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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미군기지와 도시산책 - 서울 안의 또 다른 도시, 용산을 여행하는 일곱 가지 방법
김홍렬 지음 / 아임스토리 / 2024년 4월
평점 :




국방부와 육군본부 그리고 미 군사고문단이 함께 위치했던 용산 지역은 6.25 전쟁이 발발하자 한강을 넘어 남쪽 지역으로 피난을 갈 수 있는 인도교와 철교가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1950년 9월 28일 서울 수복 과정과 이듬해 서울 재수복 과정에서 수많은 폭격과 전투로 인해 엄청난 사상자가 발생했고, 도시기반 시설이 큰 피해를 입었다. (-10-)
용산위수감옥은 1909년에 완공된 건물 군으로 국내에 남아 있는 유일한 일본군 감옥이다. 1945년 8월 해방 이후 미 7보병 사단의 구금소로 사용되었다가 1948년 8월 대한민국 정부 수립후부터 6.25전쟁이 발발할 때까지 대한민국 육군에서 이원 육군형무소로 사용했다,이 시설을 거쳐 간 한국사 인물를 꼽으라면 의병장 김기동 선생, 백범 김구를 암살한 안두희,장군의 아들로 이름난 김두한,시인 김수영이 있다. (-45-)
후암동은 일본인들에게 각광받는 주거지 중 하나였다. 1906년부터 약 118먼 평에 이르는 거대한 땅에 지어지기 시작한 용산 일본군 병영은 과수원, 밭,무덤 등이 즐비했던 북동측 지역, 즉, 오늘날 후암동 일대를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도동이라 불릴 정도로 복숭아꽃이 흐드러졌던 후암동은 1908년 일제가 놓은 신작로(현 후암로)를 중심으로 도시구조의 큰 틀이 마련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99-)
용산 남영동 스테이크 골목은 서울 지하철 1호선 남영역 또는 지하철 4호선 숙대입구역을 이용한다면 쉽게 찾아갈 수 있다. 지금은 용산 남영동 먹자골목으로도 부리고 있고, 용산역 앞 용리단길이라 불리는 골목과 함께 많은 사람들이 찾는 음식점과 카페 등이 생겨난 곳이다. (-153-)
용산역사박물관에서 한강대로를 따라 내려가다 보면 경의중앙선 뒤로 형성되어 있는 제방이 있다. 한강변 일대가 매년 수해를 입자 서울시는 196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한강에 제방을 축조했다. 1차 한강 종합개발 사업 시기에 진행된 한강개발 3개년 계획(1967~1970년)은 당시 김현옥 서울시장이 한강 개발을 목적으로 수립된 계획이다. 한강변에 제방도로를 쌓아 한강의 홍수 피해를 막고 제방도로를 자동차 전용 고속화도로로 하여 교통난을 해소하며, 한강변 연안에 근대적 고층화 도시를 건설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201-)
최근 용산이 알려지게 된 것은 윤석열 대통령의 '윤석열 정부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과 2022년 10월 29일 할로윈 데이 날 발생한 이태원 참사다.용리단길이 있는 용산은 미군기지가 있으며, 대한민국 수도 방위의 최전선에 있다. 특히 용산은 일제의 수탈 흔적이 남아 있으며, 용산에서,출발하는 기차가 부산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6.25 전쟁 당시,철로와 인도교가 있는 유일한 곳이기도 하다.
책 『용산 미군기지와 도시산책』을 펼쳐드는 순간, 관광 아이템 하나가 생각났다.6월은 호국보훈의 날이다. 역사적 아픔이 있으며,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역사 문화 탐방, 근대문화유산산책 이다. 용산은 미군기지가 있고,군사물자가 이동하는 곳이다. 철도가 발달해 있으며, 철도원들이 먹고 살아가는 적산가옥이 있었다. 여기에 , 독립운동가를 가두었던 감옥소가 있기 때문에,근현대사를 연구하는데 매우 중요한 곳이다.특히 1945년에서, 1948년, 미군정 당시의 정서와 사회적 배경, 역사적 흔적이 용산에 그대로 문화적 기록으로 채워지고 있으며,우리가 앞으로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한 역사적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아직 대한민국은 미군에 의존하고 있으며, 용산이 가지는 중요한 지리적 위치 뿐만 아니라,앞으로 미군기지와 미군이 해야 할 역할에 데해서, 한국과 미국의 문화적 교류,경제적 교류까지 , 서울 안의 또다른 도시 용산에 대해서, 용산을 여행하는 일곱가지 방법을 꼼꼼하게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