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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의 기원 1 - 해방과 분단체제의 출현 1945~1947 ㅣ 현대의 고전 16
브루스 커밍스 지음, 김범 옮김 / 글항아리 / 2023년 5월
평점 :
1953년 한반도는 잿더미의 폐허였다. 남쪽 부산부터 북쪽 신의주까지 한국인은 죽은 이들을 묻고 잃은 것들에 대해 비통해하며, 산산이 부서진 삶에서 남은 것을 묻고 잃은 것들에 대해 비통해하며,산산이 부서진 삶에서 남은 것을 그러모으려고 노력했다. 수도 서울에는 빈 건물들이 콘크리트와 파편이 기괴하게 섞인 포장도로를 따라 해골처럼 서 있었다. (-25-)
산업은 기계적 절차와 규칙 속도 정확성 훈련을 요구한다. 이것은 한 해의 특정 시점에만 열심히 일해야 하는 농업적 주기에 시간이 맞춰진 농민의 생활과는 반대다.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또는 손쉽게 후자를 포기하고 전자를 선택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렇게 하도록 떠밀리거나 재촉받는다. 그들은 우선 토지와의 연결이 끊어져 이동할수 있는 상태가 되고, 산업 환경의 기술과 규칙에 맞도록 길들여졌다. 한국에서 과정은 해외원조로 시작돼 10년 만에 압축적으로 이뤄진 뒤 시작할 때처럼 갑자기 끝나 노동자는 옛 직업으로 다시 내동댕이쳐졌다. 일제강점기에 노동자였던 농민은 다시 농민이 될 수 밖에 없었고, 이런 변화는 계급 구조의 상층보다 하층을 훨씬 더 급격하게 바꿨다. (-72-)
로버트 미헬스는 이렇게 썼다.
자신의 권리를 열렬히 믿지 않는 집단은 정치적으로 이미 죽은 것이다. 한 특권계급이 자신의 특권을 완강히 지킬 수 있다는 것은 그들에게 일정한 자질이 있다는 뜻이며, 그 자질 가운데 중요한 것은 무자비한 힘이다. 그것은 잔인함과 불성실과 결부해 더울 강력해지기도 하지만, 정의가 절대적으로 자신의 편이라고 확신할 경우 더욱 거대한 힘을 발휘한다. (-149-)
1.긴급사태와 재난이 일어나면 지체 없이 현장으로 동원할 수 있다.
2.경찰서 사이의 관할권 다툼이나 서소한 분쟁을 피할 수 있다.
3.경찰에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시도를 거부할 수 있다.
4.단합된 행동과 공정한 법 집행을 시행할 수 있다.
5. 개인적이든 집단적이 어떤 정치 단체에 들어갈 가능성이 줄어든다.
6.많은 지역사회를 최대한 보호할 수 있다.
7. 지방 경찰은 체제를 전복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정보를 누락해서는 안 되며 철저히 조사해 상부로 제출해야 한다.
이런 방침이 그런 경찰력의 구축을 정당화한 일제의 논리와 그리 다를 게 없지 않냐고 질문하지 않는다면 태만이다. (-232-)
소련은 한국이 진정한 민주적 독립국가이자 소련에 우호적인 국가가 돼 앞으로 소련의 발판이 되지 않도록 하는데 큰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이 발언은 소련이 한국에 대해 침략할 의도를 품고 있다는 증거로 포착됐다.그러나 1945~1946년과 그 이전 일본이 침략한 역사를 고려하면 이것은 소련 입장에서 결코 비합리적인 태도는 아니었다. (-328-)
공식기록은 이 군들의 인민위원회에 가해진 탄압을 이렇게 정당화했다.
모든 곳에서 일반적인 경향은 좌익 세력을 직무에서 몰아내는 것이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그 까닭은 기본적으로 정치적 신념이 아니라 그런 세력이 권력을 멋대로 행사하고 수없이 무능하거나 부정직한 사람을 등용하기 때문이었다. 지방 세력이 권력을 잡은 곳에서 지배를 확대하고 효율적인 행정기관을 수립하는 것은 미군에 충성하는 경찰력을 확립하는데 전적으로 달려 있다는 사실이 더욱 뚜렷해졌다. (-401-)
충청남도의 소요는 1945~1946년 인민위원회가 강력하게 지배한 서북부의 4개 군 대부분에서 나타났다. 10월 13일 덕산(예산군)에서는 300명으로 추산된 폭도가 경사 警査와 딸을 살해했다. 나흘 뒤 1000명 정도가 인근에 있는 합덕 의 경찰을 습격했다. 미군 야전부대는 아슬아슬학세 경찰을 구출했다. (-466-)
1946년 북한의 토지개혁은 남한에 특히 강력한 충격을 주었다. 그것이 발표된 뒤 며칠 동안 남한 신문들은 이 소식을 머리기사로 다루면서 높이 평가하는 사설을 싣고 남한에서도 비슷한 개혁을 촉구했으며 비판은 거의 없었다. 그 뒤 남한 각 도에서 일어난 수많은 농민 보기에서는 북한과 같은 토지 개혁을 요구했다. 이 시기 남한 신문을 통독하면서 남한 사람들은 한국인의 역동성이 북한에서 뿜어지고 있다고 생각했음을 알 수 있다.
첫해 동안 북한의 수많은 피난민이 끊임없이 남한으로 빌려왔다. 미군정은 이런 피난민이 공산주의와 소련의 학정에서 도망친 것이라고 늘 말했지만, 그 행렬은 좀더 복잡했다. (-537-)
한국에서 미국과 소련의 핵심 목표는 매우 비슷했다. 자신들에 계속 우호적인 일련의 지도자와 사회질서를 강화하고 지원하는 것이었다. 그 범위 안에서 한국 지도층과 조직의 성향, 그들의 세력에 따라 독립과 자치의 가능성이 결정됐다. 두 강대국은 그 정책에서 뚜렷한 한계를 설정했다. 소련은 반동 세력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미국은 혁명을 용인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두 강대국 모두 자신들이 결과를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 줄거나 상대방의 독점적 지배를 박기 위해 한국의 독립과 통일을 허용하지 않으려고 했다.
북한의 목표가 소련의 우산 아래 한반도의 절반만 통치하는 것이었다면, 그것은 상대적으로 쉬운 임무였다. 그러나 그것은 목표가 아니었다. 그들은 통일과 남한의 혁명을 추구했으며 남한의 좌익 공산주의자와 정권을 놓고 경쟁했다. 그 결과 해방 후 첫 해의 여러 행동은 남한의 정세와 거기에 미칠 전시효과를 염두에 두면서 이뤄졌다.
브루스 커밍스 (1943. 9. 5. 미국~) 는 미국 시카고대학교 역사학과 석좌교수 이며,한국 전쟁에 대한 권위적인 연구 성과를 얻고 있다.그가 쓴 『한국 전쟁의 기원』 시리즈는 세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두환 정권 당시 금서로 지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한국의 역사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이 널리 읽을 수 없었다. 2023년 비로서 세권으로 완성된 그의 책 『한국전쟁의 기원』 시리즈가 나왔으며,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관 김범에 의해 번역되었다.이 책은 한국인이 아닌 미국인을 위해서, 한국 전쟁에 대해 원인과 그 과정, 그리고 1946년 해방 직전의 한국 의 사회적 분위기와 조선인이 일제 시기를 거치면서, 미군정 지배하에 한국인의 변화와 정치적 흐름을 읽고자 하였다.
책 『한국전쟁의 기원 1』에서는 해방된 대한민국이 미군정 지배하에 어떤 상황이 있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한반도 본토에서, 좌익 세력과 우익의 갈등 속에서, 1948년 남한 단독 정부가 수립되었다. 그 과정에서,제주도 4.,3 사건와 여순반란사건이 연이어 나타났으며, 민주주의 민족전선 에서 출간한 『조선해방 1년사』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조선본토에서, 지배자였던 일본인은 연합국에 의해 항복하였으며,그 로 인해 지배자에서,피지배자가 되는 최악의 상황에 부딪치게 된다. 한반도에서, 일본에 부역했던 지주층 또한 자신의 안위를 보호받기 힘든 상황이었다. 좌익과 우익의 충돌은 불가피한 상황이었으며, 1950년 남한과 북한의 한국 전쟁은 예기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미국의 안보 이익과 소련의 안보 이익이 서로 밀고 당기는 과정에서, 남한과 북한은 38선을 기준으로 분단되었다. 그 과정에서, 남한과 북한의 주권이 사실상 실종된 것인마 마찬가지였다. 북한은 김일성이 좌익 세력의 주축이었으며, 남한은 미국 최초의 박사학위르 가지고 있었던 이승만 박사가 우익세력을 규합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지도자라고 생가하였다.
이런 모습은 우리가 추구하는 남북 통일을 저해하고 있으며,인민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남한의 현주소에 대해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 1』 에 잘 나타나 있다. 그것은 우리가 미국 또한 한반도를 원하였으며, 소련 또한 한반도가 자신의 지배 하에 있어야만 일본과 미국을 견제하면서, 북한의 나진항뿐만 아니라 한반도의 전역에 있는 부동항을 확보할 수가 있다. 비밀 해제된 소련의 안보적략 안에 적혀 있으며, 그들이 원하는 한반도 지배 전략은 한국 전쟁을 촉발시키게 된 이유다. 한국 전쟁으로 인해서, 전쟁유복자,고아가 양상되었으며, 피난길에 떠난 난민들은 굶어 죽거나, 질병으로 죽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