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에 다가가기 - 우정과 상실 그리고 삶에 관한 이야기
후아 쉬 지음, 정미나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당시 미국인들에게 대만은 잘 알려지지 않은 나라였다. 대만을 안다고 해도 중국과 일본 근처의 외진 섬나라에, 값싼 플라스틱 제품을 만들어 수출하는 국가라고만 알 뿐이었다. 어머니가 어렸을 때 어머니의 아버지는 가족이 모여 식사하는 주방에 칠판을 세워 놓고 매일 새로운 영어 단어를 하나씩 적었다. 할아버지는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의학 공부를 접고 공무원이 되었다. (-22-)

우리는 소소한 악행을 좀 벌이기도 했다. 켄과 도서관에서 공부할 때, 여러 아시아계 남학생과 여학생이 서로 작업을 거는 구역의 중간 자리에 앉는 식으로, 그 애들은 자신이 아시안이라는 것에 과도한 자부심을 내세워 우리와는 잘 맞지 않았다. 우리는 소리 내지 않고 드럼 두드리는 흉내를 내기고 하고, 곰 모양 젤리 봉투를 이리저리 미끄러 뜨리기도 하면서 포복절도 했다. 우리의 머리 위쪽에는 어떤 백인 할아버지가 그려진 명판이 있었다. 그 할아버지 밑으로는 그 분을 기리며 이름 붙여진 무슨무슨 상의 수상자 명단이 쭉 나열되어 있었다. (-88-)

모스는 오지 못한 미래를 투영하며 "전쟁이 일어나지 않아" 동료 학자들이 계속 살아 있고 함께 연구를 벌였다면 "어떤 미래가 펼쳐졌을지"를 상상했다. "겔리는 미학 분야의 대가가 되고 앙드레 뒤르켐은 언어학자가 되었을 거라고 상상해 보자." 하지만 현실에서 이들의 이름은 이후 수 세대의 학생들에게 무명으로 남겨진다. 모스는 이 인물들을 사상가로서 알아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일어날 수 있었던 가능성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고. (-156-)

하지만 그날의 우리는 삶,죽음, 지옥 같은 문제가 떠오르는 게 싫었다. 1998년 9월 2일, 정오 무렵.우리 모두 그냥 스프라울 광장에 앉아 아주 독실하신 개자식들이 우리가 지옥에 갈거라고 떠드는 소릴 듣고 있었다. 그웬이 듣다 못해 말다툼을 벌였다. 힘든 시간이었다.

그해 가을, 학교에서는 켄의 친구들을 쭉 추려내 상담을 권하는 이메일을 보냈다. 나에겐 심리 치료가 별스럽고 사치스럽게 느껴졌다. (-214-)

당시에 스스로에게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었던 나는 심리상담사가 일조의 편집자 역할을 해주며 그 멜로 드라마를 적절한 톤으로 조정하게 도와줄 거라고 생각했다. 상담일 날, 보건 센터 건물의 작은 사무실로 안내받아 들어갔다. 옅은 회색 책상에 한 여성이 앉아 있었다. 그녀의 뒤쪽 책장에는 편안한 느낌을 주려고 공들여 배치한 진단 매뉴얼, 자잘한 장신구, 식물 등이 있었다. (-264-)

아시아인이 미국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미국인이 아시아에 사는 것과 다른 입장에 놓여지게 된다. 미국인은 대우 받으며 아시아 사회에 적응하게 되고, 적합한 대우를 받고, 자신이 해야 할 일과 역할을 부여 받게 된다. 직업을 얻게 되고, 경제적 자유와 사회적 역할 가지 보장 받을 수 있다. 반면 아시아인이 미국에 들어가게 되면, 입장이 달라질 수 있다. 일단 미국 사회에 적응해야 하고, 자신의 직업을 선택해야 한다. 미국 사회가 변할 때, 아시아인의 일자리에 위협이 될 수 있다. 특히 대만계 아시아인의 경우, 더욱 위험한 상황에 놓여지게 된다.

작가 후아 쉬는 아시아계 대만인이자 미국 사회에 정착한 엘리트다. 1977년 미국 일리노이주 어 배너 샘페인에서 태어났으며, 할아버지가 미국에 이민을 온 후 ,의살르 꿈꾸었지만,전쟁으로 인해 공무원이 된다. 이후 후아쉬가 태어났으며, 미국 사회에 적응할 수 있었다. 소수자로서,아시아인이 처한 현실은 백인들과 섞여서 어울리지 못하고, 아시아계끼리 모여서 소통하게 된다는 것이다. 작가 후아 쉬 에게 켄은 둘 도 없는 단짝이다.

친구란 우정과 상실이 교차된다. 사로 선행과 악행을 할 때,우정스러운 비밀도 서로 공유할 수 있다. 후아 쉬와 켄의 우정은 1998년까지 이어지게 된다. 그러나 미국 사회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친구 켄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학교에서, 켄의 친구들은 심리적 트라우마에 시달리게 되고, 학교에서 시행하는 심리치료를 받아야 한다. 이 상황에서, 후아 쉬가 느낀 생각과 사유, 우정에 대해서,인식과 자각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이 2022년 전미도서비평가 회고록 부문, 2023년 퓰리처상 전기 회고록 부문에서 최종 수상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정과 상실, 서로 만날 수 없어서,느끼게 되는 감정의 변화, 서로 같은 것을 공유하였던 내 벗이 없어서,느끼게 되는 슬픔과 우울을 느낄 수 있다. 아픔과 고통이 작가 후아 쉬를 성장하게 해 주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