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형의 인생 수업
이시형 지음 / 특별한서재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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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아보니 여우 같은 그 안경잽이 여선생이다. 우리는 길가 옆의 도랑으로 들어갔다. 얼음이 너무 두껍게 얼어 언제 녹으려는지 한숨이 절로 나온다. 책보자기를 깔고 앉으니 한결 나은데 그마저도 못 하게 빼앗았다. 핫바지에 얼음이 녹을 때까지라니!거기서 학교까지는 몇 걸음 안 된다. 뒤따라오는 선생님이 우리를 일으켜 세워 함께 학교로 갔으나 그 여우 선생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51-)

회담이 끝나고 귀갓길, 경찰이 내 어깨를 툭툭 치더니 잠깐 들어오라고 한다. 그때까지는 파출소가 경무대 안에도 있었다. 내가 거기로 줄려갔는데 '국가 원수를 모용한 죄'로 몰려 자술서를 쓰라고 했다. 하,이럴 수가 있나.나는 아무것도 쓸수 없었다. (-123-)

시골 부잣집 맏아들로 태어나, 우리 마을엔 서당이 모자라 영천 남산 문중에 유학을 떠나 , 이윽고 양현고 제도에 합격해 국비 장학생으로 지금의 성균관대학교 전신인 명륜 전문학교에 유학 청운의 꿈을 불태운 유생이었다. (-219-)

내가 아프단 소식을 듣고 아는 도사님이 산삼 두 부리를 따뜻하게 끓여줬다. 그걸 먹고 나니 마치 술을 마신 것처럼 온몸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힘이 넘쳤다. 도사님이 경고하길 밤에 잠이 안 올수 있다고 한다.그날처럼 꼬박 밤을 세운 것은 처음이다. (-279-)

1934년생, 힐리언스 선마을 촌장 이시형 박사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정신과 의사이며, 행복한 삶과 자족적인 삶의 균형을 자신의 삶에 반영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부잣집, 성균관 유생 출신 아버지의 맏아들로 태어나, 풍족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6.25 전쟁으로 인해 ,독립운동을 한 친인척으로 인해, 힘든 삶을 살아야 했으며,이시형 박사 또한 그 대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천재적인 망상가, 이시형 박사는 자신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었다. 즉 남들이 꿈꾸지 못했던 것을 이룰 수 있었고, 6.25 피난길에서 견디며 살았고, 이승만 정권이 들어선 뒤에도 좌절하지 않았던 이유였다.그는 경무대에서 '국가 원수를 모욕한 죄' 로 잡혀들어갈 뻔 했다.이시형 박사는 어릴 적부터 공부에 소질이 있었으며,일본어도 능통했다.경북대학교 의대를 졸업하고,예일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던 이유도,이시형 박사 특유의 천재적인 망상에 있다고 말하였다.그 망상이 자신의 장수 비결 중 하나다.

살아생전, 자신의 자서전을 남기지 않겠다고 말하는 이시형 박사는 대신, 자전적인 이야기를 『이시형의 인생 수업』에 담았으며, 6.25 전쟁 이전의 학창 시절과 , 6.25 한국 전쟁 이후의 어른으로서 성장하는 과정으 담단하게 기술하고 있다. 누구나 나이를 먹고,그로 인해 노쇠한 삶을 살아야 한다. 구순이 넘은 나이에도, 다수의 책을 쓰고, 건강한 삶과 지치지 않고 , 꼿꼿하게 강연을 나설 수 있었던 비결, 장수의 비결에 대해 『이시형의 인생 수업』에에 나오고 있다.건강한 식습관과 맑은 공기를 마시면서,산책과 사색으로 몸과 마음의 균형과 조화로운 삶을 유지한다. 결국 욕심내지 않는 삶을 살아야, 평온한 삶을 살 수 있고,나와 살의 조화와 세상과의 균형을 잡아 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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