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겨울나그네 2
최인호 지음 / 열림원 / 2023년 12월
평점 :

현태가 눈을 활짝 뜨고 코미디언처럼 낯을 찡그렸다.
"오 안 됩니까? 이러지 마세요. 군대 다녀온 졸업반 학생입니다. 예전 같으면 장가가서 손자 볼 나이입니다.헛허허."
현태는 명랑한 표정으로 제풀에 말하고 제풀에 웃었다. (-11-)
민우가 비로소 가슴을 펴고 산신히 대답했다.
"우리 같은 학생에게는 과분한 옷들이에요.난 알아요. 이 근처에 엄마의 가게가 있거든요. 그래서 고등학교 시절부터 이 근처를 오갈 때마다 수없이 쇼윈도 안을 들여다보면서 생각했다구요. 이 옷을 입어보면 어떨까. 저 옷을 입어보면 어떨까. 상상으로 쇼윈도마다 걸려있는 옷들을 입어보는 일이 얼마나 근사하고 즐거운지 알아요?" (-70-)
"당신의 아이예요.미안해요.당신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아이를 낳아서요.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어요. 당신은 어느 날 밤 갑자기 없어져 내 곁을 떠났구. 누구에게 의논할 수도 없었어요. 사실 당신이 떠날 때 나는 이미 배가 불러 있었어요. 당신이 떠나자마자 배는 점점 더 불러왔어요.난 무서웠어요.누구 의논 할 사람도 없었어요. 로라 언니가 아이를 낳으라고 했어요.하지만 난 아이를 낳고 싶지 않았어요. 당신이 다시는 내 곁으로 찾아오지 않를 거라고 믿었으니까요. 난 아빠 없는 아이를 정말 낳고 싶지 않았다구요. 그렇게 되면 난 팔자 조지게 되니까요."
은영은 하고 싶은 말을 단숨에 해야겠다는 듯 종알거렸다. (-152-)
지난 봄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다혜는 잡지사에 기자로 취직했다. 그녀는 자신의 일을 몹시 즐기는 모양이었다. 사람을 만나는 일이 몹시 서툰 그녀였지만 신문이나 잡지에서 이름이나 보던 사람들을 직접 만나서 원고를 청탁하고 얘기를 나누고 사진을 찍는 일이 재미있다고 말했다.
아주 바쁜 잡지 마감일 때만 빼놓고 두 사람은 자주자주 만났다. (-268-)
"저는 초청이 됐지만 아이는 아직 초청할 수 없다는 거예요. 제가 일단 들어간 다음에 다시 제 아이를 초청해 데려가야죠. 그런데 제가 초청할 때까지 그 아이를 어디에다 맡겨둘 데가 있어야죠. 고아원에다 맡길 수도 없고, 그 이의 이모는 그 거리를 떠났어요.미국에 있는 딸의 초청을 받아서 떠나버렸어요. 그 여잔 제 남편을 죽였어요. 그 여자가 죽인 것과 마찬가지예요. 그 여자는 쌍년이에요."
여자는 옛 생각을 하니 흥분이 되는지 목소리를 높였다. (-301-)
최인호 작가(1945~2013) 가 쓴 소설 『겨울나그네』는 1984년 동아일보에 1년 동안 연재되었고, 1990년 드라마로 14부작으로 제작되었다. 2030 세대가 이 소설 『겨울나그네』을 읽는다면, 드라마 『겨울나그네』 를 본다면, 그 당시의 정서를 이해하기 힘들다. 인정이 있었던 그 당시에는, 하숙집 월세가 밀려도, 그냥 넘어가는 분위기였으며, 성희롱이 난무하였건만,그것이 허용되던 시기다.
소설 『 겨울나그네2 』에는 본과 3학년 의대생 한민우와 불문과 3학년 정다혜가 주인공이다. 순수했고,쑥맥이었던 , 한민우와 정다혜는 운명과 같은 상황을 맞이하고 말았다. 자전거를 타다가 정다혜와 부딪쳤고,정다혜는 자신의 수첩과 다이어리를 대학교 교내에 흘리고 말았다. 사랑에 대한 열병을 깊이 품고 있었던 쑥맥 한민우는 직접 정다혜가 다니는 교실을 찾고 마는데,집주소, 집 전화번호까지 알아내고 만다.
고아나 다름 없이 살았던 한민우는 미래가 보장되어 있는 본과 의대생이었다. 양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을 수도 있었고,의대생이 될 수 도 있었다.그러나 운명의 장난이라 하였던가, 정다혜와 사랑의 인연으로 연결되면서, 사업도, 의사의 길을 가는 것도 놓치고 말았다. 다혜는 불문과를 졸업하고, 잡지사에 취업하게 되는데, 자신의 적성과 맞았다.
한민우의 양아버지가 쓰러지고, 한민우는 자신의 과거 속 어머니와 숨어 있는 이모(로라 언니) 의 이름까지 알게 되었다.기지촌 갈보(?) 라고 불렸던 이모 김영숙의 정체, 기지촌에서 만난 빨간머리 제니 정은영과 만났으며, 방황하였던 한민우는 다혜대신 제니와 함께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자신의 삶이 사랑이라는 도구로 인해, 희극적인 삶이, 비극적인 삶으로 전환되고 있었으며, 한민우의 유일한 친구 경영학과 3학년 박현태는 민우와 정다혜의 오작교 역할을 청산하고, 자혜와 함께 사랑에 깊이 개입하고 말았다.
컴퓨터, 스마트 폰이 없었던 그 당시 사회적 분위기를 『겨울나그네 2』를 그대로 나타내고 있으며, 손가락으로 직접 돌려서 거는 유선 전화,공중전화가 있어쓰며, 등기속달로 보내던 사랑 편지, 어머니 김향숙의 정체 뿐만 아니라, 기지촌 포주이자, 이모로 등장하고 있는 김영숙까지,,양장점,양화점, 타자기, 적산가옥이 있었던 그 당시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부족했던 삶이지만, 우아하고,교양 있었으며, 순수했던 한국인의 과거를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