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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시선 - 인류 최초의 창조 학교 바우하우스 이야기
김정운 지음, 윤광준 사진, 이진일 감수 / arte(아르테) / 2023년 6월
평점 :
애플은 마우스에서 한 발짝 더 나간다. 마우스를 손가락으로 바꿔버렸다. 컴퓨터와 인간을 대하는 인터페이스를 '터치 touch' 라는 감각적 경험으로 대체해 버린 것이다.촉각으로 일으키는 시각과 청각의 변화에 사람들은 열광했다.아이폰으로 시작된 스마트폰이다. 이 같은 '감각의 교차 편집' 을 처음 실험한 곳이 바로 바우하우스다.'색을 듣고, 소리를 보는' 것과 같은 실험을 반복했다. 바우하우스에서 시작된 감각의 창조적 실험은 스마트폰의 터치로 완성됐다. (-14-)
물론 데사우 바우하우스 본관의 압도적인 반면 유리 벽과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데사우의 바우하우스 풍광과 비교해보면 칸트 주차장의 형식과 내용이 바우하우스의 혁신적 시도를 그대로 흉내 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건물 외벽을 유리로 구현하는 것은 바우하우스 관련자들이 일관되게 추구한 지향점이었다. 유리 벽은 단순히 건축 기술의 혁신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164-)
1923년 그로피우스가 '예술과 기술의 통합' 을 바우하우스의 교육 목표로 정하기 전까지 '수공예와 예술의 통합'은 바우하우스의 암묵적 교육 지향점이었다. 그로피우스는 이 같은 교육 이념을 실현하디 위해 '형태 마이스터' 와 '기능 마이스터' 라고 불리는 두 종류의 마이스터가 동시에 학생들을 지도하도록 했다. (-257-)
이텐의 도발은 거셌다. 한마디로 '예술'을 할 것인가,'공장'을 할 것인가를 선택하라는 것이었다. 바우하우스의 설립 이념,즉 '모든 예술을 건축의 날개 아래에 통합하겠다' 라는 그로피우스의 비전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한마디로'실용적 예술'을 목적으로 하는 그로피우스의 설립 이념을 포기하고, 자기 예술관을 기초로 바우하우스를 새로 시작하자는 도발이었다. (-340-)
자연과 인간의 나체를 자유롭게 표현했던 '다리파'의 에른스트 키르히너는 베를린으로 옮겨 온 후,암울하기 짝이 없는 대도시에서 미래 없는 이들의 현실(예를 들면 매춘부들)을 날카로운 선과 거친 붓질로 표현했다. 키르히너 같은 독일 표현주의자들에게 대도시는 파리 인상주의의 대도시와는 정반대였다. (-459-)
플레밍은 '12시간 시스템'이 기차 시간표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피부로 깨달았다. 그는 기차 시간표에 '24시간 시스템' 을 도입할 것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그러나 기차 시간표를 24시간 시스템으로 통일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당시에는 국가마다 시간이 제각각이었기 때문이다. 한 국가 내에서도 지역마다 시간이 달랐다. 기차 승객은 출발하는 곳의 시간과 도착하는 곳의 시간을 일일이 계산하여 기차를 타야 했다. 1870년 경, 횡단 열차로 미국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역에 기차가 설 때마다 시간을 수십 번씩 새로 맞춰야 했다. (-628-)
다양한 방식으로 이어지던 '색의 해체'와 '형태의 해체'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독일의 바우하우스에서 집중적으로 시도됐다.색채의 해체에 몰두하던 표현주의자들과 형태의 해체에 몰두하던 구축주의자들이 바우하우스 선생으로 초빙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처럼 세상을 창조하는 일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서구 회화의 전통 내에서는 새로운 창조의 방법론을 도무지 찾아낼 수 없었다. 지친 화가들은 음악으로 눈을 돌렸다. 음악은 대상을 모방하지 않고도 자신들만의 세계를 아주 그럴듯하게 창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바흐는 음악의 구성 원리를 분명하게 보여줬다. 음악을 그림만큼이나 사랑했던 화가들은 바흐의 방법론을 차용하기 시작했다. (-746-)
2차원 회화의 유일한 존재 방식은 벽에 걸리는 것이다. 블라디미르 타틀린이나 카지미르 밀레비치가 1915년 미래주의 전시회에서 자기 작품을 전시장 모서리에 걸었던 것은 바로 2차원 회화의 한계를 분명히 하려는 시도였다. 사각형 프레임에 갇힌 회화는 벽에 걸리는 장식 이외에 또 다른 존재 방식을 찾기 어렵다. 1922년,베를린에서 전시된 이시츠키의 '프라운'은 2차원 회화를 극복한 새로운 예술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835-)
칸딘스키가 《청기사 연감》 을 출판한 것은 참으로 엄청난 기획이었다. 또 다른 협회를 만들어서 어떻게 하면 전시 기회나 얻어볼 까 하는 가난한 화가들의 천박한 현실을 바꾸겠다는 것은 칸딘스키가 의도한 《청기사 연감》 의 궁극적 목적이 아니었다. 그는 지금까지 아무도 건너지 못한 예술의 경계를 뛰어넘겠다고 선언하고 있다. 무엇보다 음악과 미술의 경계를 허무는 일부터 시작하겠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칸딘스키와 쇤베르크의 만남은 운명적이었다. (-930-)
나의 독서 편력에 있어서, 독일에 대한 지시과 교양은 독일에 대해 정통하였던 김정운 교수와 김누리 중앙대 교수였다. 김누리 교수는 독일의 68 혁명에 대해서,김정운 교수는 바우하우스에 대해서, 두 사람의 의도와 목적이 독일을 향하고 있으며,정치,경제,문화,역사에서 독일이 강한 나라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김저운 교수의 『창조적 시선』은 바우하우스에 대해서,말하고 있었다.바우하우스는 독일을 독일답게 해주는 단어였고,마이더스,장인정신과 비슷한 의미를 품고 있다. 김정운 교수의 책은 자유롭고,경계를 넘고 있다. 가수 조영남과 가까운 이유도, 두 사람의 성향이 극과 극을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책 『창조적 시선』을 쓴 이유는 ,창조의 근원은 편집에 있다고 말하기 위해, 애플 제품 매니아였던 김정운 교수가 삼성 이 애플의 미학적 가치르 다라가지 못하는 이유를 근거로,애플 제품 곳곳에 바우하우스 철학이 스며 있다고 보고 있다.
『창조적 시선』 바우하우스 철학을 차용하고 있으며, 그의 전작 『에디톨로지』의 확장판이라고 볼 수 있다.『창조적 시선』 은 1000페이지 두꺼운 책이다.그만큼 독일에 데해 분석했고,독일이 왜 유럽의 강대둑이 될 수 있었는지 말해주고 있었다. 영국의 표현주의, 프랑스의 인상주의를 보면서,독일이 선택한 것은 낭만주의다. 독일의 낭만주의는 경쟁자 영국과 프랑스르 의식한 것이며,강제적이면서,억지스러운 것이기도 하다.독일의 낭만누의는 억지스럽게 만들어진 예술적 가치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그것이 억지스럽다고 생각하지 않앗고, 필연적인 현상이라고 착각했다.바우하우스는 그만큼 독일적인 현상이자 철학이며,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바우하우스 철학을 애플 컴퓨터인 매킨토시와 아이폰에 적용하기 전까지 알 수 없었고,바우하우스 철학은 대중적이지 않았다. 한국 사회에서,바우하우스가 널리 확산된 것이 고무적인 현상이라고 볼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으며,김정운 교수의 전문가적 식견에 근거한 자료들이 언급되고 있다.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시작되었다. 러시아는 유럽과 아시아를 넘나드는 강대국이다. 책에는 독일의 바우하우스 뿐만 아니라 일본의 군국주의에 대해 소개하고 있었으며 ,일본이 러시아가 아닌 중국을 상대로 전쟁을 먼저 시작한 이유가 나온다.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러시아에 있음으로서,일본에겐 매우 위협적인 존재였고, 청일전쟁에 이어서,러일전쟁까지 이어진 이유다. 청일전쟁으로 일본이 막대한 배상금을 얻어낼 수 있었고,러일 전쟁으로 일본이 대동아공영권을 주장하면서, 육지로 진출하였던 이유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을 패전국가로 만들었던 강대국의 이해관계로 ,독일 스스로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졌고, 히틀러의 홀로코스트로 유럽 유대인을 절멸시킨 이유다. 특히 독일의 예술,기능주의가 바우하우스를 기초로 하고 있었으며,처음부터 예술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공장을 선택할 것인가, 예술을 선택할 것인가에 대해 치열한 논쟁 끝에 예술을 선택하였다. 우리가 강조하는 창조와 혁신은 100년의 역사에 불과하다. 2019년은 바우하우스 100주년이었으며, 20여년의 역사에 불과한, 전바우하우스가 왜 유럽사회의 지적인 자산,예술적 자산이 되며, 한국 사회서,바우하우스가 중요하게 다루어저야 하는 이유를 논하고 있다. 한국의 아파트 촌이 전국토로 확장된 이유,그 아파트 공화국에 새로운 변화를 주기 위해서,네덜란드 건축의 특징을 언급하면서,높은 고층 아파트가 아닌, 유럽 네덜란드가 추구하는 3~4층의 낮은 연립주택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새로운 형태의 주택을 만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