 흔적이 사라질 수 있다.때때로 집이 허물어질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원치 않았던 사람은 집에 어떤 독특한 장치, 빛의 환희를 느낄 수 있는 비밀의 문을 완성하였으며,그 비밀의 문을 볼 수 있는 날은 일년에 딱 하루 뿐이다. 소설 『빛이 이끄는 곳으로』은 건축 디자이너가 쓴 소설 답게, 건축을 아는 이들이라면, 이해가 되고, 스토리텔링이 가능한 독특한 소설과 장치들로 채워져 있으며,그것이 인간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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