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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사부다 - 고대, 신라의 중흥을 이룬 대장군 ㅣ 나는 누구다
김문주 지음 / 일송북 / 2024년 5월
평점 :




모산성에서 승전보가 왔습니다. 신라와 백제의 연합군이 고구려를 격퇴하였답니다. 이찬 어르신이 오고 계십니다!"
보옥은 기쁜 마음으로 온 힘을 다하였다. 아이의 울음 소리가 우렁차게 울렸다. 땅을 딛고 바다 위로 말을 달리던 사내아이가 보옥의 품속에 와 안겼다.
484년, 신라 습보갈문왕의 아들은 아진종과 백제 개로왕의 딸인 보옥 사이에서 이사부가 태어났다. (-31-)
『화랑세기』에서는 484년, 이사부가 아진종과 백제의 보옥공주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사부가 505년 20대 초반에 실직의 군주가 되고 512년 20대 후반에 우산국을 정벌한 것으로 보면, 480년대 중반에 태어난 것이 분명하다. (-37-)
이사부의 우산국 정벌은 오늘날에도 큰 의의가 있다. 우산국에는 독섬(독도) 도 포함되어 있다. 512년 우산국을 복속시킴으로써 신라시대부터 독도가 우리나라 땅이었다는 명백한 근거를 확보하였다. 그러므로 이사부가 천오백년 전에 동해를 장악한 것은 현재까지도 동북아의 역사에서 주요한 의의가 있다. (-79-)
신라가 먼저 고구려를 대대적으로 쳐들어가는 전쟁은 신라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사부는 고구려에 다녀와 고구려를 잘 알고 있는 거칠부 장군을 출정시킨다. 당시에 거칠뷰를 비롯한 여덟 명의 장수가 대군을 이끌고 한강 상류 지역을 차지하려는 전쟁에 출전하였다. 거칠부는 죽령 이북 고현 이냐의 10개의 군을 점령하였다. 이때 거칠부는 예전에 자신을 도와준 고구려의 혜량 스님을 다시 만나 신라로 모셔왔다. (-130-)
왕은 백전노장인 이사부를 바라보았다.
"반란군이 힘을 키워 다른 성들을 장악하려고 대가야 내에서 전쟁을 벌일 것입니다. 또한 이런 혼란을 틈타 주변 소국들이 반란세력에 동참할 수 있으므로, 반란을 속히 진압해서 소란의 뿌리를 뽑아야 합니다."
이사부의 나이는 이미 70을 지나 있었다. (-183-)
일찍이 나의 모친은 백제의 공주였다. 내 외조부는 백제의 개로와이었는데 그는 권력을 내세우기 위한 공사를 벌여 백성을 도탄에 빠뜨렸다. 그때 그는 고구려 첩자의 말에 속아 백성을 돌보지 않았으니, 이는 신의를 저버린 행위다.개로왕은 결국 고구려군의 손에 죽었는데, 이 때 잃어버린 민심을 회복하지 못하여,뒤를 이른 문주왕과 그 아들도 반역자의 칼에 주고 말았다. 그 뒤의 동성왕도 사치와 대규모 토목공사 때문에 민심을 잃더니 죽임을 당했다. (-222-)
노래 「한국을 빛낸 백명의 위인들」 에 나오는 '고구려세운동명왕 백제온조왕 알에서나온 혁거세,만주벌판달려라 광개토대왕 신라장군이사부,백결선생떡방아 삼천궁녀의자왕' 의 신라의 장군 이사부다.5세기 경 신라의 중흥기를 이끌었던 위대한 대장군 , 이사부는 신라지증왕부터, 진흥왕때 생존하였으며, 내물 마립간의 4세손이기도 하다. 소설가이면서, 동화작가이기도 한 김은주 작가는 고대사에 대해서, 『부여의자』, 『랑』, 『백제신검』, 독섬해전』 쓴 경험을 살려서, 이사의 역사적 자료가 다른 위인에 비해 태부족인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 등 천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신라-통일신라시대로 이어지는 그 때의 사회적 분위기, 국제 관계까지 훑고 있으며,그것이 어떤 의미를 완성하는지 역사적인 흐름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이 책에서, 신라가, 현존했던 그 당시 가야는 부족국가의 형태였으며, 신라가 나당 연합국으로, 백제, 고구려를 하나 하나 편입함으로서,가야사까지 신라의 역사에 서 다루고 있으며, 우산국을 편입함으로서, 왜구가 지금의 울릉군 일대에 출몰하여, 어부들의 삶을 위태롭게 하는 일을 불가능하게 했으며, 삼국유사, 신라본기에 512년(지증 마립간 13) 당시 우산국을 편입하였다는 기록이 현존하고 있으며, 즉 지증왕 이후, 신라 신라의 제33대 성덕왕(聖德王, 재위 702~737) 때까지 신라는 경제적으로 윤택하였으며,나라가 평온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즉 이사부 대장군은 울릉도-독도의 역사를 언급할 때 빠지지 않은 중요한 사람이다. 그러나 고대사의 역사에 편입되어 잇기 때문에, 역사적 자료를 구하기 힘든 상황이며, 위인전에 이사부 장군의 업적에 비해 매번 빠져 잇을 때가 많았다. 그 당시 전략적 요충지였던 독섬과 우산국을 신라에 복속하지 않았다면, 여전히 독도는 우리의 영토가 아닌 일본의 영토로 인식하였을 것이며, 동해 또한, 일본해가 되었을 것이다. 강원도 삼척에는 여전히 이사부 대장군을 기리는 추모제와 함께 축제가 해마다 열리고 있다."신라 이사부 장군 대서사시" 삼척 이사부독도기념관이 최근 개관하였으며,이사부장군엗관한 역살적 자료를 얻을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