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드 스케치
김유경 지음 / 하움출판사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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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국가보위부장 김원홍의 부름을 받았다. 이제 막 대위 계급장을 단 일개 보위원인 성민이 보위부장과 직접 대면하는 건 흔치 않은 일이었다. 뭔가 범상치 않은 예감이 들어 온몸의 신경이 곤두섰다. 부관의 안내로 보위부장 방에 들어서니 군복을 단전히 차려입은 김원홍이 커다란 책상 앞에 서류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23-)

'아쉽네, 한 편만 더 있으면 백편을 채우는 건데."

정식이 아연하여 눈을 크게 떴다. 멍한 표정으로 앉아 있던 녀석의 입에서 그런 도발적인 말이 튀어나올 줄은 몰랐다. 자신의 죄를 가중할 그런 위험한 말을 하는 죄수는 거의 없었다. 흔히 죄수들은 이 마지막 심문에서 어떻게든지 자신의 죄를 약하게 하려고 온갖 방법을 다 썼다. (-83-)

"맞아요. 세찬 오빠! 우리는 이루어지기 힘든 마음을 품었어요. 같은 민족이지만 남과 북은 적대국이고 오갈 수 없는 세상이지요. 우리가 늙어 죽을 때쯤이면 두 세상이 하나가 될 수 있을까요?지금 우리는 합법적으로 하나가 될 수 없지요.하지만 세상을 합칠 수 없다면 둘 중 한 사람이 그 세상을 탈출하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요?"

"그게 무슨 뜻인가요?"(-128-)

"미술가 선생,놀라지 말고 들으시오. 이번 추석에 어머니가 중국 베이징에 다녀왔는데, 중국에서 초상화 틀을 잘 만들어 보관하려고 그림을 가지고 갔었지요. 베이징은 고향인데, 어머니 소유의 집이 있고 사촌 형제들이 많아요. 그런데 베이징 사촌 형이 어머니 그림으 보고 깜짝 놀랐다는 거예요. 걸작이라고요. 사실 사촌 형은 중국 미술가협회 중진이고, 꽤 관록 있는 화가거든요." (-159-)

​​

"얼마 전에 피 묻은 도끼를 사무실 앞에 가져가 놓은 북한의 위협이 두렵지 않으십니까?"

그 말은 용범이 한 짓이었다. 격한 위협에 질겁해서 장 대표가 북한 관련 일에서 손을 데기를 바라는 게 용범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193-)

​돼지 뜨물을 받던 집이라 차마 거절을 못 하고 얼결에 받아들었다. 그 길로 강아지를 안고 시장으로 나갔다. 제각기 보따리를 앞에 놓고 줄지어 앉아 있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 앉은 형님은 가슴이 막 두근거렸다고 했다. (-237-)

나는 약국에서 데인 상처에 바르는 연고나 소염제 등을 사서 서랍장에 넣어 두었다. 아버지가 야간작업을 하시는 날엔, 아니, 운동한다고 하시는 날에는 알아서 저녁을 먹을 테니 걱정하지 마시라고 문자를 드렸다. 너무 과도한 운동은 몸에 해로우니 될수록 밤에 나가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문자도 드렸다. (-175-)

2023년 김유경 작가는 『푸른 낙엽』을 썼다. 탈북 작가 특유의 억양과 문체로'진중문고'에 선정되었으며, 체코에도 번역 출간될 에정이라고 한다. 그리고 ,2024년 『누드 스케치』 를 통해, 남한과 북한의 서로 다른 모습과 남북 분단으로 인해 발생하는 경제적인 문제까지 대화꺼리를 찾아나가게 된다.

소설 『누드 스케치』는 여덟 편의 중단편 소설로 이어지고 있으며, 북한의 현실과 남한의 현실, 남북한 사람들의 생각과 사고방식의 차이 뿐만 아니라, 체제의 차이까지 읽을 수 있었다.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문제이며, 아직 남한 사람에게 북한은 여전히 1990년대 의 사회적 정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작가 김유경은 탈북 후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남한에 정착해 살아가고 있으며, 북한에서 조선작가동맹 작가로 활동한 이력이 남한에서,북한의 사회적 분위기를 이해할 수 있도록 문학적으로 엮어 나가고 있었다. 이 소설에서,장성택의 숙청 이야기 뿐만 아니라, 한류 드라마 열풍으로 인해, 북한 감시에서 벗어나, 몰래 남한 드라마를 듣고 있는 북한 사람들, 그들이 보위부에 끌려가게 되면, 고초를 격을 수 있건만, 보고 싶은 자신의 욕망은 숨길 수가 없었댜.

한편 이 소설이 가지고 있는 한계도 명 존재한다. 대한민국은 지금 2024년이다. 그런데, 한국사회는 북한을 여전히 1990년대 사회적 분위기를 기억하고 있으며, 못사는 나라, 달러를 구걸하는 나라, 간첩을 남한에 투입시켜서 체제를 혼란스럽게 하려는 불순한 의도를 가진 나라로 인식하고 있다. 도끼라는 물체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확인해 볼 수 있다. 남한과 북한이 통일하게 되면,사회적 혼란은 불가피하다. 서로 다른 이질적인 성향과 문화적 차이는 극복할 수 없기 때문이며, 우리가 어떻게 북한 사회를 보아야 하는지,그들을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지 말고, 열린 마음으로 다가가야 한다는 점, 서로 다른 문화적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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