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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낭콩
채도운 지음 / 삶의직조 / 2024년 7월
평점 :




'솔아 씨는 미혼이잖아? 사고 쳤네.'
'스불 다섯이라며. 세상에 애가 애를 낳네.'
'순해 보이는 인상인데, 쟤도 육체적인 욕망은 있었나 봐.'
아니, 어쩌면 지연이 솔아에게 품은 생각일지도 모른다. 생각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은 본인도 그 생각을 하고 있다는 의미가 아니던가. (-25-) 「강남콩」
어른이라는 게 뭘까요.회사를 다니고, 월급을 받으면 그 돈으로 사고 싶은 것을 부모님의 눈치를 보지 않고 살 수 있는 게 어른인 줄로만 알았어요.하지만 내 배 속에서 벌어지는 일 하나를 어떻게 책임져야 할지도 모르는 나는 그냥 어린아이였어요, 그러다 문득 모든 게 웃기게 다가왔어요. 아이의 생명은 소중하니 함부로 지우면 안 된다느니,임신과 출산은 축하 받아야 마땅하다느니, 여자는 태어나서 꼭 이 과정을 겪어야 한다느니 뭐 그런 말 있잖아요. (-39-) 「강남콩」
지석은 식물인간이다. 이 말은 서고다. 당신은 이제 사람이 아니라는 선고 말이다. 사회적 쓸모를 증명할 수 없으며, 인간으로서의 사고도 할 수 없는 지석을 분명하게도 사회에서는 식물이라고 분류했다. 따라서 식사하는 것은 먹는 행위가 아니라 피딩(feeding) 이라고 명명하며, 눈을 깜빡이거나 손을 움직이는 것은 행동이 아니라 뇌간의 움직임에 따른 증상이라고 해석된다. 그렇다면 진석은 어떤 식물군에 속할까. 4억 7천만 년 전, 그러니까 오르도비스기에 처음으로 식물이란 것이 등장했는데 그것이 바로 선태식물이라 불리는 고대의 이끼류다. (-62-) 「식물뿌리」
소설 『강낭콩』은 짧은 단편 두 편 『강낭콩』, 『식물뿌리』가 수록되어 있으며, 추천의 글 4편(박주영 작가, 고명재 작가, 조해진 작가, 김혼비 작가) 이 함께 수록되어 있었다. 이 소설의 주제는 '생명''존중' 이다. 재한민국 사회는 인간에게 생명은 매우 소중히 다루어야 한다고 강조한다.그러나 현실 속에서 생명은 언제든지 버려질 수 있고,일회용품으로 전락할 때가 있다. 생명을 만드는 여성에 대해 함부러 평가하고, 낙인찍거나,증오를 표출하는 한국 사회의 모순과 윤리적인 문제가 항상 존재하고 있었다. 첫 번째 단편 「강낭콩」 은 '나는 강낭콩을 낳은 적이 있다' 로 시작되고 있으며,그 강낭콩은 미혼 여성의 아기 출산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우리 사회가 결혼을 장려하고, 저출산 문제가 심각함에도 불구하고,사회적인 문제는 아직 생명 존중을 놓치고 있다. 먹고 사는 것이 급급하였던 1950년대에 , 20대 초반 여성이 임신하는 것이 다반사였다. 미혼 여성이 임신을 하면, 그 문제에 대해 남성에게 책임을 묻기 전에, 자신의 몸응 간수하지 못한 여성에게 책임,윤리적인 문제가 우선 돌아갔었다. 어떤 경우에는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할 때도 있다. 21세기 들어서서, 여전히 사회는 바뀌지 않고 있으며.미혼 여성이 출산하게 되면, 그 출산에 대해, 남자는 누구냐고,물어보는 게 일반적이다.낙태르 허용하지 않으면서,미취학 아동 신고기간에 아이를 신고하지 않고,유기되는 상황이 나타난다. 다군다나 , 아이가 태어난 것에 대해 축하하기 전,비난을 먼저 시작하는 정서가 만연하고 있다. 생명을 존중하고 싶어도,우리 사회가 생명을 존중하지 않는다,.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는 속담이 바로 그런 케이스이며, 조용하고 평범한 학생이 임신,출산을 하게 되면, 모든 것을 중단하고, 오직 아이를 키우는데 올인하게 된다. 낙태가 불법적으로 이루어졌던 우리의 부끄러운 자화상이 숨어 있다.
두번 째 단편 「식물뿌리」은 연명 치료에 대해 소개하고 있었다. 식물인간이 된 지석은 재활도 불가능하고, 스스로 일어나는 것도 블가능 하다. 오직 딸의 손에 이끌려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다.이 와중에 우리는 이 소설이 연명치료와 깊은 연관관계를 노출시키고 있었다 . 소설은 식물인간을 말하고 있지만, 살기 힘든 4기 이상의 말기 암환자, 희귀병 치료 환자에 대해서, 연명치료를 할 것인가에 대해서,분분한 상태다. 특히 가족의 동의 하에 안락사를 시행하자는 여론이 뜨고 있지만,법으로 안락사 허용 문제가 통과가 되지 않고 있으며, 그 원인으로 우리의 정서가 안락사에 대해 불편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법으로 안락사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병든 환자와 함께 목숨을 끊어버리는 상황이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다.이런 모순에 대해서, 생명에 대한 경각심과 생명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해야 하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