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광시곡
조성기 지음 / 한길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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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법대에 들어와 고등고시냐 문학이냐 고민을 하다가 몸과 마음이 극도로 쇠약해진 가운데 고시도 포기하고 문학도 포기하는 제삼의 길, 즉 종교에 몰입하게 되었다.내가 고시를 포기하고 무학의  길로 들어서면 어쩌나 걱정을 하고 있던 아버지는 내가 문학마저 포기하고 예수쟁이로 변해가자 무척이나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9-)



어머니는 옷과 몸에 똥이 묻는 것도 개의치 않고 황급히 아버지를 부축하여 부엌으로 데려가 옷을 벗기고 전신을 씻어주었다. 아버지는 여전히 술기운에 젖어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했다.

그때 국민학교 2학년이던 나는 아버지가 몸을 씻었는데도 여전히 풍겨나오는 똥 냄새를 머리가 어질어질할 정도로 맡고 또 맡았다. 그 냄새는 사흘이 지나고 열흘이 지나도 집 안을 떠나지 않고 무겁게 맴돌았다. (-46-)



"합격했다구? 그래 수석으로 합격했나?"

"수석은 아닙니더."

"이노무 새끼. 수석도 못 하고 전화 끊으라 마!"

아버지가 진짜 전화를 확 끊고 말았다.

그 어려운 법대에 합격했는데도 축하 한마디 듣지 못했다.그날 밤 울분을 삼키며 밤거리를 헤매고 다녔다.(-98-)



또 밤늦어 아버지 고함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내가 달려나가보니 이번에는 누가 아버지를 업다시피 부축하고 있었다. 어두운 골목이라 그의 용모는 잘 보이지 않았다. 그 사람이 부축해주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아버지 몸이 무너져 내릴 게 뻔했다.

아버지는 늘 그러듯이 동네 한 집 한 집을 향해 잔소리를 늘어놓다가 자기를 부축하고 있는 사람에게도 말을 걸었다.

"너, 누구야?나를 늘 따라오는 놈이야?니가 왜 나를." (-143-)



"현재 귀하께서 제3공화국이 수립된 후 국가시책에 적극참여하여 주셔서 정부는 경제개발 1차 5개년계횏을 완수하고 제2차 5개년계획에 접어들었으며 바야흐로 국민경제향상과 조국근대화에 일을 매진하고 잇는데 대하여 심심한 사의를 표합니다." (-206-)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고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듯'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의 영광이 말라버리고 말았다.

11월 3일 박정희 대통령의 국장이 엄수되었다.

국장이 있던 날,아내와 나는 아침부터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가 아예 집을 나서 버스를 타고 노량진 쪽으로 나가보았다. 노량진에서 동작동 국립묘지로 꺾이는 지점에 얕은 동산이 하나 있었다. 아내와 나는 어느 집 울타리를 끼고 돌아 동산 위로 올라가 있었다. 한강 줄기와 제 1한강교, 연도를 가득 매운 인파가 훤하게 내려다보였다. (-247-)



한길사에서 출간된 『아버지의 광시곡』은 조성기(조누가)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다. 작가의 삶에서, 태어나자마자 유복자가 된 나의 사촌 큰형(1951년생) 의 어린 시절의 삶이 자꾸만 떠오르고 말았다. 물론 사촌 큰 형의 아들의 나이와 나이가 같았다는 건, 그 시절 베이비붐세대, 한해에 100만명이 태어나던 시절의 우리의 자화상이다.사촌 큰 형의 아버지는 6.25 전쟁 통에 사망하였기에,작가의 삶과 동일하지는 아니었으나, 하루 세끼 겨우 챙겨 먹었던 1960년대의 삶의 차이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소설 『아버지의 광시곡』은 1992년에 종영된 드라마 '아들과 딸'을 기억 하게 된다. 술에 대해 관대하였던 그때의 삶, 양은주전자에 막걸리 한가득 따라서, 비틀거리도록 마셨던 그 들의 서글픔, 미군정 때의 우리의 수많은 아버지들의 의 광시곡이다. 나의 외삼촌은 왜 술이 떡이 되면, 시골을 돌아다니면서, 낫을 들고, 동네 사람들을 대사으로 죽이겠다고,  설쳤던가.아버지의 광시곡은 작가의 아버지의 특별한 삶이 아닌, 수많은 아버지는 시대적 아픔이며,우리가 할 일은 이해가 되지 않은 상황을 이해하고, 그 시대의 과오를 용서하는 것 뿐이었다.



이 소설을 읽으면, 실력도 중요하지만, 가정 환경도 중요하다는 걸 다시금 느낄 수 있다. 작가는 공부를 잘하였기에 서울대 법대에 들어갔건만 아버지는 아들의 공부 실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전화 통화로,수고했다는 그 말이 목구멍에서, 나오지 않았다.그시절의 아버지는 자식 자랑을 한다는 것은 남자구실을 못하는 것과 진배 없었다. 작가의 아버지는 용공분자로서,남자 구실(?)은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는 것이었다. 오직 최고가 되어야 하며, 완벽에 가까운 집착만 존재했다. 부산에서 상경하여, 경기고등학교-서울대 법대, 1960년대 ~1970년대 최고의 고등학교와 최고의 대학과 최고의 전공까지, 엘리트 코스(?)를 걸어왔지만, 용공분자로 몰린 아버지의 내면 속 열등감에서, 벗어나지 못한 삶은 스스로 폐인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사회적 분위기가 존재하고 있었다. 아들은 그런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고집대로 살아가는 촌극을 맞이하고 있었다.


판사, 변호사, 검사가 아닌, 문학인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었던 그 때의 삶, 왜 아버지는 아들에게 유난히 자식에게 엄격하였고, 닥달하였던가, 과거와 화해하고, 아버지를 용서한다는 것이 쉬운 일인지,영원히 불가능한 일인지 꼽 씹어 보았다. 예수쟁이로 살 운명, 학교에서 명예퇴직후, 조누가로서, 목회자로 살아간다는 것, 아버지의 광시곡 속에 또다른 어린 소년의 깊은 상처와 고통이 숨어 있었다. 아버지가 겪었어야 하는 고문이 연좌제가 되어서, 아들에게 또다른 삶의 고통이 되어, 똥통에 처박히는 것 같은 서글픔의 흔적으로 남아 있었다.

ㅔ이비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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