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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 퇴근하겠습니다 - 시간 없는 세상에서 알뜰하게 나를 챙기는 법
최진경 지음 / 혜윰터 / 2023년 8월
평점 :



아이들을 통해 종종 어린 시절 나와 조우한다. 내성적이고 눈물 많던 여린 꼬마와,유치원 놀이터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다른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며 흙과 함께 시간을 때웠다. 다행히 그런 나를 닮지 않고 목소리도 크고 씩씩한 서이가 대견하다. 엄마는 유치원이 별로였다고, 가기 싫었다고 언제쯤 비밀을 털어놓을 수 있을까. (-49-)
유치원 하원 후 집에 가던 길, 서이는 길 한폭판에 주저앉아 온 동네가 떠나갈 듯 자지러지게 울어댔다. 유모차에 자기가 타겠다고 당당 단이를 내리게 하라며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단어를 흘끗 보니 고개를 절레절레 단호하게 흔든다. 아기 띠도 없는데 망했다. 단이를 한 손으로 안고 유모차를 밀기는 어려울 것 같으니 집에 도착할 때까지만 이해해 달라고 설득했지만 소용없었다. (-86-)
그즈음 이연진의 《내향육아》 를 읽었다. 내향적인 엄마는 개인 시간이 특히 많이 필요하고 중요하다는 사실을 육아서를 통해 알게 됐다. 모성애가 부족하다며 연신 자책했는데 알고 보니 이런 증상은 모성애 부족이 아닌 내향적인 엄마의 특징이었다. 나는 혼자 있는 것만으로 충전되는 시스템을 지닌 사람이었다. 오랜 시간 그런 상황이 주어지지 않으면 방전돼 오작동하기도 한다. (-147-)
책은 독자에게 묻는다. 자기계발을 위한 여분의 시간이 생긴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지 않으냐고 .정말 그랬다. 주부인 나조차도 그랬다. 당시는 서이가 두 돌도 채 되지 않아 원에 다니기 전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출퇴근 시간이랄 게 딱히 정해져 있지 않았다. 개인시간을 가지려면 내 의지 만으론 안되고 반드시 조건이 성립돼야 했다. (-192-)
그날따라 활짝 열어둔 마음 때문인지, 취향 저격 드레싱 덕분인지 생채소가 평소보다 달콤하니 맛이 좋았다. 양껏 먹었는데 속도 편안해 자주 해 먹고 싶어졌다. 매일 사 먹기엔 가격이 부담되고 그렇다고 집에서 매번 준비해 챙겨 먹기엔 어렵고 귀찮지 않을까 싶어 엄두를 못 내던 중'야채 매일 쉽게 먹는 방법'이라는 유튜브 영상으 보게 됐다. (-256-)
'조기 육퇴'를 할 테니 남편에게 애들을 봐달라고 했다.저녁 설거지 마친 8시 이후로 이 집에 나는 없는 사람으로 여성 달라 하니 남편이 당황한다. 그럼 나는 언제 쉬냐고 묻는다. 아이들 재우고 쉬라하니 엄마가 곁에 없으면 애들도 잘 안 잔다고 한다.마음이 흔들리지만 단호하게 얘기한다. 다 적응하기 나름이니 한 번만 해봐달라고. (-291-)
다리가 아파 병원에 가면, 의사선생님은 다리를 무리하게 사용하지 말라고 한다. 허리가 아파 병원에 가면, 허리를 무리하게 쓰지 마라고 한다. 의사들의 말은 맞지만, 현실적으로 실천하기엔 불가능하다. 아파도, 회사생활을 해야 하고,일상생활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의사 처방대로 행동했다간 타박듣기 싶다. 현대인들은 무리할 수 밖에 없는 사회적 구조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큰 병이 아닌 이상 쉴 수 없는 상황에 내몰리게 된다.몸이 불편하고,마음도 불편하다.
주부도 마찬가지다. 결혼하고 ,아이가 태넌난 뒤, 가정을 꾸리게 될 때, 내 시간의 대부분이 아이들에게 빼앗기게 된다. 출퇴근 시간이 다로 없다. 전업 주부던, 워킹맘이던 다르지 않다. 워킹맘은 퇴근 후, 아이들이 자기 전까지 모든 시간이 아이들을 챙기는 것에 올인하게 된다. 사회가 두 아이를 키우기 힘든 사회로 바뀌고 있는 이유다.
저자 최진경은 전업주부다. 주부 경력 8년차이며, 내향형 이며, 전공은 디자인 관련 학과를 나왔으며, 일상 미학 추구에 야무지게 써먹고 있다고 말한다. 가정 주부로서, 집안 일에 ,자신의 전공을 쓰고 있다는 것이며,자신이 어느 엄마들과 달리 모성애가 없다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나를 알고, 나에 대해 이해한다는 것은 결국 책이나 사람을 통해 얻어야 한다. 주부로서, 세상이 만든 기준에 부합하지 않으면,그것을 채우기 위해서 시간을 쓰고 돈을 쓴다.양심적으로 내면의 부족한 것을 채우기 위함이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나 자신의 존재 가치가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을 케어하다 보니, 자기계발을 할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독서 모임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글을 쓰거나 영어나 외국어 공부를 하는 일체의 행동들이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게 되고,시간적 여유가 사라지게 된다.
하지만 저자는 마음먹고 육퇴를 선언하고 말았다.나의 시간을 찾겠다는 강력한 동기가 존재했고,아이들이 엄마 껌딱지가 되는 것을 잠시 유보하고자 한다. 소위 일상에서 길들여져 왔던 시간들, 상처받고 있었던 억제된 삶에서 벗어나, 여성으로서, 친구도 만나고, 일상에서,나를 위한 시간을 어느정도 확보하기 위한 결심을 하게 되었고, 남편의 도움,아이들의 적응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걸, 이 책에서 ,작가 최진경의 삶에서 얻는다.남편이 회사에서 퇴근하고, 쉬는 것처럼, 아내도, 주부로서 퇴근할 권리가 존재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