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세웅 평전 : 정의의 길, 세 개의 십자가
김삼웅 지음 / 소동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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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나라에서 1천년 동안 겪을까 말까 하는 역경과 시련을 우리는 100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 한꺼번에 겪어왔다. 실로 만만치 않았던 그 시절을 통과하여 마침내 선진화를 이뤄낼 수 있었던 핵심 키워드는 단연코 '민주화'일 것이다. 민주화로 인해 사회가 유연해지면서 문화, 예술을 비롯한 많은 분야에서 한민족 특유의 창의력이 발휘되었고, 경제발전에도 윤활유 역할을 할 수 있었다. (-10-)

검찰은 3월 26일 구국선언 서명자 20명 중 김대중, 문익환, 함세웅, 문동환, 이문영, 서남동, 안병무, 신현봉, 이해동, 윤반웅, 문정현 등 10명을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하고, 윤보선, 정이령, 함석헌, 이태영, 이우정, 김승훈, 장덕필 등 7명은 불구속 기소했다. 그리고 김택암, 안충석 등 2명을 기소유예 처분했다. (-108-)

'불안한 안전'은 오래가지 않았다. 유신체제가 말기에 이르면서 동일방직 사건(1978), 도시산업선교회 사건(1978),함평 고구마 사건(1978),YH 노동자들의 신민당사 농성 사건(1979) 에 이어 '오원춘 납치 사건' 이 일어났다. 농협에서 알선한 감자 씨를 심었으나 싹도 나지 않는 바람에 감자농사를 망치게 된 안동 농민 오원춘이 이를 사회에 고발하자 중정 요원들이 납치하여 고문한 사실이 1979년 8월 안동교구 사제단에 의해 폭로되었던 것이다. 함세웅에게는 두 번째 감옥행이 계기가 된 사건이었다. (-130-)

함세웅은 1984년 2학기부터 가톨릭대학과 병합함 성심여대에 출강하여 종교학을 가르쳤다. 당시 신문사에 소속되어 있던 저명한 작가가 그를 인터뷰하면서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무엇을 강조합니까?" 라고 물었다.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초대 교회의 학자나 지도자가 지녔던 올바른 가치관을 가르칩니다. 대표적인 예로 오리제네스와 아우구스티누스를 들 수 있지요. 그분들은 삶과 사상의 진실된 가치를 설정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시대를 뛰어넘는 원칙과 진리를 가지고 있고, 저는 그것을 가르칩니다.(183-)

문규현과 진종훈 신부는 라종일의 보장이 있었으니까 그걸 믿고 그렇게 행동한 거였어요. 나중에 일이 꼬이니까 라종일이 발뺌을 하고, 우리가 도착하는 아침에 정진석 교구장을 찾아가서 저희들에 대한 보고를 다 한 거예요. 그러니까 서로 오래된 사이였던 거죠. 저는 그날 12시에 지구회합에서 북한 갔다 온 얘기를 죽 했어요. (-242-)

함세웅 신부의 『껍데기는 가라』 가 생각난다. 이승만, 박정희,전두환, 노태우까지 이어졌던 군부독재 정권은 언제나 정권에 위협이 되는 이들을 권력과 총과 칼로 다스렸다. 정의가 사라지고,민주화 물결이 소멸된 역사적 아픔이 대한민국 근현대사에 있다. 21세기 이명박, 박근헤 정권이라고 다를 것이 없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 ,가톨릭 나라들은 88 올림픽 참가르 거부하는 사태에 이르게 된다. 세월호, 광우병, 농민들의 삶에 신경쓰면서,가난하고, 고달픈 이들을 위해서 살아온 함세웅 신부는 1942년에 태어났으며, 1974년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 을 만들어서, 50년째 이어나가고 있다.

2016년 9월 25일,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이 생각난다.그는 물대포에 사망하였고, 천주교 신자였다. 대한민국은 광복 이래 ,독재자들이 휘두르는 권력의 힘에 굴복하였고, 정의가 실종된 상태에서, 고문이 자행되고 있었다. 특히 1970년 사망한 전태일 열사의 분신 은 , 함세웅 신부가 정의사제구현단을 만든 이유였다. 오원춘 사건은 함세웅 신부가 두번째 투옥하였고, 항상 날카로운 시선과 따스한 눈빛으로 세상을 바로 보고자 하였다. 'YH 노동자들의 신민당사 농성 사건' 뿐만 아니라,대한민국에서, 농민으로 살다가 도시에 정착하여,방직 공장 노동자들이 죽어가는 상황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더군다나 ,유신 헌법으로 인해 박정희 정권의 독재가 연장되면서,우리 사회를 구원하는 길은 정의를 바로 잡는 것이라고 보고 있었다.

함세웅 신부의 삶에 있어서, 하나님의 믿음을 실천하고, 사상과 종교에 구애되지 않으면서, 올바른 길을 걸어가고자 하였던 함세웅 신부는 자신의 삶의 모든 것을 다바쳤으며, 천주교 신부들의 삶의 귀감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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