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 일기
서윤후 지음 / 샘터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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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어수선하고 좋지 않은 날엔 김밥을 말아서 김밥이 다 사라질 때까지 먹는다. 점심부터 저녁까지, 그 다음 날로 넘어가기고 한다. 일부러 손이 많이 가는 것들을 한다. 정신이 어디엔가 팔리도록 나 스스로 속임수를 쓰면 잠깐은 홀가분하고 이후 다시 내내 헛헛하다. 근래에는 나의 약점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을 많이 알게 된 일들이 있었다. 약점을 알게 된 사람이 스스로 손쓸 수 없을 때부터는 입이 가장 먼저 닫힌다. (-22-)

편지에서의 문장 부호는 그 사람의 목소리가 가지고 있는 억양을 들려주는 것만 같다. 아니면, 문장이 잘 전해질 수 있도록 돕는 손 내민 자국 같기도 하다.나는 안녕 뒤에 언제나 느낌표를 사용한다. 그리고 기울어진 느낌표를 쓰면 꼭 손 흔들며 반갑게 인사하는 느낌이 든다. 안녕 뒤에 마침표가 찍혀 있을 때, 안녕 뒤에 물음표가 띄워져 있을 때 각각 전하는 느낌이 너무나도 달라서, 느낌표가 가자 무난하다는 생각을 했다. (-45-)

사람과의 관계는 사회적인 연결로 봤을 때 굉장히 중요하나,그다지 중요하지도 않다. 다양한 관계 속에 맺어지는 나 자신의 거울은 많은 곳을 비출수록 피곤해지기 때문에, 사람을 선별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선별의 기준이 폭력적이거나 왜곡된 것이 아니어야 한다는 점에서 , 자연스레 가까워지고 멀어지는 거리감 속에서 우리가 필연적으로 약속하는 것은 약속하지 않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시를 쓰겠다고 스스로 약속한 뒤로 약속을 자주 어기는 사람이 되었다.이 시간에 꼭 자야지,하고 잠드는 문장들을 위해 나는 자꾸 맴돌 수 밖에 없다. (-115-)

부러지거나 타오르거나 그런 선택만 어렵지 않다. 눈에 띄게 사라지는 방법?눈빛이 많이 머무는 생활이 좋다. 나의 방, 나의 침대, 나의 책상에는 눈빛이 실종되었고, 시간에 쫓기는 손길만 안달 나 있는 주름들, 주름을 활짝 펼치고 나아가 가장 아름다운 덧니를 보여주면서 웃어. 살면서 알았다는 대답은 얼마나 많이 해왔을가.모르면서. (-175-)

서윤후 작가의 산문집 『쓰기 일기』의 주제는 '쓰기'이다.이 '쓰기'에는 시, 문학,일상, 시간, 장소,감정,느낌를 써내고 있었다. 1990년 생,MZ 세대의 대표주자인 작가 서윤후에게, 쓰는 행위가 자신을 존재하게 해주는 가치이면서, 소소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으며,그것이 추구하는 것은 어떠한 원칙으로 이언지고 있는지 하나 하나 살펴 볼 수 있었다.하루 하루 일상 속에서 변화를 기록하고 있다.

서윤후 산문집은 위로가 되고,치유가 된다.작가는 20 대 후반 , 2017년부터 쓰기 시작하였으며, 2023년까지 자신의 일상 속의 기억들을 쓰기로 채워 나갔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순간 순간 스처 지나가는 기억들을 쓰기를 통해서, 글을 통해 붙잡는다. 쓰지 않으면 기억하지 못하고,기억하지 못하면, 나의 일생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하루 하루 소소한 일상들이 쓰기라는 습관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책에는 자신이 배운 지식과 철학적 사유, 감정과 느낌,일상들이 하나 둘 채워져 있었다. 무언가 특별하지 않아도, 일상 속에서,내가 깊이 관찰하였던 것들은 쓰기의 행위 주체가 될 수 있었다. 사람을 관찰하고, 관계를 관찰하고,자기 인식과 자기 위로를 스스로 하게 끔 도와주고 있다. 무엇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을 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디 일상 속에서, 스스로 감정과 생각, 느낌들이 서서히 무너질 때가 있다. 이런 경우에 어떻게 선택하고,무엇을 해야 하는지 하나 둘 이해할 수 있고, 무엇 하나하나 결정할 수 있다. 새로운 것들이 모여서, 스스로 자기 성장과 자기관찰, 그리고 자기 통제가 가능하도록 , 인생에 독특한 형태의 경험을 제공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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