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피난처에 잘 있습니다
이천우 지음 / 북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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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어?"

장난감을 고를 때도, 잘못을 저지른 뒤 변명을 할 때도, 대학을 선택할 때도, 직장에 들어갈 때도. 아버지는 늘 그렇게 물었다. 더 노력해라, 게으름 피우지 말아라, 도망치지 말고 맞서라, 그런 말들 대신에 늘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냐고 물었다. 그 말은 집안의 가훈이나 마찬가지였다. (-15-)

어린 시절부터 진태가 받은 평가는 주로 이런 것들이었다. 성실하다, 꾸준하다, 깔끔하다, 반듯하다. 분명 나쁜 말들은 아니었지만 그런 얘기를 듣고 있을 때면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자신이 제법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은 들어도 뭔가 특별한 사람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던 것이다. (-56-)

첫 페이지는 1965년 10월 6일, 다짐으로 시작했다.

금주 금연을 하면서!

이 금주 금연은 영원한 금주 금연이 아니며 나의 자립 시기까지이다. 그리고 타인이 들으면 웃을지 모르나 이것엔 약간의 예외가 따른다. (-71-)

두번째 명상록은 회상으로 시작했다.

대구에서 상고로 다니던 아버지는 무척이나 대학에 가고 싶었지만 집안 형편을 이유로 만류하는 형님들 때문에 한이 맺혀 있었다. 할아버지는 그때 환갑을 넘긴 나이였고 집안 문제에서는 이미 뒷전으로 물러나 있었다. 아버지가 아무리 하소연을 해도 네 형님들이랑 잘 상의해 봐라, 하는 식으로 달랠 뿐이었다. (-135-)

자신을 '옥남'이라고 소개한 오십 대 초반의 여자는 아버지한테 한글을 배웠다고 했다. 자기에겐 아버지가 선생님 같은 분이었다고 말하며 울먹였다. 그녀는 아버지를 짝사랑했었다고 했다. 그녀를 단념시키려고 주변 사람들이 아버지를 죽었다고 거짓말을 해버리느 바람에 몇 날 며칠을 눈물로 지새웠다는 일화를 말할 때는 십대 소녀처럼 배시시 웃기도 했다. (-216-)

아버지가 실은 그러지 못했음을 진태는 알고 있었다. 그 여섯 번째 명상록 뒤표지에 붙은 종이 포켓에는, 언제든 내놓을 것처럼 곱게 적은 사직서가 들어 있었다. 아마도 아버지는 한 동안 ,그 꿈이 좀 더 흐릿해질 때까지 후회하지 말자는 다짐을 되뇌며 살았을 것이다. 그러고는 그 말이 입버릇처럼 남아서 뜻하지 않게 자식들을 괴롭혔을 것이다. (-259-)

소설 『우리는 피난처에 잘 있습니다』 은 1940년~50년대 에 태어난 아버지가, 1960년대에 쓰다 남겨 놓은 일기장을 세 남매,. 진태,진수, 해민, 세남매가 보게 되는 이후의 변화를 그려내고 있었다. 이 세 남매는 아버지가 남긴 말 한마디가 ,그들의 가치관이자, 신념이었고, 집안 가훈이 되었다. 남매에게, 어떤 선택을 할 때, 항상 존중하지만, 마지막 말 한마디는 후회라는 단어였다. 자신이 걸아온 인생에서, 수많은 선택에 대한 후회를 채험하였고, 실패를 받아들인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숨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소설에서, 피난처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도피처였다. 첫째 진태, 막애인 해민, 그리고 둘 사이에 중간 역할을 하는 진수까지, 장남과 차남,막내라는 역할 분담이 그들의 인생을 지배하고 있었으며,그것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다.

아내와 이혼하게 된 진태, 언니를 사랑하는 성 정체성 혼란에 시달리는 해민,그리고 ,진수가 느낀 좌절, 이 세사람은 혼란스러운 삶 속에서, 오직 자신만 그런 고통을 겪고 있었다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2010년 33명의 칠레광부가 매물된 것을 모티브 삼아서, 그 실화에, 소설가 이찬우 의 실화를 바탕으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의 고민과 걱정은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존재할 것이며,미래에도 나타날 거라는 걸, 세 남매가 아버지의 유품 중 하나인 아버지의 일기장을 발견하고 난 이후 벌어지는 여러가지 상황 들이다. 일기장을 보기 전에는 오직 불행만 생각했던 그들이 일기장 하나로 불행이 아닌 새출발, 긍정의 씨앗을 남길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는 것을 알아가는 삶의 여정이 나타나고 있다. 같은 상황이라 하더라도, 어떤 사람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어떤 이들은 재도약의 기회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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