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에겐 12척의 배가 있나이다 - 상
최인 지음 / 글여울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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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산보만호 시절에 구해 준 아이입니다."

예화의 부모는 녹둔도 양민이었는데 여진족에게 끌려가 죽었다. 나는 혼자 울고 있는 어린아이를 데려다가 키웠다. 예화는 부모를 잃은 아이 답지 않게 밝고 총명했다. 나는 아이에게 예화(禮花) 라는 이름을 지어 주고 글을 가르쳤다.몇 년전부터는 의술과 침술도 겨해서 익히게 했다. 이제 예화의 나이도 어느덧 21세가 되었다. (-14-)



그 허함을 보거든 나아가고

그 실함을 보거든 멈춘다.

3군이 많다 해서 적을 가벼이 보지 말며

명령을 받았다 해서 죽음으로 받들지 말며,

몸이 귀하다 해서 사람을 낮춰 보지 말라.

혼자의 의견으로 무리를 어기지 말며

재간 있는 말을 옳다 여기지 않는다.

사졸이 앉기 전에는 앉지 말며

사졸이 먹기 전에는 먹지 말며

추위와 더위를 사졸과 함께 하라.

이처럼 하면 사졸들은 반드시 죽을 힘을 다할 것이다. (-56-)



국경인은 그 공로로 판형사제불로에 임명되어 회령을 통치하면서 온갖 횡포를 부렸다. 전 공조참의 성세령은 왜적이 도성을 점령하다, 기다렸다는 듯이 동조에 나섰다. 한양에 살던 성세령은 왜적 총사령관 우희다수가에게 딸을 바쳤다. 그 딸은 기생첩이 양녀로 들인 여식인데, 아름답기가 양귀비 뺨칠 정도였다. (-132-)



막내아들 면이 올해 17세였다. 면이 장성해 가는데도 전쟁 때문에 배필을 정해 주지 못해 안타깝다. 점심을 먹고 각 도에 공문을 써 보냈다.오후에 입부 이순신, 권준, 어영담이 지휘선으로 왔다. 이들은 모두 '왜적이 진주로 대병력을 집결시키고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곧 이어 남해사람 조응도가 와서 걱정을 전했다. (-231-)



80이 넘은 노구에 역질이 들면 막을 도리가 없는데 다행이다.예화가 군막에서 오라와 역질이 구름처럼 번진다고 우려를 표했다. 다음 날 악질병 걸려 죽은 귀신에게 지내는 여제를 올렸다. 예화와 함께 삼고 군사들에게 술 천여 동이를 먹였다. 전라우수사 이억기와 충청수사 구사직도 도왔다. (-301-)



회합을 마치고 작별할 대 왜졸들이 대포를 3발 쏘았다. 이 포성을 신호로 왜군들이 일제히 고함치며 땅에 엎드렸다. 여러 소두목 걸어나가 처음 내렸던 곳에서 말을 올랐다. 이에 왜인들이 높은 소리로 서로 응하고 막사를 나갔다. 경상우병마사 김응서가 곧바로 사천 도원수부로 돌아가 이 사실을 고했다. 또한 소서행장과 회담한 내용을 적어 조정에 장계했다. (-361-)



1597년 음력 9월 16일, 원균이 이끌던 조선의 수군은 전멸한 상태에서, 조선의 배는 12척 밖에 남지 않았다. 그 배를 이끌고 명량해전에 뛰어들엇던 조선수군의 장수 이순신 장군은 일본을 크게 패퇴시키고, 적은 손실로 돌아왔다.위기를 극복하고, 기회로 삼았던 이순신 장군의 위대한 업적은 지금 대한민국 국민들의 정서와 정신에 내재되어 있었다. 23전 23승 전승을 거두었던 그가, 마지막 순간,전사함으로서,자신의 임무를 다한다.



『신에겐 12척의 배가 있나이다』을 쓴 소설가 최인이 쓴 『늑대의 사과』,『문명, 그 화려한 역설』,『악마는 이렇게 말했다』,『도피와 회귀』를 읽음으로서,그의 작품 주에서, 두 편을 제외한 마머지 작품을 섭렵할 수 있었다. 소설 장르를 가리지 않고 스토리를 풀어가는 그의 소설적인 가치는 지난한 자료 수집과 이야기을 만들어 내는 것을 즐기는 그의 문학적 가치에 근거하고 있다, 소설 『신에겐 12척의 배가 있나이다 (상)』 은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와 조선왕조실록,승저원 일기을 근거로 쓰여졌으며,그 당시 이순신 장군 곁에 있었던 예화라는 아이를 주목하고자 한다.



여진족에 의해 무모가 죽엇고, 천애 고아였던 예화를 거두었고, 글을 배우도록 하였다. 요리 뿐만 아니라,에절도 가르쳤으며, 의술도 익히게 한다.이순신 장군 곁에 있으면서, 이순신의 리더십 하나하나 묻고 하였던 유일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 소설에서는 아버지로서, 면을 바라보는 부정父情 을 읽을 수 있었다.실제로 그의 아들 이면, 이훈,이신은 전쟁중에 사망하고 만다. 자신에게 엄격하고, 부하를 통솔할 줄 알았으며, 때에 따라서 관대함을 드러낸다.  전쟁이 추구하는 절대적인 긴장감에도 불구하고, 가까이에 예화가 잇어서, 장수 이순신은 호로 외로움과 고독함을 꼽씹으면서 견딜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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