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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나 리브레
정민 지음 / 리브레 / 2024년 6월
평점 :
쿠바 아바나의 대표 주정뱅이로 꼽혀도 손색이 없어 보이는 늙은 사내 하나와 젊은 사내 하나가 입을 반쯤 벌리고 서준을 쳐다 보았다. 서준은 축축한 혀를 내밀어 마른 입술을 닦았다. 그의 입술이 침과 술기운으로 번들거렸다. 번들거리는 서준의 입술 사이로 푸석푸석한 말들이 튀어나왔다. (-13-)
"누구를 죽였냐고? 내가 가장 사랑했던 여자를 죽이고 말았어. 그게 다가 아냐.내 평생 본 중 가장 아름다운 여자도 죽였어.내 삶의 사랑과 아름다움을 스스로 절멸시킨 거야. 내 인생의 첫 살인 대상이 내가 가장 사랑했던 여자. 그리고 가장 아름다운 여자라니. 친구들 생각은 어때?이게 말이 되는가?" (-17-)
서울 연희동의 허름한 중국 식당에서,내동댕이치듯 툭 던져진 공작의 시작이었다.
작전의 명칭도 설계자도 , 집행자도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다. 모든 것이 희뿌연 안개 속에 존재하고 있었다. (-96-)
양선생이 심 선생의 꿀밤을 먹였다. 기술적으로 힘을 쏙 뺀, 우정 넘치는 노인네의 꿀밤. 심 선생이 아야 소리를 내며 양 선생을 째려봤다. 양 선생이 심 선생의 정수리를 향해 주먹을 쥐었다.은퇴한 권투 선수의 주먹이었다. 산전수전 공중전을 다 겪은 , 닳고 닳아 단련된 그런 주먹.머리 위의 커다란 주먹을 본 심선생은 가소로운 미소를 지었다. (-157-)
서준이 이번 교육에서 배운 것은 선생들의 자세와 태도였다.서준은 선생들을 통해 지구력과 인내력과 신뢰성과 결단력을 구체적으로 목격했다. 타자에게 의지하지 않는 결연한 삶이 어떤 것인지 새록새록 느꼈다. 엄숙하고 품위 있는 말투와 어떤 상황에서도 자연스럽게 튀어 나오는 농담의 기술을 새롭게 감지할 수 있었다. (-219-)
"메트로폴리탄 은행 삼층에 계시죠?저도 거기에 잠깐 있었어요. 숙소 앞에서 택시로 십분도 걸리지 않아요.까삐똘리오 가자고 하면 됩니다. 저희 내일 오전 열시에 까삐똘리오 앞 광장에서 보기로 했어요. 그런데 쿠바 택시 타보셨어요?" (-271-)
한국학교실의 학생등 중 정보원을 활용가능한 일은 찾아볼 수 없었다.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순진무구한 ,자본주의적 욕망은 일절 없는 학생들,그들은 그저 한국 대중문화를 동경하고 꿈꾸는 철부지 소녀즐이었다. 그나마 싹수가 있어 보이는 캔디, 서준은 캔디를 한국에 보내주기로 마음먹었다., 중남미 문화교류 차원에서 진행되는 초청 행사에 그녀를 유력한 후보로 점찍어뒀다. (-327-)
영화나 첩보, 국정원 관련 자료를 보면, 흥미롭다. 역사 속 어떤 장면이 어떤 사건들과 엮여 있는 경우가 흔하게 있으며, 그 역사가 시작되었던 당시의 정황을 읽어 본다는 것이 흥미롭기도 하지만, 그 안에 사람이 있었고,사건이 존재하고, 현실적인 부분과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그들이 자행하는 여러가지 요소들을 놓칠 수는 없었다.
소설 『아바나 리브레 HABANA LIBRE』의 주인공은 호세마르띠 문화원 한국학교실 신임 교수 이서준이다.이 소설에는 이서준 이외에 초청작가 이진경, 협력팀장 심윤미, 그리고 이서준 주변에 맴돌고 있는 다수의 주변인물들이다.특히 이 소설은 체게바라, 노인과 바다의 주무대이자, 제3차 세계대전을 발생할 뻔 했던 그곳, 쿠바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공작, 첩보 활동,비밀임무 수행, 암살에 대해서, 작가의 상상력과 자료를 통해서,이해를 돕고 있다.
쿠바는 미국 코앞에 적을 가까지 두고 있는 여전히 사회주의 국가였다. 그들이 추구하는 삶을 보면,우리의 정서와 맞지 않을 때가 있다. 소설 속 주인공 서진이 국정원 임무를 수행하면서,CIA(미국 중앙정보국),SVR(러시아의 해외 첩보 정보기관),MSS(중화인민공화국 국가안전부) ,MI6(영국 비밀정보국) 에 대해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여기서 이서준은 한국학 교수를 가장하여, 첩보활동을수행하고 있었다. 쿠바 현지에서,한국어를 가르치고,. 그들에게 한국에 대해 이해를 돕고 있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하지만, 사람으로서, 이서준의 점점 더 심리적으로 무너지는 순간이 이 소설에 잘 드러나고 있었다. 자신의 역할과 내면 속 이성과의 갈등,이 두가지가 한사람을 파괴시킬 수 있고, 비밀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누구도 알수 없는 나만의 살상무기를 가지고 있어야 자신을 지킬수 있다는 걸 알수 있다. 퇴물이나 다름 없는 심선생을 직접 찾아가서, 노쇠하여서, 이제 쓸수 없지만, 동전을 이용한 그 살상무기를 배우기 위해 직접 찾아가는 그의 모습은 그가 앞으로 펼쳐질 비극을 연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