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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즐 맞추기 - 이 땅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간다는 것
임미정 지음 / 바른북스 / 2024년 1월
평점 :
수업 중에 진유는 기차에 자주 시선을 빼앗기곤 했다.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말을 멈추는 진유를 보며 아이들은 킥킥거렸다. 이이드은 진유를 '미스 트레인'이라고 불렀다. 한 아이가 손을 번적 들었다. 마을 운영위원회 위원장 딸 송린이었다. (-21-)
책상 위에 손을 포갠 의사의 손가락은 마디가 없고 하얬다. 고생이나 실패의 흔적이 없는 손,예전 내 손가락과 비슷하다고 할까.내 신체 중에서 제일 잘생긴 것이 손가락이었다. 다 지난 일이지만.(-52-)
민욱이 목소리를 깔고 노려봤다. 민욱과 눈이 마주치자 슬며시 고개를 돌렸다. 민욱 옆에 서 있던 아이 둘이 준을 세게 밀쳤다. 넘어지지 않고 준은 몸을 휘청거렸다.연이어 한 아이가 준을 바로 찼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어, 하는 소리에 눈을 떴을 때 준은 보이지 않았다. 난간을 잡고 아래를 내려다보던 민욱과 아이들이 잽싸게 자리를 피했다. (-89-)
잘 먹었습니다. 오빵 님.
유경이 눈두더이를 치켜뜨고 웃었다. 자기 눈 상태를 모르는 듯 싶었다. 유경은 절대 끊어지지 않는 거미줄에 걸린 잠자리 같았다., 육즙이 말라 부스러기가 되기 전에는 벗어날수 없다는 것을 알아도 울지 않는 전사, 민은 가슴이 시렸다. 꽁꽁 언 손을 집어 넣은 것처럼. (-124-)
'()톨이 카페'는 가면을 써야만 입장이 가능한 가면 카페이다. 손님들은 카페에 비치된 가면을 썼다. 초코, 유령, 까만 고양이 등등 스무 개에 가까운 캐릭터 가면 덕분에 직원은 손님의 얼굴을, 손님은 직원의 얼굴을 알아보거나 기억할 수 없었다. 손님은 여기요,어이 대신 감자 님, 애플망고 님,하고 불렀고, 직원들은 1번이나 9번 테이블 손님 대신 유령 님 , 초코 님 등으로 호명했다. 손님과 직원을 구분할 수 있는 것은 흰색 폴로 티셔츠와 검정 앞치마였다. (-145-)
칠학기 만에 석박사 통합 과저을 마친 인영은 큰맘 먹고 G사의 검정 웨지힐을 샀다. 수고한 자신에게 주는 보상이었다. 계산을 마치고 돌아서는 순간, 유난히 반짝이는 구두가 눈에 들어왔다. 잠깐만요.구두는 진열장 중심에 놓여 있었다.
"신어보실래요?" (-181-)
사장을 비롯해 말 줄이기를 좋아하는 인간들은 한결같이 명령어를 사용했다.하지만 정아는 달랐다. 정아가 리아씨, 이름을 불러줄 때면 리아는 의미 있는 존재가 된 기분이었다. 리아는 정아를 보면 또 다른 자신을 보는 것 같았다. 구 십 구 명 중 하나인 리아,정아는 쉴 새 없이 몸을 움직이면서도 표정에 변화가 없었다. (-221-)
임미정 작가의 『퍼즐 맞추기』는 여섯 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퍼즐 맞추기」 는 그 단편 중 하나다. 『퍼즐 맞추기』에서 여섯 편의 공통점은 이방인이라는 작은 주제다.그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나와 남을 나누는 하나의 기준이 되고 있으며, 각각의 이방인이 하나의 퍼즐 조각처럼 되어 있었다. 작가 임미정에게 있어서, 퍼즐을 맞춘다는 것은 어긋나는 것, 맞춰지지 않는 개체 하나하나가, 퍼즐이 되어서, 사회 속에 녹여 내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단적인 모습이며, 이방인에게 생존이 권력보다 우선하고, 손님으로 살아가는 방식이 더 안전하다고 느끼며 살게 된다.
『퍼즐 맞추기』 에는 코로나 19 시국을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다. 전염병을 예방하기 위해서 쓰는 마스크가 나를 지켜주는 안전한 도구이기도 하다.마스크를 쓰면, 내 정체르 감추는 것 뿐만 아니라 얼굴과 이름을 감출 수 있다.여기서 안전하다는 것은 건강 뿐만 아니라,나의 정체성도 포함하고 있다. 나 자신을 마스크로 가림으로서,상대방이 나를 이방인으로 생각하지 않게 되고, 서로 평등한 상태가 될 수 있다.
우리가 불편하게 생각하는 인종 차별, 혐오, 배척, 눈치, 다문화, 이러한 것들이 이방인에게는 해당되지만, 그 반대쪽의 경우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눈치를 보는 쪽은 손님,이방인이지, 주인에게 해당되지 않기 때문이다.한국말이 서툰 외국인이 한국에서 이방인으로 남는 이유, 새터민들이 이방인 일수 밖에 없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