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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정치사상사 2 - 진한위진남북조 ㅣ 중국정치사상사 2
류쩌화 지음, 장현근 옮김 / 글항아리 / 2019년 2월
평점 :
하나는 권력욕이다.이는 또 종과 횡 두 방면에서 나타난다. 횡이란 공간을 가리킨다. 무릇 인적이 닿는 곳,일월이 비추는 곳이면 어디든 군주가 그 위에 군림해야 한다. 선진의 제자백가가 고취했던 왕천하론을 그는 다 실천에 옮겼다. 이를 위해 그는 사이四夷에 일련의 전쟁을 일으켰으며 어떤 대가도 아까워하지 않았다. (-20-)
다른 하나는 심한 사치와 극단적 욕망이다.천하의 신민, 토지가 모두 황제의 소유에 속하니 그는 자연히 일체를 사용할 권한이 있으며 갖은 향락을 즐길 수 있다.진시황이 역사상 가장 사치스러운 제왕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여기서 논하지 않겠다. 다만 그의 물 쓰듯 한 낭비가 제국을 유지할 수 없게 만들었다는 점 만은 확실히 전형적이라고 할 만하다. (-21-)
한 漢 제국은 몇십년의 발전을 거쳐 중앙 집권적 군주 전제 정치를 날로 공고히 했다. 그런데 정치에 대한 인식 수주에선 오히려 이런 체제에 맞지 않는, 예컨데 도가의 황로 무위 사상 등과 같은 현상이 존재하고 있었다. 군주 전제하의 통치자에게 있어 정치적 실천은 그에 상응하는 이론 지침을 필요로 한다. (-152-)
그는 말한다. "인의에 근본을 두고, 현덕을 포상하며, 선을 권하고 포악을 벌하는 것은 오제, 삼왕이 그로 말미암아 번창한 바다." 그는 특히 덕치의 기능을 중시하여 "세상을 떠받치고 백성을 이끄는 데 덕보다 좋은 것이 없다" 고 말한다. 덕치의 주지는"예로 천을 섬기고 의로 몸을 세우며, 효로 부모를 섬기고, 인으로 백성을 기르는" 것이다. 그는 인의도덕의 선양을 통해 "인민을 예로 이끌고 ,악으로 바람을 일으켜" 백성에게 "인이 행해져 선을 따르고, 의가 세워져 풍속이 바뀌도록 함으로써 안정된 통치 질서를 이루려는 구상을 했다. (-240-)
"천자가 명당을 세우는 것은 그로써 신령에 통하고 , 천지에 감응하고, 사시를 바르게 하고,교화를 내리고, 덕이 있는 사람을 으뜸으로 삼고, 도가 있는 사람을 중시하고, 유능한 사람을 드러나게 하고, 실천한 사람을 포상하려는 까닭이다.명당은 위를 둥글게 하고 아래를 각이 지도록 하며,여덟 개의 창문과 네 개의 문을 단다. 정치를 행하는 궁전은 국도의 남쪽에 둔다. 위가 둥근 것은 하늘을 본받음이요, 아래가 각진 것은 땅을 본받음이다. 여덟개의 창은 팔풍을 닮음이요, 네 개의 문은 사시를 본받음이다. 9궁은 9주를 본받음이요, 12좌는 12월을 본받음이다. 36호는 36 우를 본받음이요, 72 유는 72풍을 본받음이다." (-327-)
군주는 곧 신이라는 정치 관념은 제왕 권위를 신비화했을 뿐만 아니라 신비주의를 현실화했다. 신화 칭호가 관념상 제왕을 신명으로 받듦으로써 군주는 전체 사회집단과 한 걸음 더 사이가 멀어지게 되었고, 군주와 군권은 사람들이 발밑에 굻어 공손히 절하는 대상이 되었다.중국 고대 군권 숭배는 처음부터 일종의 신비주의적 신앙, 즉 군주는 신성한 몸이라는 데서 출발했다. (-468-)
전하의 통치자들 또한 다른 통치자들과 마찬가지로 일단 최고 권력을 장악하고는 온 정성을 다하여 권력의 영원함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전환했다. 전한 후기 사면에 위기가 고조되자 한 왕실의 운명이 어떻게 될까에 대해 사람들의 마음속에 거대한 의문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천명, 혁명, 영명, 갱명에 관한 토론들은 바로 이러한 의문이 사람들의 인식 속에 반영된 것이다. (-553-)
여기서는 물가와 소, 말, 풀벌레 등의 재앙과 관련 있는 예언 몇가지를 예로 들어 그 황당무계함을 보자.
"정월에 월식이 있으면 신분이 천한 사람이 병이 생기니 쌀 2000석을 사들여야 한다. 2월에 월식이 있으면 신분이 귀한 사람이 병이 생기니 쌀 3000석을 사들여야 한다. 3월에 월식이 있으면 군주가 거기에 해당되므로 쌀 4000석을 사들여야 한다."
"달이 방성房星 에 침범하면 네발 달린 벌레가 많이 죽는데, 그 기한이 1년을 넘지 않는다."
"달이 견우성을 침범하면 장군이 도주하고 천하의 소가 많이 죽는다."
"달무리가 각 성과 항성 주위에 퍼지면 동물이 많이 죽는다." (-632-)
한나라 말 당인들의 청의는 시기적으로 그다지 오래가지 못했지만 정치사상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들의 풍설품평과 시대 인물들의 경학적 성취 및 유적한 행위, 그리고 논의의 핵심은 곧바로 집권세력을 겨냥했다.그들은 군주에게 감히 직언으로 간했으며, 조정 권력을 장악한 기득권 이익 집단과 날카롭게 맞서 "공적인 것을 받들어 굽히지 않았으며 악을 원수처럼 미워했다." 정치에 간여하는 사대부들의 대표가 된 그들의 의지와 담력은 역사상 가장 우수한 측면을 보여주었다. (-744-)
시대의 변화에 따라 정치를 해야 한다는 이와 같은 개혁관념은 생기와 활력이 부족한 당시 정치에 대한 최식의 강렬한 불만과 정치 개혁 실행을 향한 소망을 반영하고 있다. 그는 요, 순과 문, 무의 도에 관한 공리 공담에 반대하고 현실 정치에서 출발하여 실제 상황에 근거하여 모든 정책이 결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치의 변화에 맞춘 조정과 개선의 요구는 매우 실질적인 태도다. (-835-)
사람은 성정에 따라서도 열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굳센 사람, 유순한 사람, 성급한 사람, 신중한 사람, 강경한 센 사람, 변론에 능한 사람, 융통성이 큰 사람, 고지식한 사람, 활동적인 사람,조용한 사람, 드러내는 사람, 감추는 사람이다.이 열 두 부류 사람들의 성정은 모두 장단점이 있다. 유소는 말한다."올곧고 굳센 사람의 자질은 그릇된 것을 바로잡는 데 있으나 문제점은 과격하게 들추는데 있다.유순하고 편안한 사람은 관용을 베푼다는 장점이 있으나 문제점은 결단력이 부족한 데 있다. 성급하고 강건한 사람은 맡은 일에 대담하고 열렬하나 문제점은 금기를 자주 범하는 데 있다. 면밀하고 신중한 사람은 장점은 공손한 데 있으나 문제점은 의심이 많은 데 있다. 강경하고 모범적인 사람은 핵심 요직에 쓸 수 있으나 문제점은 너무 고집스러운데 있다. 변론을 잘하고 이치에 밝은 사람은 맺힌 문제를 풀어내는 능력이 있으나 문제접은 방탕에 빠지는 데 있다. 두루두루 융통성이 넓은 사람은 널리 관대함을 베푸나 문제점은 혼탁해지기 쉬운데 있다.청렴하고 고지식한 사람은 검소하고 절개가 있으나 문제점은 상황에 구애받는데 있다. 활동적이고 당당한 사람은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업무에 적합하나 문제점은 대충대충 건너뛰는 데 있다. 조용하고 기밀한 사람은 아주 작은 부분까지 면밀하게 살피나 문제점은 너무 느리다는 데 있다. 모든 것을 다 드러내는 사람은 마음 바탕이 참된 사람이나 문제점은 미세하지 못하다는 데 있다. 지모가 많아 잘 감추는 사람은 권모와 계략에 능하나 문제점은 피해 달아난다는 데 있다." 사람의 성정에 대한 유소의 분석은 대단히 깊이 있고 세밀하다. 그는 각각의 장단점을 제기하면서 사람을 임용할 때는 장점을 취하고 단점을 보완하라고 주문한다."사람들의 단점을 지적함으로써 문제점을 보완해야 한다." (-948-)
언어는 실재하는 것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지만, 필연이 반드시 실재 진상에 관한 소식을 전달하는 것은 아니라고 곽상은 생각했다."만물의 존재는 자연적이며,이치는 지극한 것이다.순환을 하며 앞으로 나아가니 그윽하게 저절로 합치하며 바로 되는 것이 아니다. 다라서 그것에 대해 말하는 것은 허무맹랑하며, 그것에 대해 듣는 것은 의혹 불명이다.황제가 되돌아온다 하더라도 만물이 존재할 수 없도록 할 수 없으므로 의혹 불명의 지경이다.. 세계의 존재 상태는 본래 언어로 묘사할 수 없는 것이다.그런데 사람들은 말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로부터 미혹과 혼란이 생겨난다. 언어에 대한 곽상의 견해는 곧 명교에 대한 견해이기도 하다. (-1034-)
불교는 "나라에 들어와서 나라를 파괴하고," "집안에 들어와서 집안을 파괴하고." "몸에 들어와서 몸을 파괴한다." 이 또한 군권, 부권에 대한 불교의 영향을 두고 한 말이다. 불교와 군권과의 모순 가운데 비교적 뚜렷한 예는 동진 시기에 '사문불경왕자' 론이 불러일으킨 논쟁이다. 중국에서 불교가 발전하려면 이런 문제들이 반드시 해결되어야 했다. 불교도들은 불교가 본질적으로 명교와 모순되지 않으며 오히려 거꾸로 국왕과의 교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1146-)
4대 문명의 발상지인 황허가 있는 중국 문명은 하나라, 상나라, 기나라, 주나라 로 이어진다. 고대 중국 최초의 나라 하나라는 언어가 발당하지 않았고,기록으로 현존하지 않는다. 단 , 상나라 이후 중국의 역사적 기록이 현존하고 있으며, 중극으이 청지사상사의 출발은 상나라로부터 시작한다.
춘추전국 시대(춘추전국 시대(春秋戰國時代, 기원전 770년 ~ 기원전 221년)를 지나, 진나라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하였고, 백성들은 잠시 동안 평화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중국의 진시황은 법가사상을 받아들여서,중국 통일에 앞장섰으며, 중국 최초의 통일왕조를 형성했다.법가사상은 형벌로 다스렸지만, 사치와 방탕, 욕망으로 진나라는 곧 멸명하였다. 진나라는 나라을 통일할 수 있는 힘은 있었지만,진나라를 유지할 수 있는 정치 사상이 없었다. 형벌로 백성을 다스렸던 진나라 진(秦) (기원전 221년 - 기원전 207년)은 기원전 207년 멸망하고, 진나라는 사라졌지만,진나라가 추구하였던 정치사상, 법가사상은 이어질 수 있었다.
중국이 중심이 된 동양사상을 알기 위해서,사서오경을 배운다. 명당에 대해서 배우고,주역을 배운 이유는 지적인 향유가 아니었다. 충과 효,인,의, 예,지 신, 예,악을 만든 이유는 중국의 황제에 해당하는 천자가 백성들의 기대를 충족하기 위해서였으며, 우리가 생각하는 아버지,어머니의 개념도 다른 특징응 확인케 한다. 공자의 논어가 지금까지 정치 사상으로서 이어질 수 있었던 이유는 중국 사회의 질서를 덕치와 인치에 의한 , 인의에지에 초점을 맞춰 나가면서, 태평성대를 만들기 위해서다. 나라가 지속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힘과 정치, 그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하나의 구심점이었다.천자는 나라의 질서를 만들어야 했다. 그리고 나라의 성장을 꾀하고 있었다.
대한민국은 중국을 사대했다. 삼국시대 이후 지금까지 중국과 밀접한 관계를 형성했고, 역사,문화,청치에 중국과 엮일 수 밖에 없었다. 지금 상식으로 볼 때, 명청 교체기에 조선이 명나라를 취하고, 청나라를 적대하였던 이유에 대해 지금의 관점으로 어이가 없는 일일 수 있지만, 류쩌화 『중국 정치사상사2』 를 읽는다면,그럴 수 밖에 없었다는 걸 알 수 있다. 결국 중국의 사상 대부분은 춘추전국 시대에 형성되었고,지금까지 중국과 동양인에게 옳고 그름의 기준이 되어왔다. 동양 사상이 서양의 그리스 철학과 대조적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지리적 환경과 역사적으로 이어진 전쟁과 외세의 침략으로 인해 ,기존의 사상에 새로운 사상으로 대체되는 과정에서, 살아남은 사상이 지금까지 중국의 역사의 큰 물줄이에 속해 있었기 때문이다. 류쩌화 『중국 정치사상사2』 은 진나라가 중국을 통일한 것에서 시작하여, 후한까지 이어지고 있는 중국 사상의 본질과 궁극들 소개하고 있었다. 인도의 불교가 중국에 스며들게 되면서,기존의 중국 본토의 유가 사상과 충돌하였다. 법가 사상,묵가 사상이 현존하였던 중국에 불교가 스며드는 과정에서 발생한 여러가지 문제점들을 책에서 소개하고 있으며,중국인의 가치관과 인식 관점에 있어서 변화는 불가피했다. 무위 자연, 인간의 본성을 관찰하고,그 본성을 자연과 인간을 연결하는데 힘써왔다. 자연과 인간,사상을 권력에 내재하였고,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 의 근거를 하나하나 제도로, 법으로,인의예지로 만들어 나간다. 동양사상에 내재하고자 하였던 사상,관념, 이치를 실천하면, 이익으로 돌아오고, 지키지 않을 때는 불이익을 줌으로서, 상벌을 명확하게 함으로서,옳고 그름의 기준을 명확하게 해왔다. 결국 군주를 추종하고,군주를 현인에 버금가도록 유도하고,사상으로 정리함으로서, 중국의 역사의 시행착오들은 중국 정치 사상의 흐름과 변혁의 근거가 될 수 있다. 중국을 큰 어버이로 생각하였던 한반도 5000년의 역사가 지금까지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다.
