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운 생에서 웃음만 골라먹었다 - 대부분 힘들고 가끔 좋았던 내 인생
김양미 지음 / 헤르츠나인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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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가 음식점 앞까지 데려다준 '왱이콩나물국밥집'엔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로 가득했다.핸드폰으로 '왱' 뜻을 찾아봤다.'왕'이라는 뜻이었다.'왕콩나물국밥'을 대가리 하나 남기지 않고 다 긁어먹었다.아줌마가 시킨 대로 민박집 이름을 슬쩍 대자 고개를 끄덕이며 2천원을 빼줬다. 그 돈으로 커피 한 잔을 마시기로 했다. (-16-)



그랬다. 아이들은 둘만 남겨진 집에 엄마 옷을 입은 호랑이가 들어올까 봐 잠금장치를 눌러놓앗다. 이 말은 아이들이 잠에서 깨어 스스로 열어주기 전까지는 하늘이 두 쪽 나도 우리는 집으로 들어갈 수가 없다는 말이 된다. (-41-)



그날 따라 제일 먼저 출근한 A 선생님은 방석을 덕지덕지 덮어쓴 우리 모습에 너무 놀란 단발마의 비명을 질렀고, 잠결에 뭔 소리를 들은 남편은 실눈을 떴다가 교사실 앞에서 턱이 바질 모양으로 서 있는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다. 남의 집 안방에 들어와 도둑잠을 잔 노숙자 부부는 그곳을 정신없이 도망쳐 나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집으로 돌아왔다. (-42-)



나는 겁 없는 철부지였고, 운좋은 젊은 여자였다. 사무장 아저씨, 스님 세분, 불목하니 아저씨까지 모두 남자였다. (-72-)



집에서 반대하는 결혼을 했고, 세상 물정 모르는 막내였다. 배꼽 인사 잘한다고 동네 슈퍼 아줌마가 콩나물 한 움큼 공짜로 주는 것도 아니었다.애 낳고 살아보니 하나에서 열까지 돈으로 시작해 돈으로 끝나는 세상이었다.그래서 늘 돈이 모자랐다. (-90-)



아빠가 돌아가시고 얼마 안 있어,엄마는 갑자기 눈앞이 뿌옇게 보이는 증상 때문에 안과에 갔다가 '급성 백내장'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당장 수술을 해야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몇 가지 주의를 들었고 그중의 하나가 바로 '머리염색'이엇다. (-99-)



얼마나 지났을까, 정신을 차려보니 회복실에 누워 있었다. 내가 마취에서 깨어난 절 확인한 간호사가 내 배를 꾹꾹 눌러 오로(출산 후 자궁에서 배출되는 분비물)를 빼냈다. (-121-)



낯선 사람들도 만나고 개도 만나고 고양이와 허수아비도 만났다. 나 혼자 불쑥 떠나온 여행길이지만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이렇게 좋을 줄 알았으면 진작 떠나올 걸 그랬다. (-142-)



"인생 별거 없다. 너무 용쓰지 말고 대충 살아."

돈이라면 벌벌 떨며 아끼고 지리던 정숙씨가 비싼 커피까지 사주며 하는 말이라 열심히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살아보면 별거 아닌 게 인생이지만 살아보지 않고서야 도저히 알수 없는 것 또한 인생이니까. (-192-)



김양미 작가의 『매운 생에서 웃음만 골라먹었다』은 명랑 에세이다. 첫번째 출간된 소설집 『죽은 고양이를 태우다』 는 경인일보 신춘문예 수상작이다. 에세이집은 두번째로 나온 , 소소한 일상을 느낄 수 있는 따스한 에세이다.



나는 『매운 생에서 웃음만 골라먹었다』을 김양미 판 한지붕 세가족이라 부르고 싶었다. 아날로그적인 느낌이 물씬 느껴졌으며, 자신의 가난한 과거를 숨기지 않았다. 두 언니와 오빠 , 그리고 막내로 태어난 김양미는 첫째 언니 정숙씨와 12살 차이가 난다는 것은 21세기 정서로 보건데, 매우 독특하다.



허당 이미지, 철부지 ,세상 ㅁ불정 모르며 살아오면서, 마주하는 부끄러움을 여과없이 책 한권에 담아놓고 있었다. 문을 잠근 아이들 때문에,학교에서 신랑과 함께 밤을 세우며 자야 했던 에피소드, 가족이나 다름없는 반려 동물이 세상을 떠났을 때 느꼈던 상실감,신용카드르 생각없이 써서 난처했던 기억, 곱창집, 편의점 알바로, 돈도 얻고 , 작가로서의 문학적 염감도 얻었다. 편의점 알바에서 가장 난감한 적은 손님 앞에서, 방광이 터질 것 같은 순간이다.



부모에 대한 이야기는 매우 애틋하다. 아버지께서 일찍 돌아가시고, 혼자가 된 엄마는 이제 ,하얀 백발이 되었다. 그 엄마가 부끄러웠던 막내 딸 양미씨, 엄마의 나이가 되고 보니, 철부지 양미씨는 스스로 부끄러움을 마주하게 되고,미안함을 느끼게 된다.



엄마 마음은 부모가 되어봐야 안다고 하였던가, 양미씨는 생계형 작가이면서, 매운 인생 이야기를 책 한 권에 담고 있었다.마취 없이 생살을 찢어야 햇던 고통스러운 순간을 견디고 세상에 나온 아이는 매우 소중한 아들이었다.명백한 의료과실이었고, 의사는 자신의 의료 실수를 비싼 술로 퉁쳤다.지금같았다면, 뉴스,언론, 유투브에 떴을 상황이었건만,그댄 그렇게 살았고, 마치 아무렇지 않은 듯 인생을 견뎌왔다.



에세이는 담백하고 솔직하다. 우리 일상 속에 양미씨 인생 비슷한 일상 하나는 있을 것이다.나의 부끄러움,나의 실수, 그리움, 미안함, 나의 바보스러움, 나의 멍청한 순간,그 순간에는 매우 난처했고,, 화가 나고, 고통스러운 순간이었건만,지나고 보면, 다 애틋하고, 소중하고, 무모하고, 용기가 필요했던, 행복했던 추억이다. 대충대충 살아야 한다는 정숙씨의 말이 와닿는 명랑발랄 에세이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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