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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현대미술 - 진짜 예술가와 가짜 가치들
뱅자맹 올리벤느 지음, 김정인 옮김 / 크루 / 2023년 11월
평점 :



모방은 [세계를 재현한다는 것은]어릴 때부터 인간의 본성에 내재한 것이다.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별해 주는 점 가운데 하나는 인간이 가장 모방을 잘한다는 점이다. 인간은 처음에 모방을 통해 지식을 습득하며, 모방된 것을 통해 즐거움을 느낀다.
그 증거는 예술 작품에서 찾을 수 있다. 보기 흉한 동물이나 시신처럼 직접 보면 불쾌한 대상이라도, 그것들을 정확히 표현한 작품을 감상할 때 우리는 즐거움을 느낀다. (-27-)
배운다는 것은 철학자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더없이 즐거운 일이며...
실제로 우리가 재현된 것을 보며 즐거움을 느끼는 것은, 그것이 재현하는 대상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고, 추론하기 때문이다... 만약 그것이 재현하는 대상을 전혀 본 적이 없다면,우리는 기교나 색채, 그 밖에 이와 유사한 다른 원인에서 즐거움을 느낄 것이다. (-28-)
각각의 아방가르드마다 전시실을 만들어 현대미술관을 지을 수도 있으리라.이 계획은 실제로 1929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 을 설립할 때,정확히는 1차 세계대전 이후 채택되었다.이 관점에 따르면 미술사는 한 방향을 향해 나아가며,그 흐름은 계속 이어지는 아방가르드의 물결로 나타난다.
이런 방식으로 미술사를 제시하면 예술가들은 사라지고 그들이 속한 유파만 남는다. 물론 우리 미술사학자들께 이는 별문제가 아니었다. (-41-)
이제 피카소로 가보자. 현대미술의 지지자들은 피카소를 변명거리로 자주 사용한다. 단연코 20세기 가장 중주요한 예술가이자 천재였던 그가 기존 미술을 해체하고 아름다움이란 개념을 몰아내는 데 평생을 바쳤단 사실은, 미술과 역사의 흐름이 곧 전복과 자기파괴, 아름다움의 종말로 이어진다는 뜻 아닌가? 하지만 이런 생각은 피카소가 1973년 생을 마감할 때까지 화가로 남아 있었단 사실. 결코 추상화를 그리지 않았단 사실을 망각한 결과다. (-63-)
이처럼 프랑스의 예술은 사프랑에서 세슈레까지, 그리고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계속 이어져 왔다.이 예술가들은 서로를 알아보고 찬미했으며, 앞서 언급한 증인들 역시 그러했다. 이들의 비밀스러움과 은밀함은 어떤 면에선 그들 각자가 세속적 삶이나 경력과 무관하게 자신만의 작품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됐을 것이다. 어쩌면 나는 그들을 자신과 관계없는 싸움에 끌어들이고, 그들의 예술에 이목을 집중시켜 해를 끼치는 것일지 모른다. (-117-)
인류와 역사의 큰 물줄기 안에는 항상 예술이 있었다. 인간의 본성에 가장 가까운 흔적이며, 인간의 삶이 유한하기에 예술에 더 집착하게 된다. 고대부터 지금까지 예술의 형태는 유채화로 그려내는 화가의 모습이었다.21세기 현대 미술은 NFT라는 새로운 형태의 디지털 예술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소위 화가들이 자신이 그린 그림들을 전부 불태워 버리고, NFT에 영원히 보관하려는 예술적 실험을 시작하고 있다.예술가들의 생존하기 위한 몸부림이다.
예술의 주 목적은 가치에 있다.오로지 나 혼자 만족하기 위해서 예술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가짜와 진자를 명확하게 구분짓는다. 고흐는 생전 불행한 삶을 살아왔지만, 그가 남겨 놓은 정물화 초상화는 지금까지 그가 살아온 인생을 전세계에 널리 퍼트리게 된 긍정적인 효과를 홀로 독점할 수 있었다. 1973년에 사망한 피카소의 작품은 아름다움에 대한 파괴에 있다.해체하고,재조립하여, 나만의 예술세계를 만들어 낸 피카소의 예술은 아름다움에 대한 자기파괴였으며, 현대인이 안고 있는 불해의 씨앗은 어디에서 시작되는지 확인시켜 주고자 하였다. 결국 예술적 가치에 대해 말하고자 할 대,예술가는 영원히 고독과 외로움과 싸워야 했다. 그들만의 세계는 오로지 그림 속에 녹여 내리고 있었다. 예술은 영원하지만,예술가는 가난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그러하기에 영원히 그려야 했고,모방하고,배우고, 학습하면서,나만의 예술적 세계를 구축하는데 올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