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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 - 한국의 땅과 사람에 관한 이야기 ㅣ 대한민국 도슨트 13
이지상 지음 / 21세기북스 / 2024년 1월
평점 :




대학교 학생증을 맡기고 처음으로 외상술을 먹던 날부터 첫 음반이 나오고 또 첫 책을 받아든 날도, 교수가 되어 첫 강의를 마치고 교실 문을 나오던 날도 나에게 건낸 최고의 찬사는 "포천 촌놈 이만하면 잘했다" 였다. (-13-)
촌놈이 유학이랍시고 서울 올라왔을 대에는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던 친구들이 나를 "어이, 막걸리!"라고 불렀다. 학교 앞 선술집에선 고갈비나 파전 안주를 주로 먹었는데, 그때 일행들이 마신 술이 서울 막걸리였다. 나는 막걸리의 고향 포천에서 왔다는 핑계를 대고 소주를 마셨다. 최고의 막걸리를먹고 자란 놈이 가짜 술을 마실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그만큼 자부심도 있었다. (-74-)
금수정과 영평천에 있는 암각을 다 확인하시려면 꽤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바위 밑 수로를 따라가야 하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고 물길 속으로 걸어 들어가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정자에 앉아 공상을 하시거나 적당한 거리에서 사진을 찍으시거나 산책을 하시거나, 사실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제일 좋습니다. 그저 눈에 보이는 것들만 멍 하니 바라보고 있어도 충분합니다. (-148-)
이벽의 묘지는 경주이씨 선영의 구석 자리에서 아무도 돌보지 않는 폐묘인 상태로 1979년에 발견됐다. 무덤이 생긴 지 195년 만이었다. 다행히 천주교의 성조를 찾아 나섰던 사제들의 모역이 있었다. 천진암으로 이장하는 과정에선 비용이 문제였다. 전국의 성당에 공문을 보내 협조를 요청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그의 이장 일정은 두 번씩이나 연기되었다. (-157-)
무란마을을 찾은 이유는 백동수에 관한 책을 읽다가 발견한 마지막 한 줄 때문이다. "1816년 10월 3일, 야뇌 백동수는 포천에 있는 집에서 영원히 눈을 감았다.향년 74세." 가슴을 두근 거리게 만드는 문장이었다. 중국의 『사조영웅전』 에 증장하는 동사,서독, 남제, 북개에 해당하는 조선 무예의 초고수를 지척에서 만날수 있다니, 『조선의 협객 백동수』 를 쓴 김영허는 무예에 미친 사람이다. (-220-)
한국 최초 지역별 인문 지리서 시리즈 도슨트 시리즈 열세번째 「포천」 편이다. 앞서서 속초, 인천, 목포, 춘천, 신안, 통영, 군산, 제주 동쪽, 제주 북쪽, 정선, 안동, 원주, 그리고 포천 편이 나온다. 포천하면, 포천 막걸리가 생각날 정도로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익숙한 동네이다. 경기도 최북단, 38선과 인접하는 곳, 개발되지 않는 곳이 포천이며, 포천이 지니는 지리적 매력을 느낄 수 있다.
포천은 천주쟁이 이벽 (李蘗, 1754년~1785년)이 있는 곳이다. 포천시 화현면 화현리 543-1번지에서 태어나, 을사박해로 싱앙의 동지들이 죽었던 해 세상을 떠나게 된다. 조선 최초의 조선교회를 만든 주역이며, 폐묘 된 상태로 1979년에 발견되었다. 결국 1979년 이후 ,이벽의 이장은 두번이나 연기되었다. 순교자로서 이벽은 22014년 프란체스코 교황 방한 당시에, 123위 시복 시상에 오르지 못했다.
책 『대한민국 도슨트 13: 포천』에는 촌놈 이지상의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인생이 담겨진다. 골목 골목하나 허투루 놓칠 수 없으며, 자신이 보고,느꼈던 것을 잊지 않는다. 금수정과 영평천에 있는 암각에 대해서, 무예에 미친 사람 김영호가 쓴 책 『조선의 협객 백동수』 에서, 포천에서 사망한 백동수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역사적으로 지리학적으로 포천이 지니는 의미, 광복 이후, 38선과 인접해 있는 포천에 대한 역사적인 의미까지 살펴 보고 있으며, 한반도의 중원, 경기도 포천 땅과 포천 사람에 대해 놓치지 않았다.대한민국 국민에게 가벼히 잊혀지지 얺는 포천을 꿈꾸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