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딱지 대장 김영만
김영만 지음 / 참새책방 / 202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딱지치기도 빼놓을 수 없디요.아버지 어머니 앞으로 라면이라도 한 상자 선물로 들어온다고 하면 신이 나서 가슴이 부풀었습니다. 라면보다도 상자가 탐이 났기 때문입니다. 골판지 상자를 뜯어 펼쳐 가지고 딱지를 만들면 아주 끝내줬거든요. 온 동네 통틀어 넘기지 못할 딱지가 없었습니다. (-14-)

<TV 유치원>에 출연할 당시 아이들을 데리고 외출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뒤에서 누가 아주 앳된 목소리로 나를 부르는 거예요.

"야! 저기 영만이 지나간다! 영만아!"

돌아보니 어린아이들이었습니다.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사람을 밖에서 만나니 저희들 나름대로는 내가 반가웠던 것이겠지요. (-74-)

며칠 전 하나 언니가 한 세 가지 종류의 스틱 파운데이션을 사다가 내게 안겨주었는데요.내 피부색에 맞는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도움받는 처지에 색깔이 너무 어둡니, 밝니 재고 따질 염치까지는 없어서. 결국 직접 화장품 가게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하나 언니가 사다 준 것보다 호수가 높은 파운데이션을 사고 아이섀도와 립스틱도 하나씩 구입해나갔지요. (-136-)

<마이리틀 텔레비전>에 출연하기로 결정한 이후로는 모든 일이 굉장히 빠르고 분주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작가들이 다시금 내 작업실이 있는 천안 시골까지 먼 길을 달려왔습니다. 함께 머리 맞대고 방송 콘티를 짰지요.하지만 마음먹기까지가 제일 힘들었고, 그 다음은 하나도 어렵지 않았어요. (-198-)

책 『코딱지 대장 김영만』은 코딱지 대장 김영만 작가의 첫 에세이다. 그의 종이접기 박업실은 충남 천안 시골에 있다. 원조 초통령 김영만,원조 국통령 김영만은 2015년 마리텔에 출연하였고, 어린 시절 코딱지들이 열광하게 된다.1988년 KBS 'TV유치원 하나둘셋' 에서, 색종이로 종이접기 방송 서비스를 하였다. 1950년 생 김영만 은 삼십대 중반, 처음 종이접기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처음부터 '종이접기' 사업에 대해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얻은 것은 아니었다. 예술 전공,미술전공이었으며 ,삼십대 중반 이전에 시작했던 사업이 망하고, 국민학교 미술 강사로 출발하게 된다.그 과정에서,우연한 기회에 방송일을 하게 된다. 7 대 하나 언니 박설희 와 함께 삼십년 종이접기 방송이 아이들에게 큰 호응을 얻게 된다. 물론 김영만은 코딱지 선생님,코닥지 대장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방송에서 멀어졌다. 그리로 사람들에게 잊혀지게 된다. 마리텔에 출연하였던 2015년 당시, 청장년이 되었던, 30~50대 어른들이 열광했다.이 책에는 마리텔 서비스 당시, 마리텔 관계자들은 악플이 달릴 것을 크게 걱정하였으며, 다행히 그런 일은 채팅 창에서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코딱지 중에는 현직 소령도 있었다. 뒤에서,영만아, 여만아 ,부르던 그 동심 뒤에는 종이 접기에 애한 여운이 깊이 남겨져 있다. 우리가 놓치고 있었던 추억이 나와 있으며, 여전히 우리는 김영만 선생님의 코딱지 대장이었다. 어린 시절 우리의 기억 속에 소중한 조이 접기 선생님, 미술 선생님 김영만 작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