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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것들, 소설 ㅣ 내가 좋아하는 것들 11
김슬기 지음 / 스토리닷 / 2023년 10월
평점 :
'쓰는 인간.' 명함 200장은 이틀 만에 배송됐지만, 명함을 쓸 일은 좀처럼 찾아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나를 소개할 자리가 생겼다. 나는 신이 나서 가방에서 명함 하나를 꺼내 상대에게 건넸다. 중년의 남성은 안경을 고쳐 쓰며 흥미롭다는 듯 얘기했다."쓰는 인간이라. 요즘 젊은이답네요." 글을 쓰면 요즘 젊은이다워지는 것일까.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한 번 사는 인생 다 쓰고 가야지요.돈도, 시간도."그의 감상평을 듣고 나서야 이해가 되었다. 쓴다는 건 그랗게 읽히는 게 먼저일 수 있겠구나. 짧은 해명을 해야 했다."저는 글을 씁니다. 글 쓰는 인간이에요." (-22-)
박상영 작가의 《1차원이 되고 싶어》 에서 '윤도'의 이름을 외치지 못하는 '나'의 뒷모습을 목격한다. 타인에게 들켜서는 안 될 비밀스러운 관계,숨을 쉬기 힘들 정도의 답답한 내면을 들여다본다. 서정원 작가의 소설 《해변의 밤》 의 비뚤어진 애정과 의심의 마음, 부서지는 '나'의 마음을 들여다본다. (-52-)
"나는 그렇게 생각해. 소설에는 내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거거든. 나와 성별도 나이도, 사느 곳도 혹은 살아가는 시대도 다른 소설 속 인물의 입을 빌려서, 내가 숨겨둔 비밀 이야기들을 죄다 털어놓을 수 있는 거야." (-111-)
길만 걸어도 '내가 소설가요' 하는 아우라를 !뿜는 작가가 되고 싶다. 우아하지만 ,차갑고 날카로운 분위기를 풍기는 그런 작가가 되고 싶다. 현실은 반대다. 나는 자꾸 둥글어진다. 배달 온지 꽤 시간이 지난 떡볶이의 미지근한 온도를 닮았다. 고고한 자기만의 세계를 가진 작가이고 싶은데, 자꾸 경계없이 쉬운 사람이 되는 것만 같다. 인사이 좋다며, 도를 아시냐고 물어오는 사람들이 길을 막아선다. (-143-)
여전히 나의 소설 쓰기는 난항을 겪고 있다. 욕망과 목표가 없고,. 그리하여 드라마틱한 변화를 겪지 못한 밋밋한 주인공들이 사는 세상을 그린 시답잖은 소설을 쓴다. 그러나 나는 계속 써보기로 한다. 소설을 쓰며 나는 매일 새로워지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것이 조금 더 분명해졌고, 좋고 싫음을 분명히 드러내는 것을 조금 덜 주저하게 됐다. 타인이 바라고 원하는 것, 그러나 거머쥐기 어려운 힘겨움을 이해하게 됐고, 그 모든 것들이 결국엔 잘 이뤄지길 진심으로 응원하게 됐다. 아주 느린 걸음으로 변화하고 있다. (-179-)
쓰는 사람 김슬기 작가의 에세이집 『내가 좋아하는 것들, 소설』이다. 이 에세이집은 여느 에세이집과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단순히 일상을 언급하는 생각의 에세이가 아닌 한사람의 정체성과 추구하는 욕구, 삶과 인생관이 느껴지는 에세이다. 누군가의 가치관, 인생관에 대해 우물 에 비춰진 물을 보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누군가의 내면을 깊이 들어다는 순간, 나 또한 감정이입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도 있다. 책에서, 소설 쓰기란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있으며, 소설가가 꿈꾸능 희망과 꿈에 대해서, 나만의 질문에 대해 해답을 얻는다.
김슬기 작가는 명함에 쓰는 인간이라고 적어 놓았다. 쓴다는 것은 중의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시간을 쓴다는 것이며, 글을 쓰는 것이다. 이 두가지 의미에 대해서, 각자 다르게 선택하고, 이해될 수 있다. 명함 하나로 , 누구와 만나느냐에 다라서, 새로운 관점과 새로운 착각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 우연이 필연적인 운명과 새로운 생각을 낳는다.
소설가가 품고 있는 꿈과 이상은 그런 것이다. 자신의 지명도를 스스로 높이는 것이다.나의 생각과 나의 가치관, 나에 대해서, 소설이라는 도구를 통해 말하고 싶어한다. 소설가에게 퇴고란 영원한 숙제이며, 마감 끝까지 퇴고한다. 단 한 번에 끝나느 것이 아닌, 끝날 때까지 끝난게 아나라는 걸 알 수 있다. 초고로 쓴 소설 한편을 묵혀 두었다가. 세월이 지나 다시 읽으면서, 묵혀둔 나의 이야기를 소설에서,다시 퇴고를 하여,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시간의 힘을 빌려서, 세월의 힘을 빌려서, 소설이 적제적소에 누군가에게 읽혀지기 위해서, 필요한 과정 중 하나였다. 완벽주의와 집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다. 그들의 직업병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작가에게 소설가에게 인고의 시간이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소설가의 힘은 문장력에 있지 않고, 궁둥이의 힘에 있으며, 끝까지 퇴고를 통해서, 누구에게나 읽혀질 수 있는 소설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 반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