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식사합시다
이광재 지음 / 시공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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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초에 나는 이데올로기를 믿지 않았다.나에게 신념이 있다면 '나는 오류를 갖고 있다' 는 사실을 믿는 신념뿐이었다. 지금도 나는 '틀릴 수 있다'는 점을 돌아보려고 매 순간 노력한다. 개인 뿐 아니라 국가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 모든 존재는 장점과 단점을 함께 지닌다. 장점은 살리고 단점을 극복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진화' 다. (-26-)

노대통령은 가끔 자극적인 음식을 찾았다."도리뱅뱅이가 먹고 싶은데..."하면서 소년 같은 미소를 지을 때가 있었다.노 대통령이 국회의원이던 시절에 강원도 정선에 함께 출장을 갔던 적이 있다. 도리뱅뱅이를 그때 처음 드셨는데, 맛을 잊지 못하셨던 것 같다. (-93-)

어머니는 커다란 무쇠솥에 미역을 넣고 달달 볶은 다음 물을 부어 끓였다. 소고기, 새우, 홍합, 들깨 같은 부재료를 일절 넣지 않았다.그냥 미역만 넣고 푹 끓였다. 그래도 미역이라는 식품은 대단하다. 미역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한 끼 국거리가 된다. 끓이면 끓일수록 푸근하고, 고소하면서 특유의 단맛이 난다. (-163-)

빗소리 들으며 대합탕에 소주 한잔은 그야마로 환상의 조합이다. 노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에 비서진 몇십 며을 데리고 가셨던 적이 있다. 몇 번 낙선하면서 보좌관 한 두 명 데리고 쓸쓸히 찾아오던 정치인이 어느 날 대통령이 되어 나타나자 주인장도 크게 감동하는 모습이었다. 그 포장마차는 근처에 번듯안 점포를 구해 2023년 현재도 영업중이다. 가끔 찾아간다. 대합타을 주문한다. 마주 앉았던 사람의 자리에 빈 술잔을 놓는다. (-222-)

열무김치를 잘 만드는 반찬 가운데 하나다. 열무김치를 잘못 담그면 김치에서 풋내가 난다.풋내가 나지 않도록 담그는 것 하나만으로 "열무김치 잘 담근다" 라는 말을 듣는다. 풋내가 나지 않게 하려면 무엇보다 풋내가 나는 이유를 알아야 하다.열무에서 풋내가 나는 이유는 이파리가 상처 입을 때 쏟아내는 휘발성 물질 때문이다. 식물을 꺾으면 특정한 향을 쏟아낸다. 그것은 '나를 꺾지 마세요.' 라는 경고의 뜻이자 다른 식물들에게 '너는 더 강해지라'고 남기는 유언(?)이기도 할 것이다. 열무는 다른 채소보다 휘발성 물질을 많이 쏟아내는 식물이다. (-285-)

관념은 인간을 너무 들뜨게 하거나 자기 운명을 스스로 망치게만든다. 20세기 역사가 그것을 또렷이 보여준다. 사회주의에 들떴던 사람들도 문제지만 20세기를 고스란히 '자본주의의 승리의 역사'라고만 바라보는 사람도 그에 못지 않게 선택적 기억을 일삼는 사람들이다. (-304-)

노무현의 국회 보좌관으로 정게에 입문하여, 3선 국회의원이 된 이광재는 강원도지사까지 역임하게 된다. 그를 노무현의 남자라고 말하기도 하는 이유다. 정치 에세이 『같이 식사합시다』에는 정치와 음식, 요리와 우리의 일상을 함께 언급하고 있었으며,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가 곳곳에 스며들고 있었다. 그는 책의 첫머리에 자신의 아들 이야기를 말하고 있다. 아들이 5.18에 대해 공감하고 이해하는 것은 , 아빠가 6.25를 바라보는 것만큼 와닿거나 느낌이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념, 이데올로기에 빠져 있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아들이 던진 화두는 세대별 정치에 대해 바라보는 시선이 다름을 말해주고 있다.

지역주의 타파, 사회적 영극화를 해결하려고 부단히 노력했던 노무현 대통령, 선거 낙선과 당선을 눈으로 직접 보았던 이가 이광재였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도 고인이 되신 그 분에 대한 슬픔과 추억이 존재한다. 사회를 바꾸고,스스로 자신을 바꾸기 위해 애썼던 그의 앞서 나가는 정치적 비전이 빛을 발했던 시기가 2014년 세월호 참사 때였다. 재난에 대해서, 컨트롤 타워를 세워야 한다는 노무현 대통령이 꿈꾸었던 재남 시스템이 완벽하게 구축되지 못한 상태에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지원 시스템도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일하는 이들이 언제라도 해고되거나 이직을 하더라도, 완벽하게 인수인계가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함이다.그것이 노무현 대통령이 보여준 국정운영 방식이며, 정치 철학이다. 국회의원 선거때 번번히 낙선의 고배를 마실 때, 이광재와 함께 술잔을 기울였을 것이다. 정치인으로서 잘 나가지 못할 때나, 잘 나갈 때나 한결같은 모습,그것이 사람에게 신뢰와 믿음을 보여주는 기본이라는 걸 일깨워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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