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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에게
안준원 지음 / 현대문학 / 2024년 7월
평점 :

"여기 걸어두고 말리면 꽤 쓸 만한 가죽이 돼."
창은 창고 앞에 서서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가죽을 공중에 털어냈다. 피를 닦아낸 창이 우리 쪽을 쳐다보기에 놀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창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 웃어 보이더니 창고로 들어갔다. (-9-)
제인, 너는 지금 전체를 품은 하나의 공간이니? 아니면 전체에 네가 균일하게 녹아 있는 거니? 내가 네 세계로 들어간다면 모든 곳에서 너를 느낄 수 있을까? 아니면 조금 더 너에 가까운, 선명한 너를 찾을 수 있는 특별한 코드 같은 게 있을까?
나는 반으로 쪼개진 너를 원하는 게 아니야. 온전한 너를 원해. (-90-)
조명이 너무 환해 . 도망치고 싶어.
연극을 시작한 지 2년 쯤 지났을 무렵이었다. 갑자기 무대에 서기가 두려워졌다. 그때 대학 시절 철학과 교수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삶을 무대에 비유하길 좋아하던 교수였다.
"일단 무대에 오르면 잘하든 못하든 우리는 모두 햄릿입니다. 당위입니다. 어차피 햄릿일 건데 햄릿 역할을 잘 못할까봐 두려워하는 건 너무 소모적인 일 아닐까요.(-184-)
"옥장파 가져왔다가 갖다 버린 거 기억 안나?"
일주일 전,민수가 무료 나눔 게시판을 통해 옥장판을 얻어왔다. 민수는 그것만 있으면 보일러를 틀지 않고도 따뜻한 겨울을 날 수 있다며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옥장판의 전원을 켠 순간 '퍽' 소리가 나면서 두꺼비집 전열이 나가버렸다. 원상 복구한 후 다시 켜봐도 마찬가지였다. 민수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다시 한번 시도하려 할 때 주희가 버럭 신경질을 내며 외쳤다. (-227-)
등단 6년만에 나온, 안준원 작가의 『제인에게』는 8편의 단편 소설로 채워지고 있었다. 이 여덟 편의 단편 소설은 우리의 일상 속의 소소한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었으며, 미발표작 『반딧불이 사라지면』 을 제외하고, 2017년부터 2023년까지 어딘가에 쓰여진 단편 소설들을 한 권의 책으로 묶어서 정리하고 있다.
쓰고 싶은 이들은 자신의 일상 속 작은 것 하나, 특별한 시간과 공간의 여백을 채우려고 한다. 이 소설 속에서, 놓칠 수 없는 것들이 있었다. 우리는 그것들 하나 하나가 공간과 시간 속에 있었으며, 존재와 자치를 녹여내기 위한 시간을 쓰는데 올인하고 있다. 애 인생의 기념할 만한 순간마다, 그것을 기록하고,해석하며, 느낌과 감정을 살려서 한 권의 책이 탄생될 수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의미있는지 알려주고 있었다, 작가는 자신의 삶을, 시간과 공간를 객관화하였으며,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을 기억하도록 돕고 있다.
소설을 읽으면서, 내안의 선입견, 편견을 꺼낼 수 있었다. 민수가 산 중고 포 터 하나, 25만 3천 키로미터를 달린 폐차 직전의 낡은 포터 하나에서, 민수가 보는 시선과 주희가 보는 시선으로 구분하고 있었다. 이 단편 소설에서,가난과 부자, 빈자가 추구하는 삶의 방식이 다를 수 있으며,그것이 우리내면속 차별과 불평등의 근원이 되고 있었다. 남이 으스대는 것을 불편해 하면서도 내가 으스대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 그것이 우리 스스로 힘든 존재로 남아 있는 이유 중 하나다.
작가는 소설을 통해서, 이 세상의 규칙을 드러내고 싶어했다. 랜덤, 무질서한 듯 보여지는 세상이지만, 그 안에는 무언가 규칙이 있고,원칙이 존재한다. 예컨데,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들 조차도 때때로 위험하고, 생명을 앗아갈 때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그 자동차 또한 질서 속에서,운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양자역학을 문학적으로 표출하려 하였던 작가의 의도가 그대로 나타나고 있었으며, 시간과 사람,존재, 그리고 사람과 삶에 대한 결론 하나 하나에 내가 추구하는 살에 대해서,상징과 은유로 채워지고 있어서 눈길을 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