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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족관
유래혁 지음 / 포스터샵 / 2023년 12월
평점 :
카노코는 말을 잠시 멈추고 숨을 길게 몰아쉬었다. 그러더니 이번엔 작은 은색 포크를 들어 한쪽이 하얗게 무너지고만 삶은 계란을 푹 찍어 내 쪽을 향해 들어 올렸다.
"류이치, 너는 아픈 곳 없지?"
그럼 보시다시피."
나는 평범하기 그지 없는 내 몸을 처음으로 자랑스럽게 가리키며 말했다. (-45-)
그도 그럴 것이 오늘만 해도 아키라를 만나 꽤나 이상한 방식으로 함께 옥상에 올라갔고,그곳에서 각자의 과거를 한데 풀어놓았다. 또 ,아키라는 그 짧은 시간 동안에도 몇 번이나 나를 속인 것으로 모자라, 결국 훔쳐 온 수십개의 지갑을 함께 처리하게끔 만들었다.'속였나?' 도중에 그런 의문이 들었지만, 역시 아키라는 나를 속인 게 분명했다. (-124-)
하지만 나는 왠지 아카리가 아닌 다른 사람이 온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아카리는 그녀의 그림자가 대신 나왔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어딘가 묘하게 색을 잃어버린 듯했다. 칙칙한 교실의 풍경과 명확하게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179-)
한번도 쉬지 않고 뛰어와 역의 화장실에 다시 도착했을 때 내 얼굴은 정말이지 볼 만했다. 찬바람을 가르며 가쁜 숨을 몰아쉰 탓에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고, 언제 흘렸을지 모를 눈물과 콧물이 눈이 녹은 다음 날의 지저분한 길거리를 연상케 했다. (-209-)
류이치, 인간에게 언제나 슬픔이 비처럼 내리고, 그걸 따듯한 기억을 펼쳐 막아야 하는 거라면, 나는 평생 동안 쏟아지던 비를 내 힘으로 막아 본 적이 없어.,내 기억과 마음은 너무 어릴 때부터 고장이 났거든. (-259-)
유래혁 자가의 『수족관』은 슬픔과 아픔,그리고 우울함으로 채워져 있었다. 주인공과 아카리, 이 두 사람은 서로의 운명처럼,자석처럼 끌리게 된다. 그 자석은 주인공의 지갑이 사라진 것으로 시작하였다. 아카리는 보육원 출신이다. 불행한 환경이 아카리의 인생을 집어 삼키고 있었으며,그것이 결국 아카리의 또 다른 모습 그 자체라고 말할 수 있다., 강렬한 기억들 , 희미해져 버린 습관의 흔적들, 이러한 것들이 연속적으로 시간의 잔향처럼 미끄러져 내리고 있었다.
아카리의 내면 속 짙은 애수, 그것이 오랫동안 내 삶을 지배하고 있었다. 부끄러움과 웃음, 이 두가지 양면적인 모습 속에서,서로 오해를 할 수 있었고,그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들을 작가의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다. 작가는 주인공의 시점과 아카리의 시점으로 구분하여 마음 속의 심적인 변화를 잘 표현하고 있었다. 삶의 긍정과 부정이 서로 엮이고 있다.
특히 이 소설에서 눈여겨 볼 것은 나에게 주어진 운명과 환경,이러한 것들이 내 삶을 어떤 형태로 지배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고,발생할 수 있는 것들, 아카리의 운명, 그런 것들이 한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 여러 사람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었다,. 소설이 풀어내지 못하는 스토리에 대해서,주인공의 내며속 모순을 독자의 몫으로 남겨 놓고 있었다. 어저면 내 주변에 암묵적으로 아카리와 같은 사람은 존재할 수 있고,그들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는 우리에게 새로운 영향으로 나타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