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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緣愛)
서민선 지음 / 머메이드 / 2024년 2월
평점 :
처음 결혼을 앞두고 어머니 댁을 방문했을 때 나는 혼자 야심 차게 계획했었다. 저 오래된 이부자리들을 싹 다 버리고 , 포근하고 산뜻한 것으로 싹 다 바꿔 버려야지. 뚱뚱하고 먼지 쌓인 텔레비전도 버리고, 짝 없는 젓가락들도 다 버려버려야지. 시장에 가면 많이 있는 싸디싼 속옷, 양말들을 올 때마다 사 날라야지. 그렇게 살뜰하게, 이 나이 든 여자의 집을 싹다 바꿔 버려야지.그런데 웬걸, 계획은 번번이 수포로 돌아갔다. 그리고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 가 아니라 '부모 이기는 자식 없는'시댁 가족들을 이해하는 반열에 들어섰다. (-67-)
남편이 89세 어머니를 모시고 은행에 다녀왔다. 88세의 금융 소비자인 어머니는 글을 읽고 쓰실 줄 모를 뿐더러 귀가 어두우시고 더욱이 은행시스템에 대해서도 문맹, 이른바 금융 문맹이시다. 아직까지 모든 돈은 어머니의 바지 주머니로 들어가고 나오고 통장에 찍히는 숫자를 읽지는즌 못하시지만 한 달에 한 번 꼬박꼬박 통장 정리는 잊지 않으신다. 우리는 어느 순간 어머니의 금융 소비 생활을 대행하게 되어 인터넷 뱅킹을 신청하게 되었는데, 이게 신청부터가 막막했다. (-135-)
어머니께서 올해 들어 세 번째 페에 물이 찼고 네 번째 구급차를 타셨고 여섯 번째 응급실을 찾으셨다. 그 과정에서 나는, 가족의 마지막을 함께 지내 낸다는 것은 진정 짐작하기 어려운, 어마어마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은 경험한 것에 한하여 공감할 수 있다는 진리를 다시 한 번 깨닫기도 했다. 직접 경험하고 부딪히먀 깨닫는 , 내 사람의 마지막 나날들. (-211-)
작가 서민선은 며느리로서의 살, 올케로서의 삶, 작은 동서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 아내이면서, 엄마의 역할도 도맡아하고 있으며, 1933년생,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아오고 있다. 40년 이상 차이가 나는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는 고부 관계라기 보다는 손부관계에 가깝다. 글을 모르는 시어머니와 함게 살아가면서, 인생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라는 속담이 생각난다. 평생 글을 모르고 살아온 90년 간의 삶, 글을 모르지만, 나른대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글을 몰라도,자신이 일한 만큼의 일해온 일삯은 잊지 않는다. 나름대로 계산하는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일하는 며느리에게 일을 그만했으면 하는 마음 속에는 ,매달 받는 고령 노인 연금으로 며느리 몫을 챙겨주고 싶은 시어머니 특유의 사랑이 느껴졌다. 금융 문맹이지만, 은행에서, 통장정리는 빠지지 않았다. 해외 여행은 힘들지만, 국내 여행을 자주 다니면서,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다. 며느리로서의 삶, 딸로서의 삶이 다르다. 친정 어머니는 시어머니에 비해 젋은 축에 속하기 때문이다. 배우지 못했지만, 나름대로 살아온 인생 지혜가 있다,.그 지혜가 이 책에 담겨져 있으며,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 속담처럼 인생을 견디면서, 수많은 고난을 견뎌온 실어머니처럼 살아간다면, 자신의인생에 어떤 위기가 찾아온다 하더라도 잘 넘길 수 잇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어려서, 부모를 여윈 시어머니에 대한 애틋함이 곳곳에 느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